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색소폰 연주곡 백미 중 하나를 꼽으라면 <동백아가씨>도 몇 손가락 안에 들리라. 이 노래는 입으로 읊조리면 감흥이 가슴으로 녹아 흘러내린다.
서양 대중노래의 묘미가 선율에 있다면, 우리 것(아랑가)은 노랫말에 감흥이 매달려 있다. 노래를 애창하거나 애청하는 화자가 주인공이 되는 까닭이다.
그러니 서양 노래는 오선지 위에 선율이 올라앉은 격이고, 우리 유행가는 선율 위에 민초들의 삶을 펼쳐놓은 것과 같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 해설곡은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다. 이 곡은, 프랑스 실화소설이 노래로 화(化)한 것, 노래가 다시 영화로 탄생하는 대중문화예술품 천이(遷移)의 대표곡이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아가씨 /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1절 노랫말 뒤에 이어지는, 낭랑한 중간대사는 선율과 노랫말을 감칠맛 나게 이어준다. ‘물새 날고 파도치는 아주까리 섬/ 빨간 열매 정을 맺는 아가씨 귀밑머리/ 뱃사공아 노를 저어 떠나면 언제 오나/ 심술치마에 담은 이 동백꽃 누구를 주랴.’
동백 꽃잎에 새겨진 사연 / 말 못한 그 사연을 가슴에 묻고 / 오늘도 기다리는 동백 아가씨 / 가신님은 그 언제 그 어느 날에 / 외로운 동백꽃 찾아오려나.
노랫말이 탄생한 시대 서정과 탄생 배경지를 펼쳐보자. 1850년을 전후하여 파리 5대극장가 특별석에 밤마다 나타나, 한 달의 25일간은 흰 동백꽃, 5일간은 붉은 동백꽃을 가슴에 매달면서, 자신의 생체리듬을 표시해 온 화류계의 퀀이 있었다.
그녀는 고급 창녀, 마리 듀프레시스였다. 그녀는 프랑스의 시골에서 가난한 홀아비의 딸로 태어나 열 살 때, 배고픔을 이겨내기 위하여 한 접시의 수프와 처녀성을 바꾸기도 했다. 그리고 열두 살 때, 맨발에 누더기를 걸치고 파리로 올라왔다.
이 창녀를 사랑한 사람이 소설 <삼총사>와 <몬테 크리스토 백작>으로 유명한 알렉산드르 뒤마 페르의 사생아 아들, 알렉산드르 뒤마 피스(1824~1895)였다.
안타깝게도 그가 아버지와 함께 프랑스 남부 항구도시 마르세이유 여행을 하고 돌아와 보니, 마리는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다. 1847년, 23세였다. 당시 동갑내기였던 뒤마피스는 울면서 글을 쓰기 시작하여 3주일 만에 완성했다.
그 글이 바로 소설 춘희(椿嬉)다. 이 글은 프랑스 일간지에 연재되었고, 대중들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에 1854년 이 소설을, 주세페 베르디(1813~1901)가 오페라로 상연한다.
『La traviata, 타락한 여인』이다. 상연 극 중에 주인공 비올레타가 들고나오는 흰 꽃과 붉은 꽃이 바로 동백이다. 오페라 La traviata는 2013년 베르디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인씨앰예술단(단장 노희섭)이 공연을 하였다. 세종문화회관 강당에서.
동백(冬柏) 꽃말은‘그대를 사랑한다, 맹세를 지킨다’이다. 그래서 결혼식에서 약속의 상징으로 쓰기도 한다.
라 트라비아타를 춘희(椿姬)로 번역하는데, 춘(椿)은 일본에서는 동백이란 뜻, 우리나라에서는 참죽나무인데, 이 소설이 일본을 거쳐 흘러들어오면서, 동백아가씨 의미를 담고 왔다. 그러니 춘희란 곧 동백아가씨인 셈이다.
이미자는 우리 유행가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1990년대 앨범 600 여장, 노래 2,100여 곡을 통해 기네스북에 올랐다. 그녀는 통속적인 노랫말로 대중들과 소통했고, 2009년 그녀의 노래 인생 50년을 그림 에세이로 『동백아가씨』를 발간했었다.
이미자의 폐활량은 일반인의 2.5배, 그녀는 말하듯이 노래를 하는 성대구조를 가졌단다. 폐활량은 색소폰 연주자의 신체적 비기(祕技), 이러한 비기를 바탕으로 연주하는 멜로디에 노래의 사연을 실어보면 감흥은 어떨까.
