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헌식의 역사 칼럼] 『난중일기』에 기록된 1594년 일식

윤헌식

『난중일기』에 기록된 1594년 일식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료라고 할 수 있는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에 상세한 천문 현상을 기록하고 있다. 외국의 천문학자들이 천문학 연구에 종종 우리나라 사료를 참고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방송 매체를 통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도 천문 현상의 하나인 일식에 대한 기록이 있다. 1594년 4월 1일(양력 1594년 5월 20일) 기록이 그것이다.

 

『난중일기』 1594년 4월 1일

 

일식이 있는 날이다. 일식할 때이지만 일식이 일어나지 않았다.

[원문] 四月初一日己酉 晴. 日食. 當食不食.

 

​위 기록에 나타난 '當食不食'이라는 문구는 일종의 사자성어(四字成語)로서 '일식이 일어나야 할 때 일식이 일어나지 않았다.'라는 의미이다. 본래 '일식'을 가리키는 한자가 '蝕'이므로, 굳이 따져보자면 '當食不食'의 본래 표기는 '當蝕不蝕'이었을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또는 여러 고전 문헌을 검색해 보면 일식 현상과 관련하여 '當食不食' 또는 '當蝕不蝕'과 같은 문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조선 세종 때 편찬된 역법서인 『칠정산내편』과 『칠정산외편』은 조선시대 중반까지 정확한 일식 계산을 가능하도록 해주었다. 천문과 기상관측 등을 관장하던 서운관의 관리가 일식의 예측이 단지 1각(약 14분)이 어긋났다는 이유로 장을 맞은 사건이 기록된 『세종실록』의 기사는, 조선의 뛰어난 천문학 수준을 보여주는 한 사례로서 모 방송사에서 역사 다큐멘터리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임진왜란 시기 한양에 있던 조선 조정은 당연히 일식을 예측할 수 있었겠지만, 한산도의 조선 수군 진영에 머물러 있던 통제사 이순신은 과연 일식이 일어날지를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여러 가지 추측이 가능하겠지만 아마도 역서(曆書)의 보급이 가장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선조실록』의 기사(권49, 선조27년-1594년 3월25일 계묘 1번째 기사)에서는 1594년 당시 역서가 편찬된 사실이 확인되고, 『난중일기』의 1596년 2월 18일에서는 역서를 얻었다는 내용이 나타난다. 아래는 『난중일기』의 해당 기록이다.

 

​『난중일기』 1596년 2월 18일

 

저녁에 김국이 서울로부터 들어왔는데 비밀 공문 2통, 역서 1권을 가지고 왔다. 서울의 조보도 왔다.

[원문] 夕 金國自京入來 秘密關兩道歷書一件持來. 京朝報亦來.

 

* 조보: 정부가 주도하여 발행하였던 관보(官報)를 가리킨다. 승정원에서 담당 승지의 감독 아래 각지에서 올라온 소식들을 선택하여 산하기관인 조보소(朝報所)를 통해 조보를 내보내면, 각 관청의 서리 등이 선별적으로 필요한 기사를 필사하여 해당 부처의 기별 군사나 역참 등을 통해 중앙 및 지방의 관청이나 사대부 등에게 전달하였다.

 

​위 『난중일기』의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이순신은 1594년에도 역서를 입수하여 일식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았으리라 추정된다.

 

『증보문헌비고』 권4의 「상위고」에는 1594년 4월 1일 일식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선조실록』의 기사(권50, 선조27년-1594년 4월17일 을축 2번째 기사)에도 유성룡이 선조에게 그달(4월)에 일식이 발생했음을 보고한 기록이 있다. 유성룡이 명나라 역서인 대통력에 비망기를 적은 자료인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柳成龍備忘記入大統曆)」이 현전하여 보물 제160-10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이 자료를 살펴보면 갑오년(1594년) 4월 1일 날짜 아래에 수기로 ‘日食’이 적혀 있다. 「유성룡비망기입대통력」은 그 자료의 일부가 망실되었는데, 망실된 자료 가운데 경자년(1600년) 자료가 최근 2022년에 일본으로부터 환수되어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던 적이 있다.

 

그러면 도대체 왜 이순신은 『난중일기』의 1594년 4월 1일에 일식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적었을까? 1594년 4월 1일 일식도에서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한국천문연구원에서 발간된 『조선시대 일식도』나 미국항공우주국 및 영국항해력연구소의 일식 웹사이트에 이날의 일식도가 수록되어 있다. 아래 그림은 영국 항해력연구소에서 제공하는 1594년 4월 1일(양력 1594년 5월 20일) 일식도의 일부이다.

 

1594년 4월 1일(양력 1594년 5월 20일) 일식도 - 자료 출처: 영국항해력연구소 일식 웹사이트

 

 

위 그림에서 회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당시 일식이 관측되는 지역이었으며, 흰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일식이 관측되지 않는 지역이었다. 당시 조선은 남해안 일대를 경계로 하여 그 북쪽 지역에서만 일식을 관측할 수 있었다. 즉, 한양이나 그 부근은 일식이 관측되어 『증보문헌비고』나 『선조실록』에 기록을 남겼지만, 남해안의 한산도 일대에 주둔했던 조선 수군의 진영에서는 일식이 관측되지 않았던 것이다. 『난중일기』의 1594년 4월 1일에 적힌 '일식이 일어나지 않았다.'라는 문장은 결과적으로 『난중일기』의 사료적 신빙성을 보여주는 근거로 해석된다.

 

​‘當食不食’이라는 문구는 천문학적인 의미 외에 정치적으로도 미묘한 의미가 있었다. 예로부터 고대 국가에서는 일식이나 월식을 천변으로 여겼다. 특히 일식은 임금을 상징하는 해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일식이 일어났을 때는 종종 임금의 근신이 요구되었다. 이와 반대로 임금이 정치를 잘하면 일식이 일어나야 할 때 일식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믿었는데, 『실록』의 여러 기사(『세종실록』 권26, 세종6년-1424년 11월4일 을해 1번째 기사; 『중종실록』 권10, 중종4년-1510년 2월24일 경술 1번째 기사 등)에서 이러한 사실이 확인된다. 위 『난중일기』의 기록이 단순히 일식의 관측 결과만을 보여주는 것인지, 아니면 임금인 선조가 올바른 정치를 펼치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반영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참고자료]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증보문헌비고』

문화재청 국가유산포털, 보물 제160호 유성룡 종가 문적

안영숙/이용복/김동빈/심경진/이우백, 『조선시대 일식도』, 2001, 한국천문연구원

김영주, 「조보(朝報)에 대한 몇 가지 쟁점-필사조보의 기원, 명칭, 폐간시기, 기문기사 성격과 민간인쇄조보를 중심으로-」, 『한국언론정보학보』 43호, 2008, 한국언론정보학회

미국항공우주국(NASA) 일식 웹사이트 eclipse.gsfc.nasa.gov/SEcat5/SE1501-1600.html (1501~1600년 일식도)

영국항해력연구소(Her Majesty’s Nautical Almanac Office) 일식 웹사이트

 

 

[윤헌식]

칼럼니스트

이순신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저서 : 역사 자료로 보는 난중일기

이메일 : thehand8@hanmail.net

 

작성 2024.05.10 09:01 수정 2024.05.10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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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