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진 칼럼] 국밥집 단상

허정진

오래된 국밥집을 찾았다. 드문드문 옛 한옥과 노포들이 남아 있는 정감 있는 마을이다. 마당에 들어서자 흙 돌담 옆에 노란 해바라기, 꽃밭에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접시꽃이 열병식 하듯 도열해 있다. 마음이 여유롭고 정겨워진다. 작거나 크거나, 노랗거나 빨갛거나 꽃들은 하나같이 둥글둥글한 웃음이다. 하긴 모서리도 없는 둥근 꽃이 누구에게 시비나 행패를 부렸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다. 

 

은퇴 후 시골에서의 삶이 단조롭고 여일하다. 음주와 가무는커녕 쉽게 너나들이하는 친구도 없고 여행이나 취미생활도 별반 내키지 않아 시큰둥이다. 그래도 혼자 즐겨하는 일이 있다면 걷고 싶을 때 걷고, 보고 싶은 것 찾아가서 보는 깜냥 정도이다. 주변의 지인들이 가끔 인사치레로 ‘언제 한번’이라며 약속들 하지만 공염불인 줄 익히 안다. 혼자 노는 맛에 길들어져 갈수록 사람 간에 의미 부여나 기대심리 같은 것들은 자꾸 멀어져간다.

 

국밥집도 사계절 단골 중 하나이다. 마음이 허전할 때 국밥 한 그릇만 한 것도 없다. 특히 돼지머리 고기 숭숭 썰어 넣고 깔끔한 육수에 새우젓으로 맛을 낸 국물을 좋아한다. 막걸리도 한 병 겸해서 주문하는 게 습관이다. 낮술 한잔에 세상이 얼큰해진다. 진수성찬이 따로 없는, 소박하지만 행복한 밥상이다. 혼자여서 옆자리 훔쳐보기도 좋다.

 

하나둘 손님들이 모여든다. 건장한 남정네들이 하얀 안전모를 벗으며 자리에 앉자마자 냉수부터 벌컥거린다. 땡볕 아래 일하느라 검게 그은 얼굴이 목부터 말랐나 보다. 무슨 일을 하느라 용을 썼는지 개구리처럼 쉰 소리로 대화를 주고받는다. 공들이지 않고 선 하품하듯 피는 꽃이 없듯 땀 흘리지 않고 공짜처럼 쉬운 밥벌이는 세상에 없다. 국밥이 나오자마자 허기진 배부터 채운다. 

 

가족들도 많다. 손자를 데리고 온 노인이 늙수그레한 헛기침을 한다. 일찌감치 어른들 입맛에 길든 아이가 의젓하게 국밥을 먹는다. 어른이 되면 또 지금 자기와 같은 아이를 데려와 국밥을 먹을 테다. 오늘 보물 같은 추억 한 페이지 만든 셈이다. 건너편에는 부자간으로 보이는 사람 두 명이 앉았다. 서로 말은 없지만 두 눈에 효심과 애정이 그득하다. 도시로 유학을 나왔던 학창 시절, 아들을 보러 먼 발걸음 했던 아버지와 국밥집에 마주 앉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뜻밖에 젊은 사람들도 보인다. 피자나 햄버거를 마다하고 국밥집에서 데이트하는 갓 맑은 남녀가 도란거린다. 저 여자는 구수한 국밥을 먹으려고 사행시처럼 가지런히 머리를 땋고 왔나 보다. 학생같이 앳된 남자 두 명이 순대국밥에 콜라를 시켜놓고 입가심한다. 그 맛은 또 어떨지 이질감보다 궁금증이 앞선다. 주문할 때도 종업원 아주머니에게 이모가 아니고 어머니라고 부르는데 더 친밀감이 간다.

 

작은 가게가 어느새 손님들로 북적인다. 내 장사도 아닌데 기분이 좋다. 주인 할머니가 접시에 순대 몇 점 놓고 간다.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사투리, 처마 밑에 제비들 지저귀듯 정겹기만 하다. 사투리는 자기가 살아온 배경이자 자기 언어의 문패다. 주고받는 것 없이 소리만으로도 내가 누군지, 저 사람들이 살아온 장소성 안에서 발견되는 특별한 사연과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 호기심이 일어난다. 

