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식 칼럼] 부부학 개론

김태식

우리 인생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어디 녹록하기만 한 일이던가? 때로는 살얼음판 위를 걸어가는 것처럼 불안하기도 하고 뜨거운 열정으로 녹아내릴까봐 걱정되는 때도 있다. 
 
혼자가 외롭고 불완전하여 사람人으로 서로 기대어 산다. 각자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남녀가 부부의 연을 이루기 위해 혼인을 하기도 한다. 마치 황량한 들판에 자라난 잡초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여름을 인내하고 가난함이 다다른 겨울 바닷가에서 외로움이 밀려올 때면 손 시린 낮은 온도로 서로의 팔짱을 낀다. 
 
낙엽에 스치는 바람 일거든 그곳에 느낌표를 붙여라. 이슬에 젖은 가녀린 기억들에게는 물음표를 붙여주고 허기진 낮달의 흔적이 보이거든 애달픔을 찍어라. 내 마음에 쉼표도 같이 기억하게 하라.
 
수많은 세월을 보내었을 나뭇등걸에서도 어김없는 계절의 변화는 연초록 잎의 점을 찍고 있다. 바라보기가 황홀할 만큼 눈부신 잎들이 앞을 다투며 돋아났다가 지고 있다. 
 
가을이 오면 부부가 손을 잡고 같이 노래하자. 가을 속으로 국화를 들여오자. 국화보다 더 예쁜 어린아이들이 해 맑은 미소 지으며 벤치에 앉아 모델이 되는 아름다운 모습을 함께 지켜보자. 부자가 아닌 서민들의 월급날에 두 사람이 탕수육 한 접시에 소주를 한 병만 비우고 집으로 향하자.

돌아오는 길에 좌판을 접어야 할 시간에 아직 팔리지 않은 홍시감이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거든 검은 비닐봉지에 붉은 가을을 담아 달라고 하자. 저녁 바람이 귓불을 스쳐 흘러가면 세월의 입김이 싸늘하게 느껴질 것이니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 나눠 가진 저녁 가을을 함께 보내자. 
 
세월 가는 것은 마치 버스정류장을 지나는 것과 같으니 놓치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배고파서 일어나는 아침, 삶을 채근하는 낮, 귀가를 서두르는 저녁이라는 정류장을 지나면 하루가 금세 가 버리기 때문이다. 벌떡 일어난 월요일에서 허리 휜 금요일과 쫓기는 토요일까지 지나고 나면 일주일이라는 정류장도 훌쩍 지나가 버린다.

잠시 돌아서면 한 달도 어느덧 지나가 버린다. 숨 돌릴 틈을 제대로 찍지 못하고 바쁘게 지나가니 한 해 한 해의 버스가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 연말이 가까워져 오면 11번째, 12번째, 월별 버스가 독촉장을 보내올 것이다. 
 
나이는 버스 번호 같다. 엊그제 20번 버스를 탔던 것 같은데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30번, 40번 버스를 보내고 50번 버스도 훌쩍 지나갔고 60번 버스도 종반을 향해 열심히 달리고 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게 이 버스는 승객에게 행선지도 알려주지 않고 써 붙여 놓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내리라는 안내방송도 없다. 아무런 타협도 없이 말이다. 다만 외롭지 않았다는 것은 부부라는 이름을 달고 같이 가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혼 때 사 왔던 물건들은 세월을 보내면서 깨어지고 낡아져서 모두 없어졌다. 하지만 아직 확실하게 남아 있는 것은 신혼 시절의 두 사람뿐이다. 
 
부부의 연을 맺었을 때의 젊은 시절에는 어디 늙으리라 생각이나 했던가. 늘어나는 허리 치수를 감당하지 못해 처녀총각 시절의 옷을 입지 못하리라는 상상이나 했던가. 불어나는 체중만큼이나 척척 들어맞는 옷은 펑퍼짐하고 편안하면 되는 것으로 알고 살아간다. 늘어나는 뱃살은 아름다운 여유로움이고 머리카락은 어느새 하나둘 파 뿌리로 되어가고 있다. 눈은 돋보기의 신세를 져야만 편안하게 글을 읽어낸다.
 
부부는 억새처럼 서로를 부비며 흔들린다. 억새는 셀 수 없는 날들을 흔들리며 살아왔다. 억새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이리저리 노를 젓는 뱃길을 위해 서있는 등대와 같고 향수의 손수건을 흔들어 준다. 억새는 밀려오는 파도와 같아서 밀물과 썰물로 번갈아 온다. 부부는 그 속에서 노를 저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어부와 같다.

억새는 시간을 정해 준다. 하얗게 밤이 그려지는 줄도 모르고 밤을 사랑하여 맞이한 아침에는 은물결, 낮달이 흐려질 때쯤에는 금물결이고, 저녁에는 잿빛을 뿜어내며 출렁이는 물결이 된다. 부부가 세월을 보내는 것과 닮아 있다.
 
달빛이 별을 품어 더욱 환한 하늘 아래에서 억새가 세월에게 탱고 춤을 추며 구애를 하고 세월이 블루스 스텝을 밟으며 억새를 끌어안으면 부부는 또 다른 하나가 될 것이다.
 

 

[김태식]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온마음재가센터 사회복지사(현)

울산신문 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해양문학상 논픽션 소설 당선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 wavekts@hanmail.net

 

작성 2024.08.13 11:33 수정 2024.08.1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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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