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의 아랑가 국민애창곡 해설] 나훈아, <고장 난 벽시계>

유차영

돌다가 멈춰버릴 인생시계,

나는 지금은 몇 시인가~

 

신(神)이 인간에게 준 선물 중 공평한 2가지가 있다. 활용성은 저마다이고 사용기한은 유한한 시간(時間)과, 영원으로 이어질 세월 속에서 이승에서의 종말인 자연사(自然死)이다. 생물학적으로 한 사람의 인간 탄생 확률은, 2.5억~3억분의 1이란다. 이들 중에서 ‘시간과 자연사’라는 2가지의 허용과 한계의 범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는 단 한 분도 없다.

 

그래서 우리네 인생은, 돌다가 멈춰버리는 시계와 같다고 하는 것이다. 오늘 이 순간 당신의 시계는 몇 시인가? 똑딱거리는 그 순간은 시각(時刻)이고, 어슴푸레한 새벽안개가 걷혀 가는 한나절을 지나, 서녘 하늘이 불그레해질 때까지가 그대의 하루(一日)라는 시간(時間)이었다.

 

이런 사유(思惟)의 맥락에서, 오늘 유아국해(劉我國解, 유차영의 아랑가 국민애창곡 해설) 곡목은 나훈아의 <고장 난 벽시계>이다. 이 절창은 2005년 윤중민이 노랫말을 얽고, 박성훈이 멜로디를 오선지 위에 펼쳤다.

 

세월아 너는 어찌 돌아도 보지 않느냐/ 나를 속인 사람보다/ 네가 더욱 야속하더라/ 한두 번 사랑 땜에 울고 났더니/ 저만큼 가버린 세월/ 고장 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저 세월은 고장도 없네

 

청춘아 너는 어찌 모른 척하고 있느냐/ 나를 버린 사람보다/ 네가 더욱 무정하더라/ 흰 구름 따라가다 돌아봤더니/ 어느새 흘러간 청춘/ 고장 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저 세월은 고장도 없네.

 

<고장 난 벽시계> 노래 속의 시계는 노래 속의 화자 자기 자신이고, 흘러간 세월 뒤에는 시들어진 청춘만 무상하다는, 인생 반추의 곡절이 노래 메시지이다. 어느 누가 이 반추의 울타리를 벗어나랴.

 

그래서이리라. 이 노래는 오늘날 온고지신의 아랑가 열풍 무대에서 여러 신인 가객(新人 歌客)들이 경연곡으로 열창한다.

 

남녘 바다마을 해남에서 배추 농사를 짓다가, 서울 미스아랑가경연장으로 달려온 낭자 ‘미스김(본명 김채린)’과 미스터아랑가 경연에 참가한 ‘패밀리가떴다(정동원, 고재근, 김호중, 이찬원)’가 그들이다. 유사한 경연 스핀오프(spin off) 무대에서의 열창도 많다.

 

국민아랑가황제, 2024년 ‘7월경의 은퇴’를 먼저 예고하고, 고별 순회공연을 하고 계시는, 나훈아(본명 최홍기) 선생이, 스스로의 인생곡 같은 <고장 난 벽시계>를 세상에 내놓을 당시는 58세였다. 그가 이제는 77세가 되었다.

 

이 노래를 2020년 내일은 미스아랑가 본선 제3차전 기부금 미션에서 이찬원이 맛깔나게 불렀다. 패밀리가떴다팀 찬또배기 이찬원의 존재감이 빛났고, 팀은 공동 1등으로 올라섰다. <백세인생>, <청춘>, <고장 난 벽시계>, <다함께 차차차>, <젊은 그대>, <희망가>가 이들이 빼든 노래 칼이었다. 이날 경연은 3라운드 진출자 20명이 4명씩 5팀을 조직해 아랑가 가도승부(歌刀勝負)를 벌였다.

 

2024년 미스아랑가3 경연에서 <고장 난 벽시계>라는, 감성의 가도(歌刀)를 휘저은 가객이 바로 미스김이다. 김채인, 그녀는 2023년 6월 전국노래자랑 해남군편에서 고봉산의 <용두산 에레지>(추억의 용두산)와 남인수의 <추억의 소야곡>을 불러 우수상 주인공이 되었다.

 

이후 서울로 달려온 아랑가 경연에서는 이미자의 <님이라 부르리까>, 소유미의 <평생직장>, 이태호의 <미스고>, 나훈아의 <아이라예>, 손빈의 <그물>을 열창했다. 그녀의 휘날레 곡조가 <고장 난 벽시계>였다.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가 없다. ‘고장 난 벽시계’도 더 이상 세월을 감고 돌아가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네 인생시계는 병이 들어도 세월을 안고 돌아가고, 생채기 상처가 아려도 세월의 수레바퀴 위에 올라앉아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훈아가 내지르는 인생시계는 바로 나(여러분 자신)의 인생시계인 것이다.

 

이 노래는 되감을 수 없는 삶을 아쉬워하는 인생을 은유했다. 우리네 인생시계는 어느 때에 고장이 나고, 또 정지할까. 국민가요황제 나훈아는 58세에 <고장 난 벽시계>를 발견하였는데, 일흔을 넘긴 2016년에 그의 사랑시계는 멈춰 섰고(3번째 이혼), 그래도 그의 인생시계는 현재진행형으로 돌아가고 있다.