 

뒤늦게 허겁지겁 들어온 저 허름한 남자는 왼손 숟가락으로 밥을 퍼넣으며 오른손 젓가락으로 연신 밑반찬을 집어 먹는다. 그렇지!, 굶어서는 안 될 일이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매를 데리고 온 할머니도 있다. 짐작건대 조손가정인 것 같다. 부모는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제발 살아있기나 한 건지 괜히 마음이 울적해진다. 네모난 만 원짜리 지폐를 손안에 동그랗게 말아 쥐고 손주들에게 부지런히 수저질을 재촉한다. 어느 세상이든 마침표가 없는 가난이 눈앞에 출렁거린다.

 

벽에 걸린 TV에서 뉴스가 한창이다. 나라의 정치나 노사는 서로 난장질인데 이곳은 딴 세상인 양 평온하고 평화롭다. 직선과 모서리를 가진 뉴스만 불안하게 건 공중에 매달려 있을 뿐 물이 흘러가듯, 바람이 굽어가듯 둥글둥글한 웃음들은 자극적이거나 날카롭지 않다. 부드럽고 둥근 손가락으로 옆구리를 간질이면 웃음이 나오지만, 뾰족한 물건으로 찔러대면 아픔이 될 수밖에 없는 법이다. 

 

국밥집이 둥글다. 주인 할머니의 걸쭉한 입담도 떼구루루 굴러가고, 느리게 가는 벽시계도 23.5도 기울어진 지구의 같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양철 탁자도, 등받이 없는 깡통 의자도, 장미 무늬 알루미늄 쟁반도, 뚝배기도, 플라스틱 접시도 모두 동그랗다. 누구에게나 거부감 없는 음식 맛도 그렇고, 그 연대기 같은 맛을 알고 찾아오는 손님들도 하나같이 둥글둥글하다. 모두가 어깨를 둥글게 말아 앉은 채 여기서는 함부로 각을 세우는 사람도 없다.

 

둥근 것들이 그립다. 보는 눈이 둥글고, 듣는 귀가 둥글고, 말하는 입이 둥글었으면 좋겠다. 봄을 말하려면 동그래지는 입술, 해맑게 웃는 아이의 동그란 눈, 귀밑머리 나풀거리는 둥근 부채, 우리 집 가는 구불구불한 골목길, 나비물을 끼얹는 세숫대야가 둥글다. 국민학교 나무 마루 교실의 풍금 소리, 다시 듣고 싶은 어머니 지청구, 간이역 들어서는 완행열차 기적소리, 고추잠자리 날아간 허공의 빨랫줄,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형용사들, 스무 살 적 헐렁한 청춘, 지나가는 할머니 손 붙잡고 횡단보도 건너는 학생도 역시 둥글다.

 

해 넘어가는 둥그런 오후, 어렴성 없는 강아지 한 마리 쫄래쫄래 뒤를 따른다. 내 걸음도 둥근지 뒤돌아본다. 내가 떠나보낸 사람과 나를 떠나간 사람들, 이해와 존중도 없이 각진 틀 안으로 욱여넣으려고만 했던 일들이 후회와 아쉬움으로 남는다. 양팔을 들어 둥글게 품지를 못하거들랑 가는 길 내어주기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모자라는 구석이나 틈새가 있었다면 먼저 채워주고 메꾸어 주었으면 좋으련만 번번이 행간을 놓쳐버리고 뒤늦게서야 뒷모습으로 깨닫고 있다. 

 

둥근 것들은 순하다.

 

 

[허정진]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

저서 : [꿈틀, 삶이 지나간다]

[그 남편, 그 아내]

[시간 밖의 시간으로]

[삶, 그 의미 속으로]

천강문학상 수상

등대문학상 수상

흑구문학상 수상

선수필문학상 수상

원종린수필문학상 수상

이메일 :sukhur99@naver.com

 

작성 2024.08.13 10:28 수정 2024.08.1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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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