[이순영의 낭만詩객] 서동요

이순영

누가 뭐래도 사랑은 만고불변이다. 그런데 사랑은 때론 사악하다.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사랑이라는 포장지에 싸서 선물인 척 내밀면 알 길이 없다. 인간의 마음을 흩트려 놓기도 쉽고 또 견고하게 하기도 쉬운 게 사랑이다. 사람의 핵심 콘셉트는 사랑이다. 사랑은 인류가 자연스럽게 체득한 생존법이다. 그 증거는 차고도 넘친다. 모든 종교가 사랑을 최고의 가치로 내걸고 문학에서도 사랑은 당연히 최고의 주제다. 사랑을 팔아 진짜 사랑을 완성한 사람이 바로 백제 무왕이다. 사랑은 나라도 구한다.

 

경주 서라벌 남쪽의 연못가에 살던 소년 서동은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가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산나물이 캐서 사는 미천한 처지지만 한 번도 보지 못한 선화공주를 짝사랑하게 된 서동은 꼭 자신의 사랑을 이루고야 말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더벅머리를 중처럼 깎아 위장하고 선화공주를 만나러 서라벌로 올라간다. 막상 올라가 보니 선화공주를 만날 길이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만날 수 있을까 여러 날을 곰곰이 생각한 끝에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소문을 내는 방법이 가장 빠르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우선 동네 아이들과 친해진 다음 소문을 내어 선화공주 귀에 들어가게 했다.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정을 통해 두고

서동 도련님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서동은 치밀하고 계획적인 사람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사랑을 얻기 위해 그냥 들이대거나 아니면 끙끙 앓는 것이 보통인데 서동은 치밀하고 철저하게 계획을 하고 실천하는 지도자적인 면모를 보인다. 일머리가 있는 사람은 성공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은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소문은 가장 빠른 발을 가진 말이다. 통신수단이 없는 그 옛날에 소문만큼 빠른 통신수단은 없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했을까. 서동은 성안에 있는 아이들을 불러 모아 감자를 주며 자신이 지은 노래를 부르게 하자 아이들은 신나서 골목골목 노래를 부르고 다녔을 것이다. 

 

요즘도 영악한 사람은 사랑을 얻기 위해 당사자보다 그 주변 인물을 먼저 공약하는 경우가 많다. 선배나 후배, 또는 형제나 그 부모에게 잘해서 상대의 마음을 여는 경우가 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데 열정하고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사람 마음 아니겠는가. 서동의 노력과 열정으로 만든 노래는 결국 서라벌에 소문이 쫙 퍼지고 궁궐까지 들어가게 된다. 선화공주가 밤마다 몰래 서동의 방에 찾아간다는 내용은 신하들이 왕을 견제할 수 있는 뉴스였다. 시집도 안 간 처녀가 외간 남자를 몰래 찾아가 정을 통했다는 건 왕의 권위를 무너트리는 행위다. 결국 이 스캔들로 선화공주는 귀양길에 오르게 된다. 

 

선화공주가 궁궐을 떠나려고 할 때 어머니인 왕후가 순금 한 말을 주어 보내는데 선화공주가 귀양지에 이를 무렵 서동이 달려와 절을 올리며 자신이 모시겠다고 한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지만 선화공주는 이상하게 마음이 끌린다. 그렇게 둘은 정을 통하게 되고 선화공주는 어머니가 준 금을 꺼내 살아갈 길을 의논하자 서동은 이런 것은 자기가 일하는 산에 가면 흙처럼 쌓여 있노라고 말한다. 금의 가치도 모르는 서동이 선화공주로 인해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간다. 사랑하는 사이에서 조력자로 거듭난 것이다. 이후 서동은 백제의 왕자였음이 밝혀져 임금의 자리에 오르게 되고, 선화공주는 백제의 왕비가 된다.

 

예나 지금이나 신라의 후손인 경상도와 백제의 후손인 전라도는 사이가 좋지 않다. 삼국시대에도 두 나라는 충돌이 잦았고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백제의 왕자 서동과 신라의 공주 선화가 사랑을 이룬다는 상징성은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역사와 설화는 중첩되며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그 이야기에 사람들은 자신을 투영시키며 빠져들게 된다. 천오백여 년 전 텔레비전도 없고 변변한 오락거리도 없어 심심한 사람들에게 서동요는 즐거운 이야기 놀이었을 것이다. 놀이는 재미없으면 퇴출이고 재밌으면 살아남는 법이다.

 

우리는 드라마를 좋아한다. 스토리텔링은 세상과 세상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 서동과 선화공주의 설화는 세월이 가고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가 원하는 스타일대로 바뀌고 또 바뀌면서 더 드라마틱하게 변했는지 모른다. 아무것도 없는 무지렁이 소년이 공주를 사랑해서 지은 노래라는 것은 지금도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그런 사랑을 꿈꾸게 한다. 재벌 딸과 가난한 청년이 서로 사랑하면서 온갖 시련을 이겨내고 결혼에 골인하는 드라마는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K-드라마의 단골 스토리 아니던가. 지금도 사랑을 꿈꾸는 사람들은 현대판 서동요를 만들어 유포시키고 있을지 모른다.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정을 통해 두고

서동 도련님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이순영]

수필가

칼럼니스트

이메일eee0411@yahoo.com

 

작성 2024.04.25 09:40 수정 2024.04.25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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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