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수 칼럼] 유좌지기(宥坐之器)와 계영배(戒盈杯), 잔에 인생을 담다

홍영수

며칠 전, 모 대학 교수직에서 정년 퇴임하신 분을 만났다. 늘 그렇듯 다섯 명이 모여서 식사 후 다담(茶談)을 나누는 중에 교수님께서 순자(荀子)의 ‘유좌(宥坐)편에 나온 ‘유좌지기(宥坐之器)’ 즉 가까이 두고 교훈을 삼는 그릇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이 그릇은 물을 가득 채우면 엎어지고 비우면 기울게 되어서 적당히 채워야 바로 선다고 한다. 이 그릇을 두고 보면서 좌우상하에 치우치지 말고 중용적 가치를 실현하라는 말이 아닌가 싶다.

 

순자(荀子)의 유좌편(宥坐篇)에 나오는 내용은, 제나라 환공의 사당(廟)을 둘러본 공자가 그곳에 기울어져 있는 그릇(敧器)에 대해 묘지기에게 물었다. 

 

“이것은 무엇에 쓰는 그릇이오?” 

“옆에 두고 보는 그릇(宥坐之器)이라 합니다.”

“이 그릇은 비워지면 기울고, 적당하면 바로 서며, 가득하면 엎어진다(虛則攲, 中則正, 滿則覆)고 들었다.” 

 

실제로 제자를 시켜서 물을 부으니 묘지기의 말 그대로였다. 

 

<채근담. 63>에 나온 내용도 비슷하다.

 

기울어진 그릇은 가득 차면 엎질러지고(敧器以滿覆) 

저금통은 비어있어야 온전할 수 있다.(撲滿以空全.

고로 군자는 차라리 비어있는 상태에 있을지언정 가득 찬 상태에 있지 않으며, 차라리 부족할지언정 완전무결함을 구하지 않는다(故 君子 寧居無 不居有 寧處缺 不處完)

 

그러므로 군자는 차라리 비어있는 상태에 있을지언정 가득 찬 상태에 있지 않으며, 차라리 부족할지언정 완전무결함을 구하지 않는다 

 

항상 곁에 두고 보는 그릇이라는 유좌지기(宥坐之器), 이 말은 과유불급(過猶不及)과 같은 의미로도 쓰인다. 즉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라는 물의 잔이다. 또한, 계영배라는 잔이 있다. 이 잔은 사이펀(Siphon)의 원리에 따른 것이라 한다. 중력을 이용해 높은 곳에 있는 술(액체)을 낮은 곳으로 떨어지게 하는 원리이다. 

 

예를 들면, 자동차 연료 탱크의 기름을 빼낸다거나 화장실에서 변기 등에서 사용하는 원리를 말한다. 또한, 예전 시골에서 석유를 통에 담아서 사 왔다. 그 석유통에서 석유난로에 자바라 펌프를 이용해 따라내는 것도 마찬가지 원리이다. 이러한 원리를 이용한 계영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있어 왔다.

 

이처럼 계영배(戒盈盃)는 가득함을 경계를 얘기하고 있다. 가득히 채우려 하면 모두 새어버리는 잔에서 가득함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새기게 하고 있다. 어찌 보면, 가득 채우려 하면 모두 새어나가는 계영배라는 술잔에도 인생을 담았던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필시 곁에 두고 계영배(戒盈盃)와 유좌지기(宥坐之器)가 주는 교훈에 귀를 기울여 새겨둬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계영배(戒盈盃)’, 유좌지기(宥坐之器) 등의 의미는 결국 중용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닌가 싶다. 중용 제1장에 보면, “중은 천하의 근본이고, 화는 천하에 통하는 이치이다. 중과 화를 이루면, 하늘과 땅이 제자리를 잡아 만물이 자라난다(中也者,天下之大本也. 和也者,天下之達道也. 致中和,天地位焉,萬物育焉) 고 했다. 너무 지나치거나 부족하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이 행동하는 것이 도(道)이고,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삶이 바로 중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붓다 또한, “가까이해서는 안 될 두 가지 극단이 쾌락과 고행이다. 극단을 버리고 중도(中道)를 취하라” 했다. 붓다의 체험적 결과인 깨달음이다.

 

가끔, 거실 한쪽에 세워놓은 기타를 가져와 어설픈 곡을 연주할 때가 있다. 연주하기 전 튜닝을 하는데 기타 줄을 너무 팽팽하게 하거나 너무 느슨하게 하면 바라는 소리가 나지 않고 음이 흔들린다. 이렇듯 우리의 삶의 태도 또한 너무 조이거나 느슨하게 하기보다는, 극과 극을 오가기보다는, 그 극단을 떠난 중도의 길을 걸어야 하지 않을까.

 

유좌지기(宥坐之器)나 계영배(戒盈盃)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생각의 발길을 좀 더 다른 곳으로 옮겨 걸어보자. 예를 들어, 어느 장소, 어떤 모임에서 유난히 말을 난사하듯 하는 사람이나 자기의 분수와 위치를 모르고서 넘지 않아야 할 선을 자주 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사람에게 유좌지기와 같은 말의 술잔과 계영배와 같은 언어의 물잔과 같은 품격과 인격의 잔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우리의 삶의 방식도 삶의 경영도 계영배(戒盈盃)와 유좌지기(宥坐之器)처럼만.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수상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수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1회 황토현 문학상 수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수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수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수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이메일 jisrak@hanmail.net

 

작성 2024.06.17 11:24 수정 2024.06.17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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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