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진 칼럼] 강(江)에 대한 기억

허정진

물(水)은 생명의 시원이다. 강은 모든 생명체의 자궁이고 삶의 젖줄이다. 삼라만상의 존재는 곧 강의 역사며 인과다. 날고, 걷고, 헤엄치는 세상의 숨탄것들은 강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생성과 소멸, 시작과 끝, 흥(興)과 쇠(衰)의 은유며 대위다.

 

강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일까? 인류의 시간도 강에서 시작하고, 강에서 숨 쉬고, 강에서 꿈꾸며, 강처럼 흘러간다. 강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군집하고, 문화가 싹 터고, 역사의 발자취를 남긴다. 사람과 사람, 삶과 삶이 어우러지는 관계성의 공간이다. 삶의 출발지이자 생의 궁극이다. 언제나 묵언이지만 억겁의 언어와 무량의 소리를 품고 있다.

 

누구나 강과 더불어 산다. 영혼의 쉼터이자 안식처며, 삶과 죽음이 교차하면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곳이다. 너와 내가 하나가 되어 조화를 이루고 서로의 생명을 품고 사는 것이 강이다. 인간에게 삶의 터전이자 등가물과 같다. 목이 마르면 그냥 삼켜도 체하지 않고, 얼음 강 쩡쩡 갈라지는 소리가 강의 속울음임을 눈치채었을 때는 서로가 소통하고 있다는 증거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강으로 달려가고 싶었던 이유를 내가 강이 되고서야 알 수 있었다.

 

수수만년을 흐르는 강의 기억이 어찌 나의 존재와 시간뿐이랴. 역사의 수레바퀴가 강둑을 굴러가고 장삼이사의 세상살이가 강나루에 걸쳐 있다. 둥둥 떠내려가는 성엣장처럼 놓쳐버린 생(生)은 얼마나 아팠으며, 풀리지 않는 상형문자처럼 짐 진 삶의 역경은 또 얼마나 무거웠던가. 강의 등짝에는 정인(情人)의 그리움이 빗살무늬로 쌓이고, 나그네 걸음마다 외로움의 예리성이 온음표로 새겨져 있다. 유유히 흐르는 강의 깊은 물 속에는 파란만장한 세상을 온몸으로 헤치며 살아온 세월의 뼈 울음이 유적처럼 잠들어 있는 것 같다. 그런 눈으로 보면 강가에 뭉우리돌 하나, 풀 한 포기도 예사롭지 않다.

 

강만이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존재는 강을 따라 유한하게 흐르고, 만유는 강이 되어 무한하게 흘러간다. 강물에 수제비를 뜨던 어느 아이의 조각난 시간도 흐르고, 강 건너 길손을 실어 나르던 나룻배는 한 점 공간이 되어 흐른다. 달빛 강가에 퉁소 소리도, 계곡을 떠내려온 어느 불사의 독경 소리도 강과 함께 흐른다. 세상의 희로애락이 물그림자 되어 흐르고, 사람의 일생도 아침 강가에 물안개처럼 흘러간다. 흐르는 것은 모두 강이다.

 

강은 어머니의 품이다. 깨끗한 물이든 더러워진 물이든, 물빛이 다르든 물맛이 낯설든, 동에서 왔건 서에서 왔건 세상의 모든 물길을 아무런 조건 없이 거두어들인다. 고지랑물이라도, 쇠지랑물이라도, 홍수에 소쿠라진 흙탕물이 흘러 들어와도 강은 절대 내치지 않는다. 그래서 강은 곡선의 보법을 가졌고 모태의 본성을 지녔다. 누군가 찾아오는, 누군가를 위해 마련해둔 열려 있는 세계이다. 평화와 안식을 주는 마음의 보금자리이다. 

 

미움도 허물도 없고, 구별과 차별도 없다. 맵싸한 물바람 냄새를 품었거나 비릿한 피 냄새를 실었으면 또 어쩌랴. 온갖 것들을 침전하고 여과해서 날마다 새로워진 강은 절망조차 자정하고 정화해서 새로운 희망을 꿈꾸게 한다. 유량이 많든 적든, 흐르는 자리가 높든 낮든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다. 주어진 모양과 깊이대로, 기울어짐도 모남도 없이 평형을 유지하며 묵묵히 흘러간다. 오직 낮은 곳으로 임하고, 메마른 곳으로 찾아갈 뿐이다. 

