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져버린 약속이 만들어 준 ‘정(情)’이라는 포만감
기다리던 약속이 취소되었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누군가, 특히 친구를 만나기 위해 그날을 기다리는 것에는 설레임이 함께 합니다. 그런 기분이 든다는 것은 오랜만에 보게 되는 상대에 대한 기대감이나 궁금함과 함께 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죠. 그리고 만나면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을 할때 친구가 반응해 주는 정스러움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죠.
그날 하루를 위해 다른 약속은 잡지 않고 너무 만나고 싶었던 친구라면 일정을 조정하면서까지 기다릴 때가 있습니다. 헌데 그런 약속이 하루 전이나 불과 몇 시간 전에 취소되면 그때 어떤 기분이 될까요.
전 가슴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친구를 위해 내가 한 약속을 취소시킨 다른 분의 얼굴이 떠오르며 미안하고 부끄러워 난감해지기도 합니다. 그뿐인가요. 상대방이 갑작스럽게 약속을 취소해 오면 때론 수치감도 올라온답니다. 내 잘못도 아닌데 뭔가 내 문제로 상대가 약속을 취소한 것 같고 내가 갑자기 중요한 사림이 아닌 것 같아 올라오는 감정이죠.
그런 날은 다른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마음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시간을 메꾸기 위해 만나는 것 같아 좋은 기분으로 누군가를 맞이할 자신도 없고 집에서 나가고 싶지 않은 무기력 상태가 되고 맙니다.
저의 상황을 알아차린 딸이 조심스럽게 외출을 제안해 왔습니다. 북적거리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딸과 나는 평일이라 그런지 한산한 쇼핑가가 심란한 저에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동물병원에서 고양이와 강아지들 재롱도 보고 우리집 강아지를 위해 자연산 간식을 사고 흐뭇해 하기도 합니다. 긴 줄 때문에 늘 아쉽게 돌아섰던 츄러스 가게에서 뱅쇼까지 사서 들고 비어있는 의자에 앉아 그 맛에 행복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브레이크 타임을 내건 음식점 앞에서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도 이미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며 왠지 우리도 줄을 서야 할 것 같아 무작정 그 줄에 합류해 봅니다.
음식점이나 디저트 가게에 긴 줄을 보면 의식 없는 충동적 욕구가 본능적으로 그 끝줄을 차지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내 알아차리는 대는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지요. 그렇지만 그 줄을 비켜주는 것에는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죠. 시간을 아끼는 것에 강박적인 저의 성격도 있지만,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허기를 버티기가 더 힘들 것 같아 저희는 슬그머니 그 줄에서 빗겨 나왔습니다.
대신 한산한 만두 전문점에 들어가 호탕과 볶음면, 납작만두를 시켜 놓고 보니 차례를 양보한 맛집 또한 아쉽지 않았습니다. 그때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커플이 다 먹지 못하겠다며 주먹만 한 고기만두 2개를 건네주네요. 시키고 싶은 메뉴가 많아 고민하다 마침 포기한 왕 만두였습니다.
젊은 커플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당황하여 저는 우리 것도 남을 것 같다며 손사래를 치는데 딸이 얼른 고맙다며 만두를 받았습니다. 그러더니 저희가 시킨 납작만두 두개를 그 커플에게 건네주는 것이었습니다. 평상시 내가 알고 있는 딸을 생각할 때 예상하지 못했던 행동이라 멋쩍고 낯설었지만, 그 모습이 왠지 싫지는 않았습니다. 더구나 그 커플이 납작만두를 어찌나 맛있게 먹는지 깨진 약속으로 응어리졌던 가슴의 이물질이 말끔하게 내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순간적으로 벌어진 에피소드로 전 식사를 하는 내내 묘한 흥분감에 입맛은 놓치고 말았지만, 마음을 채운 포만감으로 만두는 결국 포장해야 했습니다.
저의 하루는 대부분 저보다는 아래의 연령층을 만나는 시간이 많습니다. 그것이 감사하면서도 가끔은 젊은 사람들 앞에서 긴장감으로 경직되고 있는 저를 알아차릴 때가 있습니다. 전 젊은 시절 나이 든 분들이 보이는 불편한 행동이나 언행에 대한 불편함으로 어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들면서 의식적으로 젊은 사람들 앞에서 조심하려는 긴장감이 있습니다. 그나마 일을 하면서는 세대 차이에서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일상으로 돌아오면 암암리에 제 연령의 본성이 드러나고 말지요.
섣부르게 조언하는 것을 삼가는 것은 당연하고 나이 탓인지 순발력이나 이해력 떨어져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도 선 뜻 다가갈 수 없습니다. 왠지 귀찮게 하는 것 같고 정말 귀찮아하는 것 같아서지요. 실지로 말을 붙이면 이유도 묻지 않고 눈살에 먼저 힘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때론 자식도 그러는데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당황하는 모습, 당연합니다.
그런데 젊은 커플이 그것도 식당에서 자연스럽게 훅 다가와 준 것이 저는 놀랍고 신선하기까지 했답니다.
기다렸던 사람과의 깨져버린 약속 대신 우연히 만나 소소하게 정을 나누고 헤어진 그 커플을 어디선가 다시 만난다 해도 전 얼굴을 기억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비었던 마음에 포만감을 준 순간의 기억은 아주 오랫동안 제 가슴 한편에 자리 잡고 있을 것 같습니다.
K People Focus 표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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