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용 칼럼] 영화 ‘터널’이 고발한 인간의 이기심

신기용

현대인은 도로의 터널을 비롯해 지하철과 지하 시설물 같은 거대한 인공 터널 속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드나든다. 우리는 흔히 일상에서 “어둠의 긴 터널을 지나”, 또는 “어둠의 긴 터널을 뚫고”라는 말을 쓴다. 이것은 터널이라는 공간 자체가 어둠과 밝음을 함의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밝음(빛)을 갈망하는 존재이다. 빛은 어둠이라는 ‘무지’에서 밝음이라는 ‘깨달음’으로 옮겨 가는 경계에서 안내자 역할을 한다. ‘터널’은 어둠 그 자체로는 절망의 표상이지만, 빛을 가미하면 희망의 표상이다.

 

2016. 8. 10. 개봉한 김성훈 감독의 영화 ‘터널’을 보는 동안, 황석영의 장편 소설 “강남몽”의 장면을 연상하였다. 장소의 차이점은 있으나 콘크리트 더미 속의 어둠에 갇힌 사람들의 삶에 대한 애착과 등장인물들이 토해 내는 사회 비판적인 시선이 비슷하다. 이 소설 1장에서 박선녀가 대성백화점 붕괴 사건 (1995. 6. 29.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현장의 콘크리트 더미의 어둠 속에 갇힌다. 

 

5장 결말에 붕괴 17일 만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임정아의 눈에 손전등 불빛과 함께 “거기 누구 있어요?”라는 남자의 굵은 음성이 들려온다. 절망의 어둠 속에서 희망의 손전등 불빛과 함께 몰려든 수십 명의 구조대원이 그녀를 구조한다.

 

영화 ‘터널’의 주인공은 이정수(하정우)이다. 그가 딸의 생일날 상쾌한 기분으로 귀가하던 중 갑자기 터널이 붕괴하여 갇힌다. 그가 가진 것 중 생존에 필요한 것은 구조대장이 전화로 확인할 당시 78% 남은 배터리의 휴대폰과 생수 두 병, 딸의 생일 케이크가 전부이다. 터널 안에 함께 갇힌 취업 준비생 처녀는 며칠을 버티다 죽는다. 그녀가 죽기 전, 그는 생명과도 같은 물을 나눠 주기도 한다. 그녀의 강아지가 그의 케이크를 먹어 치운다. 그는 강아지 사료를 찾아내어 강아지와 나눠 먹고, 자신의 소변을 마시며 생존의 몸부림을 친다. 

 

구조대장 대경(오달수)은 터널에 진입하기 위해 노력해 보지만, 구조 작업 중 인명 사고가 발생한다. 이를 계기로 구조 작업은 중단한다. 인근 제2터널 막바지 발파 작업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 65%에 달한다. 그의 아내 세현(배두나)은 그가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FM 라디오 94.2MHz를 통해 구조 작업의 중단을 알린다. 터널 안 그는 구조의 희망을 품고 버티지만, 터널 밖의 이기심으로 가득 찬 인간들의 셈법은 다르다. 결국, 구조대장의 노력 덕분에 그와 강아지는 생환한다. 해피엔딩이다.

 

‘터널’은 빛이 없는 ‘죽음’과 빛을 갈망하는 ‘희망’을 상징한다. 더불어 ‘터널’에 빗대어 생명의 존엄성을 지켜 내지 못하는 ‘인간의 이기심’을 비틀어 댄다. 즉,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이기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우의(寓意)가 담겨 있다. 복선에 세월호 사건을 비롯한 대형 재해 재난에 허술하게 대처하는 우리 사회 여러 이슈를 꼬집고 비틀기도 한다. 사회 고발적인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 영화 중 ‘터널’ 모티프의 영화가 흔하지는 않다.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2001)의 시작 장면에서 연막 소독차 뒤를 따라 뛰어가는 어린아이들이 부산진시장과 매축지마을을 잇는 짧은 터널을 통과한다. 영화 속 어린 주인공들이 그 연막을 이용해 수박을 비롯한 물건을 훔쳐 달아나는 장면이다. 이 영화에서 터널을 통과하는 장면은 ‘현실 세계에서 어릴 적 추억의 세계로 이동하는 효과’를 위한 장치이다. 

 

우리 모두 영화 ‘터널’이 고발한 ‘인간의 이기심’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자.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대구과학대학교 겸임조교수, 가야대학교 강사.

저서 : 평론집 7권, 이론서 2권, 연구서 2권, 시집 5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

이메일 shin1004a@hanmail.net

 

작성 2024.06.12 11:21 수정 2024.06.12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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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