 

본명 최홍기. 그는 왜 그토록 오랜 기간 국민가수로 군림할까. 팔색조(八索鳥) 오디오처럼 변신하는 독특한 창법을 누가 능가할까. 중후한 중저음, 꺾일 듯 이어가는 음역을 초탈한 고음, 간들거리는 꺾기와 휘몰기, 가슴을 후벼 파는 가사.

 

비틀거리는 세상을 향하여 내지르는, 풍살(風摋) 같은 언변 술(述)~. 나훈아 노래의 시대적 배경을 우리나라 근대화 역사 궤도와 연계된다. 나훈아 선생은 가수가 아니라, 문화예술철학가이다. ‘한국의 베토벤’이라고 존대를 해야 한다. 그럴만하다. 걸맞다.

 

나훈아의 인생, 그의 첫 부인은 고은아의 4촌 이숙희, 그녀와의 결혼생활은 2~3년, 이후 국민배우 김지미와 7년간 결혼생활 후 이별하였고, 후배 가수 14세 아래 정수경과는 2016년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청의 판결로 갈라섰다, 2008년에는 사생활과 관련한 황당한 소문이 있어서 벨트기자회견을 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그때마다 나훈아의 인생시계는 멈추는 듯 하였지만 현재진행형으로 돌고 있었다.

 

이처럼 나훈아의 인생도 속살을 펼쳐보면 가슴 아리는, 삐걱거리면서 돌아가는 시계와 같은 여정이다. 그는 체험을 얽어서 아랑가로 만드는 예술철학가객이다. 그래서 그의 노래는 최홍기 스스로의 인생이고, 우리네 인생이다. 나훈아는 1987년 <사나이 눈물>을 이렇게 읊었었다.

 

흘러가는 뜬구름은 바람에 가고/ 허무한 내 청춘은 세월에 가네/ 취한 김에 부르는 노래/ 끝도 없는 인생의 노래/ 아~ 뜨거운 눈물 사나이 눈물

 

웃음이야 주고받을 친구는 많지만/ 눈물로 마주 앉을 사람은 없더라/ 취한 김에 부르는 노래/ 박자 없는 인생의 노래/ 아~ 뜨거운 눈물 사나이 눈물

 

돌아보면 그다지도 먼 길도 아닌데/ 저만큼 지는 노을 날 보고 웃네/ 취한 김에 껄껄 웃지만/ 웃는 눈에 맺힌 눈물은/ 아~ 뜨거운 눈물 사나이 눈물.

 

이 노래에 감흥·감응하는 대중들의 인생도 눈물의 여정이다. 빨간 립스틱에 알록달록한 무늬가 수 놓인 원피스를 입고, 검정색 선글라스로 햇살을 가렸어도 속내는 검정 숯덩어리다. 헐렁한 청바지에 원색의 머플러를 모가지에 두른다고, 흘러간 인생시계가 다시 돌아가랴.

 

역사의 시계도 고장이 나기는 매한가지이다. 일본 후쿠오카 나가사키 원자폭탄피해전시관에 가면, 일본제국이 무조건항복결정을 한 그날, 투하된 플로토늄원자폭탄(p­239) 폭발 때 멈춰 선, 벽시계가 증거물로 벽에 걸려 있다. 1945년 8월 9일 11시 02분이다.

 

이는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히로시마에 투하된 우랴늄원자폭탄(u­235)과 더불어 인류 역사 이래로 원자폭탄이 실전에 사용된 첫 사례다. 일본이 원자력에 촌각을 세우며 떨고 있는 이유이고, 세계가 북한의 핵 개발에 촉각을 세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2014년 1월 개관한 중국 하얼빈역 안중근기념관에 가면 1909년 10월 26일 09시 30분에 멈춰 선 시계가 걸려 있다. 안중근 조선독립군 참모중장이 이또오 히로부미를 향하여, 벨기에산 브라우닝 권총(7연발)으로 저격하여 사살한 현장의 시간이다. 이 시계들은 인생시계가 아니라, ‘고장 난 역사의 현장 증거물’이다.

 

나의 인생시계는 멈추어도 역사의 시계는 영원히 돌아간다. 사람은 흘러가는 역사의 강 물결에 나룻배를 탄, 주인공이다. 언젠가 그 나룻배는 바다 속 깊은 곳으로 침몰하여 자연으로 돌아간다.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 시간(時間)과 자연사(自然死)를 다시 생각해 본다. 복사골 강나루 한강 둔치에서, 세월 시계를 돌리는 듯 넘실거리며 춤을 추는, 천만사 실버들 바람 노래에 귀를 기울이는 저녁나절이다.

 

‘북(北) 자야, 남(南) 난이’를 꿈속에서도 옹알거리던 백석(白石, 1912~ 1996) 형은 하늘에서 안녕하실까. 이승에서 백기행, 백기연이라는 이름패를 달고 다녔던 시인. 그의 이승에서의 인생시계는 85번째의 봄 기슭을 돌아가다가 멈추었는데.

 

 

[유차영]

한국아랑가연구원장

유행가스토리텔러 

글로벌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경기대학교 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교수

이메일 : 519444@hanmail.net

 

작성 2024.05.09 10:12 수정 2024.05.09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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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