 

낯설고 두렵거나, 험하고 힘든 길도 마다하지 않는다. 서덜에 채이고 폭포에 멍들어도 밤낮없는 긴 여정을 말없이 흘러간다. 바위가 있으면 넘어가고 산이 막히면 돌아가고, 모서리는 깎이고 둥글둥글해져 깊은 강으로 흐르는 법을 안다. 죽음도, 부패도, 멈춤도 없는 강. 펄펄 뛰는 은어가 자유의 알몸으로 헤엄치는 남강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그 영혼은 젖지 않는다.

 

강은 종교며 신(神)이다. 집회나 기도, 설교가 없어도 사람들이 찾아가고 경전이 없어도 삶의 심오한 해답을 얻는 곳이다. 강마다 신화나 전설들이 문패처럼 달려있고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주술사의 기운처럼 구전이 되어 전해 내려온다. 강이 없이 자연이 어떻게 완성되겠으며, 시인이 어떻게 영혼을 알겠으며, 나무와 풀들이 어떻게 꽃 피울 수 있으랴.

 

강은 고향처럼 치유의 길을 열어준다. 처음 가본 세상 어느 곳이라 할지라도 강을 바라보면 왠지 낯설지 않고 긴장감도 풀어진다. 진심을 드러내면 지나온 어떤 잘못도 따지지 않고 묵묵히 참고 기다리며 받아줄 것만 같다. 그 강에는 사람들이 근원적으로 그리워하는 것, 바쁘게 사느라 잃어버렸던 모든 동심이 숨겨져 있다. 언제나 찾아오면 편하게 반겨주는 고향 같은 곳, 누구나 내남없이 받아주는 성전 같은 곳이다. 

 

강에는 ‘빨리’라는 단어가 없다. 깊은 물 속에 잠겨 느리게 가는 시간뿐이다. 강에도 시차라는 게 있을까. 삐거덕삐거덕, 새벽 강가에 사공이 나룻배 노 젓는 소리는 강이 아니고서야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휴(休)’라는 방점을 찍고 정물 같은 강의 풍경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틔워진다. 내려놓을 것 내려놓아야지, 버려야 할 것 버려야지 속엣것들 강물 앞에 꺼내놓으면 “정말이니?”하며 강마다 품은 사투리로 물어올 것 같다.

 

사람도 저마다의 강이 있다. 여울처럼 물살이 빠른 강도 있고 태고의 발걸음인 양 유유히 흐르는 강도 있을 것이다. 누구는 그 강이 빛나고 풍성하겠지만 또 누구에게는 갈천(渴川)처럼 단내 나는 영혼일 수도 있다. 어떤 강이 되는 가는 나 자신에게 달려있다. 그 누군가에게 힘과 위로가 되는 정화수 같은 강이었는지, 아니면 피해와 상처만 주는 썩고 오염된 강은 아니었는지 모를 일이다. 

 

긴 강을 건넜다. 돌아볼 수는 있지만, 되돌아갈 수 없는 것이 강이다. 하지만 강은 언제나 그곳에 있다. 추억의 보물창고 같은 어린 시절에도, 먼바다로 우렁차게 흘러 흑조(黑潮)의 물줄기를 꿈꾸던 젊은 시절에도 있었다. 새벽 강에 나와 홀로 울던 아픈 시절에도, 세상 풍파에 부대끼고 흔들리며 힘든 시기에도 변함없이 거기에 있었다. 그때마다 눈에 달라 보였던 것은 내 마음이었지 그 강이 아니었다.

 

물이라면 강이 될 테다. 뙤약볕에도 뜨거워하지 않고 폭풍우에도 휘둘리지 않는 넓고 깊은 강이 되고 싶다. 여울목을 만나도 서두르지 않고 두물머리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몸으로 흘러가고 싶다. 외로운 사람을 위해 황포돛배도 띄우고 강가에 귀를 기울이면 “넌 잘될 거야!”라며 쿵쿵 뛰는 심장 소리를 들려주는 따뜻한 강이 될 테다. 살아 숨 쉬는 그 강으로 가고 싶다.

 

 

[허정진]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

저서 : [꿈틀, 삶이 지나간다]

[그 남편, 그 아내]

[시간 밖의 시간으로]

[삶, 그 의미 속으로]

천강문학상 수상

등대문학상 수상

흑구문학상 수상

선수필문학상 수상

원종린수필문학상 수상

이메일 :sukhur99@naver.com

  

작성 2024.04.30 09:00 수정 2024.04.30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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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