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용 칼럼] 신작으로 둔갑한 시와 조우할 때면 아프다

신기용

2016년 여름, 신작으로 둔갑한 시와 여러 번 조우했다. 그중 두 사례를 언급한다. 먼저 오래전부터 관여해 왔던 계간 문예지에서 신작 시 해설 원고를 청탁받았다. 전국적으로 이름 꽤나 알려진 시인의 시 다섯 편이었다. 

 

단박에 과거에 읽어 본 시임을 인지하고 실망했다. 이미 발표한 시가 신작으로 둔갑한 것이다. 이런 행위는 여러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문예지 측에 신작으로 다시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썩어 버린 나무로는 새로이 조각할 수 없는 이치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발표한 자선(自選) 시 원고라면 적어도 발표한 지면의 출처 정도는 해설문에 명시하는 것이 독자에 대한 예의라고 할 때, 출처를 명시한 상태에서 해설 청탁을 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명확한 출처마저 밝히지 않아 원고 청탁을 두 번씩이나 거절했다. 

 

그 후 세 번째에는 이미 발표한 시라도 읽는 사람에 따라 달리 읽을 수 있으므로 해설을 꼭 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 그러나 “문예지 내부 편집 방침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행위를 할 수 없다.”라고 밝힘과 동시에 그 해당 호의 편집 참여를 거부했다.

 

결국, 다섯 편의 시는 신작으로 둔갑하여 어떤 시인의 해설과 함께 실렸다. 해설 서두에 “이번 신작으로 보내온 다섯 편의 시를 읽으며”, 말미에 “이번 신작들을 통해서 시인은 ‘인연의 시학’을 펼치고 있다.”라고 왜곡했다.

 

그때 해당 호의 편집 참여를 거절한 이후로 나에게 더는 원고 청탁과 편집 참여를 요청해 오는 일은 없었다. 팽(烹)당한 것이다. 이처럼 신작으로 둔갑한 시와 조우할 때면 뼛골마저 아프다. 

 

또 다른 시인의 사례 하나를 더 든다. 어떤 월간 문예지의 신인상 심사 때 버젓이 인터넷 공간에 스스로 발표한 시로 응모한 작품을 접한 적 있다. 이때 심사평에 “열 편 모두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 당선작으로 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배제했다. 이번 응모작 열 편 중 여덟 편이 사이버상에 이미 발표한 작품임을 식별했기 때문이다. 신인상 공고에 신작에 한(限)한다는 언급이 없었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이것은 상식의 문제다. 과거 버젓이 발표한 작품을 당선시킨 사례가 허다하므로 같은 잣대로 평가해 달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라고 언급하면서 “그것은 과거 등단자의 윤리/도덕의 문제이면서 심사 위원의 능력과 자질 문제이다. 이를 거울 삼아 신작으로 다시 도전하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우여곡절 끝에 심사평 그 부분은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이처럼 신작으로 둔갑한 시와 조우할 때면 세상이 잿빛처럼 무겁게 보여 더욱 아프다. 

 

그 시인은 그다음 호의 신인상에 당선했다. 그것도 다섯 편 모두 이미 발표한 작품으로 당선했다. 심사 위원을 맡은 원로 시인은 그 내막을 알 리 없어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인터넷을 모르는 그 심사 위원은 당연히 식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만일 나처럼 이미 발표한 시임을 식별하였다면 다음 기회에 응모하라고 했을 것이다.

 

이 같은 두 사례를 비춰 보면, 고의든 아니든 속이겠다고 마음먹고 덤벼들면 당하지 않을 자가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독자는 세상이 부패하더라도 문인들의 양심만은 맑디맑기를 원하고 있을 것이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대구과학대학교 겸임조교수, 가야대학교 강사.

저서 : 평론집 7권, 이론서 2권, 연구서 2권, 시집 5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

이메일 shin1004a@hanmail.net

 

작성 2024.05.08 10:17 수정 2024.05.0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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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