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영의 낭만詩객] 5월이 오면

이순영

오월, 눈부시다. 아름답다. 살아있다는 환희로움을 느끼는 계절이다. 사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한 엘리엇도 오월에는 그 잔인함을 모두 용서했을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오월이 있어서 살아가는 힘을 얻고 오월이 있기에 희망이라는 걸 품어보는지 모른다. 일 년 열두 달 중에 오월을 사랑하지 않으면 아마 그건 인생을 모르는 사람이거나 포기한 사람이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고 불행해도 오월에는 그냥 한 번 웃어보자. 하늘도 한 번 쳐다보고 꽃들도 눈 맞추어 바라보고 상큼한 바람도 맞아보자. 오월이니까. 그리고 황금찬 시인의 ‘5월이 오면’을 읊어보자.
 

언제부터 창 앞에 새가 와서
노래하고 있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심산 숲내를 풍기며
5월의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저 산의 꽃이 바람에 지고 있는 것을
나는 모르고
꽃잎 진 빈 가지에 사랑이 지는 것도
나는 모르고 있었다. 

오늘 날고 있는 제비가
작년의 그놈일까? 

저 언덕에 작은 무덤은
누구의 무덤일까? 

5월은 4월보다
정다운 달

병풍에 그려 있던 난초가
꽃피는 달

미루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리듯
그렇게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달
5월이다.
 

내가 황금찬 시인을 만난 건 아주 오래전 일이다. 밀레니엄이 시작될 무렵 서초동 문학모임에서 황금찬 시인을 만났다. 이름처럼 황금 같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인자한 미소를 보내며 시 강의를 했다. 황금찬 시인의 시는 참 쉽다. 어려운 말이 없이도 시가 이렇게 빛난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그해 오월 황금찬 시인은 산신령 같은 흰머리를 날리며 나직나직한 목소리로 ‘5월이 오면’을 낭송할 때 나는 그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이 굴곡진 세상을 잘 사신 분이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젊은 문화생이 황금찬 시인을 스승으로 모시며 시를 배우고 있었지만, 그 문화생은 두 해 뒤에 병사하고 말았다. 나는 황망하게 떠나버린 젊은 시인의 장례식장에 망연히 앉아 있다가 돌아왔다.

 

나는 오월이 오면 이 ‘오월이 오면’을 혼자 읊조리곤 한다. ‘저 산의 꽃이 바람에 지고 있을 것을 나도 모르고 꽃잎 진 빈 가지에 사랑이 지는 것도 나도 모르고 있었다’는 시인의 시처럼 나도 그랬다. 무엇이 그리 바쁘길래 꽃이 피고 꽃이 져도 모르는 채 살아야 했는지 오월엔 나를 돌아보곤 한다. 그 돌아봄이 희망이다. 그 희망으로 사는 게 인생이다. 우리는 별거라도 있는 양 아득바득 살고 있지만 인생은 늘 이정표를 잃어버리고 다른 길로 가곤 한다. 그러면 어떠랴, 인생 어디에 목표가 있다고 누구 말하던가. 오월처럼 한 번쯤 설레면서 그 설렘으로 또 한 해를 살아내는 것이 삶 아니던가. 

 

황금찬 시인은 1918년에 태어나 2017년에 사망했으니, 백수를 누린 셈이다. 평생 8,000여 편의 시를 남겼으니 가히 다작의 왕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생활문학의 고수였다. 생활 속에서 그냥 지나치는 것들을 세심하게 붙들어 놓고 잘 다듬어 시로 재탄생시켰다. 황금찬 시인은 오랫동안 교직에 있으면서 특히 해변시인학교에 많은 애정을 품고 있었고 시인 제자들도 배출을 많이 했다. 문단에 어른이 없다는 자조가 나오지만, 황금찬 시인은 어른으로서 정치나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천진하게 사셨던 분이다. 다시 오월이 오니 황금찬 시인의 ‘오월이 오면’을 되뇌며 오월을 보낼 것 같다. 

 

미루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리듯
그렇게 사람을 사랑하고 싶은 달
5월이다.
 

 

[이순영]

수필가

칼럼니스트

이메일eee0411@yahoo.com

 

작성 2024.05.02 10:48 수정 2024.05.02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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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