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초 문경새재 골짜기에 부는 바람은 비단결처럼 부드럽다. 솜털을 간질이는 듯 몸에 감기는 미미한 감촉이 온몸에 퍼져 나간다. 문경새재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서 항상 선두를 놓치지 않는 그런 길이다. 오늘은 그중 1코스 약 10km 길을 걷는다. 들머리인 괴산 연풍면 고사리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제 3관문까지는 나지막한 경사길로 오른 후 3관문부터는 내리막길로 2관문, 1관문을 거쳐 날머리인 옛길 박물관까지 가게 된다.
문경새재 자연휴양림에서 조령관으로 올라가는 완만하고 널찍한 산길을 걸어가면 멈춘 풍경 속으로 빠져든다. 무심하게 좌정하고 있는 바위들과 몸을 뒤틀면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숲의 주인 푸른 소나무들은 마치 하안거에 들어 용맹정진 중인 스님 모습이다. 고요한 숲속에도 결이 있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나뭇가지에 깃든 청량한 바람과 발걸음에 부서지는 한낮의 햇살이 나지막하게 숲의 적막을 두드리고 있다.

조령(鳥嶺)은 문경새재의 새재를 말하는데, '나는 새도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에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영남의 선비들이 사랑해 마지않았던 고개이기도 하다. 옛날 과거시험을 통해 관직에 오를 수 있었던 시절에는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기 위해서 죽령(竹嶺), 추풍령(秋風嶺), 문경새재 3개의 고개 중 하나를 넘어야만 했다. 그런데 죽령이라는 이름에서는 '죽죽 미끌어진다'고 해서, 추풍령은 '가을낙엽처럼 떨어진다'고 해서 이 길들을 피했다. 그런데 문경(聞慶)은 '들을 문(聞)', '경사 경(慶)'으로 '좋은 소식을 듣는다'며 유난히 이 길을 택하여 상경했다고 한다. 호남의 유생들까지도 일부러 이 길로 상경했다고 하니 당시 문경새재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던 것이다.
과거시험 보러 가는 길이라 그런지 3관문인 조령관 근처에는 괴나리봇짐을 메고 과거 보러 가는 선비상이 서 있고, 군데군데 옛길에는 금의환향길, 장원급제길이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조령관을 지나면 내리막인 신작로 같은 대로가 나온다. 과감하게 대로를 버리고 옛길로 들어서면 강하게 내려쬐는 햇살이 숲속 나뭇가지에 자잘하게 흩어져 내려 숲속의 모든 생명체를 따스하고 부드럽게 어루만져준다. 숲속의 모든 질서는 빛에 의해 조절된다. 빛은 자연이 내리는 최고의 축복이다.

1관문까지는 계속해서 평지가 이어진다. 사방으로 길이 넓다 보니 시야도 좋다. 가까이로는 아름드리나무들과 계곡이 이어지고, 오른쪽으로는 백두대간 조령산 산줄기가 이화령에서 죽령까지 병풍처럼 늘어서 있고, 왼쪽으로는 문경새재의 주산 주흘산이 당당히 버티고 서있다.
옳거니 그르거니 상관 말고
산은 산, 물은 물, 그대로 두라
하필이면 서쪽에만 극락이랴
흰 구름 걷히면 청산인 것을
임제선사(臨濟禪師)의 선시를 암송하면서 새재 길로 내려오다 보니 어느새 문경새재 도립공원 주차장이 나온다.

요즘 경제가 어렵고 남북관계도 경색되어 있고 정치 또한 기대 이하이다 보니 서민들이 기댈 언덕이 사라져 세상살이가 팍팍하기 그지없다. 오늘 문경새재길을 걸으면서 부디 로또 당첨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민들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띠게 만드는 반가운 소식(聞慶)들이 우리 사회에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여계봉 선임기자]
수필가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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