이 노래는 1964년 영화 <동백아가씨> 주제곡이다. 김기 감독이 연출하고 신성일, 엄앵란이 열연한 영화이다. 노래는 원래 최숙자가 취입할 예정이었으나, 계약금액 문제로 딸 정재은을 임신하고 있던 이미자가 불러 대박을 터뜨린다.
이 곡은 우리 대중가요사상 최초로 100만장 음반 판매를 기록하며, 가수를 <엘리지의 여왕>으로 만들어준다. 이 곡은 ‘얼굴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구절이 ‘빨갱이를 연상’한다고 하여 금지되었다가 1987년에 해금되었다.
당시 23세 이미자는 1941년 한남동에서 출생하여, 할머니 슬하에서 성장하여 문성여상고을 졸업하였다. 1958년 텔레비전노래자랑에서 1등을 한 뒤, 이듬해 나화랑(1921~1983)의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한다.
6.25전쟁 당시, 부산 피란지에서 10세 전후의 나이로 위문공연 무대에 섰던,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베트남 전쟁 월남파병 장병 비둘기부대의 사단가가 되었을 만큼 인기가 대단했다.
동백나무(冬柏, the Japanese camellia)는 우리나라 남부와 일본 중국에 자생하는 상록교목(常綠喬木)이다. 다 자라면 6~9미터 키에 10월 초부터 4월까지 꽃을 피우고 열매에는 세 쪽의 검정색 씨가 들어있다.
꽃은 붉은색이나 흰색, 분홍색 꽃이 피기도 한다. 이 씨앗을 먹거나 물어 나르기도 하고 꽃술의 꿀을 빨아 먹는 새를 동박새라고 한다. 이때 꽃이 수정(受精)이 되기에 동백꽃을 조매화(鳥媒花)라고 한다.
동백 씨앗은 기름을 짜서 여인네들의 머릿기름으로도 사용했었다. 동동구루무를 팔러 다니던 보부상(褓負商)들이 있던 지난 시절(1960년대 초반까지) 얘기다. 동백기름은 목재의 가구재·조각재·세공재로도 사용하고, 종자는 약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김태희의 <소양강 처녀> 노랫말에도 동백꽃이 등장한다. 동백꽃 피고 지는 계절이 오면~ 돌아와 주신다고 맹세하고 떠나셨지. 이 동백꽃은 강원도 지방에서 말하는, 산동백~ 가지를 꺾으면 생강 향기가 나기 때문에 생강나무로 불린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 등장하는 꽃이기도 하다.
이 나무의 열매가 남서해안의 동백꽃 열매와 비슷하여 붙인 이름이다. 이 동백열매기름도 여인네들의 머릿기름으로 쓰였다. 소위 개동백, 있는 집 아낙네들은 해안에 서식하는 동백기름, 저자거리의 여인네와 산그늘 속에 묻혀 살던 여인들은 산동백 열매 기름으로 낭자머리 단장을 했다.
유행가 아랑가는 세상과 통한다. 이런 노랫 소리로 온 세상이 어울리는, 그날이 코스미안 사상이 완성되는 때다. ‘저마다가 가슴 뛰는 대로 살아가는 삶, 우주와 소통하는 셀렘과 지향~’
아랑가 노랫말은 수중지월(水中之月)이고, 가락은 허공지살(虛空之撒)이다. 이 노랫말과 멜로디에 코스미안 사상을 얽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코스미안 사상을 얽은, 노랫말 공모와 이에 멜로디를 얽는’콘텐츠를 세찰해 보는 숙고도 필요하리라. 이런 노래가, 21세기형~ 유행가, 진정한 아랑가로 빛나리라.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이런 류가 바로 우리의 전통 노래, '아랑가(我浪歌)'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트로트'라는 단어(용어)를 역사의 언저리에 괴어놓고, '아랑가(我浪歌 ArangGA)로 통칭을 해야 한다. 늦었다. 빠른 각성이 절실하다.
코스미안뉴스가 이런 각성을 선도해야 한다. 누가 우리의 전통 아랑가 깃대에 코스미안사상 깃발을 매달 것인가. 아랑가~ 아랑가~. 알록달록한 코스미안 사상을 펄럭거리게 할 아랑가~.
[유차영]
한국아랑가연구원장
유행가스토리텔러
글로벌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경기대학교 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교수
이메일 : 51944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