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태어나 한평생 살아가면서 가능한 한 가지 말아야 할 곳으로 흔히 ‘경찰서, 검찰청, 법원, 그리고 병원’ 등을 꼽는다. 이들 기관은 직간접적으로 우리 실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필요한 곳이지만 가게 됨으로써 마음 편한 곳은 아닌 까닭이다. 그리고 살면서 하지 말아야 할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고소‧고발’이다.
‘고소’란 범죄의 피해자와 그 법정대리인 그 밖의 일정한 자가 범죄사실을 수사기관에 알려 그 범죄를 기소하여 달라는 의사를 표명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 ‘고발’이란 고소권자나 범인 이외의 사람이 수사기관에 범죄사실을 신고하여 그 소추(訴追)를 구하는 의사표시를 뜻한다. 그런데 고소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기소되는 것은 아니며(기소편의주의) 단지 수사를 촉구하는 것으로서, 현재의 형사소송에서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검사뿐이다. (기소독점주의)
그런데 시골에 전원주택을 지어 살다 보니 불가피하게 사기로 고소할 일이 생기고 말았다. 정년 퇴임 후 남은 생을 글 쓰며 조용히 살고자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에 땅을 사 아담한 전원주택을 지었다. 그런데 택지 분양업자가 양심이 매우 불량하여 입주 전에 한 약속들을 이런저런 핑계로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주 후 새로 내준다던 6m 신규 도로도, 조감도 대로의 단지 개발도, 축대 배수로 공사도 다 해주겠다고 약속해 놓고서는 어느 날부터 이를 부인하며 배 째라 식으로 나왔다. 현재는 차량이 상호 교행할 수 없는 현황도로뿐인 까닭에 차량 교행이 가능한 6m 이상의 신규 도로가 꼭 필요했다.
또한, 분양 당시 조감도에는 단지 내에 있는 저수지를 중심으로 체육시설, 쓰레기장, 낚시터, 정자, 그리고 캠프장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저수지 일대가 사유지라며 철문을 달고 입주민들의 출입을 아예 막아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장마철 물 넘침을 우려해 요구했던 축대벽 배수로 터도 분양업자 자신의 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배수로 공사를 해주겠다며 공사계약서에 허위 명기까지 해주었다.
전원주택을 완공하여 입주한 다음 분양업자에게 내용 증명, 전화, 그리고 문자 메시지 등을 통해 약속 이행을 촉구했으나 그때마다 이런저런 구차한 변명과 함께 계속 시간을 끌며 약속 이행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늘 이런 방법으로 택지를 개발 분양해 온 것이 빤해 그냥 모른 척 묵인하고 넘어갈 상황이 아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단지 내에 입주한 입주민들과 힘을 합쳐 해결책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나 일부 입주민들은 분양업자의 사기 사실을 알면서도 웬일인지 궁색한 변명과 핑계로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며 비협조적으로 일관했다. 현재 현황도로뿐인 맹지에 집을 지어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묵인하고 방조하는 그들의 비협조적인 태도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특히 어리석고 생각이 짧은 일부 입주자들은 분양업자의 감언이설에 분양업자 편에 서서 시시때때로 함께 술 마시고 노래하며 자신들이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를 아예 포기해 버렸다. 폭력 전과가 있는 분양업자의 보복이 두려워 그렇지 않나 싶어 실망과 함께 입맛이 씁쓸했다. 그런데 법치 국가에서 보복이 두려워 분양업자의 사기 행각을 묵인한 채 그대로 넘어간다면 분양업자는 더더욱 기고만장할 것이고 또다시 나쁜 짓을 할 게 불을 보듯 뻔했다.
결국, 다른 입주민들의 동참을 기대할 수 없어 분양업자에게 경고의 의미로 혼자서라도 법적 대응을 하기로 했다. 그동안 이런 일을 대비해 녹음도 하고 사진을 찍어 증거를 수집해 왔기 때문에 사기 고소장만 작성하면 되었다. 인터넷을 뒤져 고소장 예문들을 참고하고 지인 경찰, 변호사의 조언을 받아 고소장을 완성하여 증거물들과 함께 경찰서에 난생처음으로 고소장을 제출하였다. 그리고 신규 도로와 단지 개발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현수막도 만들어 단지 입구에 걸었다. 글 쓰며 전원생활을 하다 때가 되면 조용히 생을 마감하고 싶었는데…, 본의 아니게 고소하는 일까지 벌어져 마음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그런데 분양업자는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뉘우치기는커녕 고소 사실을 알고 필자의 집에 설치된 간이 창고, 천막 차고 등을 위반건축물로 군청에 신고하더니 한술 더 떠 “무고죄, 영업 방해, 그리고 명예 훼손” 등으로 맞고소하겠다며 협박성 문자 메시지를 보내오는 등 보복을 서슴지 않았다. 남의 눈에서 눈물 나게 하면 자신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난다는 사실을 모르는, 분양업자의 망가질 대로 망가진 영혼이 오히려 짠하고 가엾게 느껴졌다.
분양업자처럼 파렴치한 사기꾼들이 사회 곳곳에서 제 세상인 양 활개 치며 넘쳐난다면 이를 어찌 정상적인 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 2024년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사기범죄 발생 건수는 2012년 23만9720건에서 2020년 35만4154건으로 대폭 증가하였다. 이 같은 사기범죄는 우리나라의 전체 범죄 가운데 압도적 1위로, 범죄 4건 중 1건이 사기범죄다. 그런데 설령 사기로 고소당하더라도 ‘증거 부족’이란 이유로 사기 사건 기소율은 20% 미만으로 매우 저조하다. 또한, 사기로 기소될지라도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쳐 재범률의 경우 타 범죄들보다 월등히 높다. 우리나라는 경찰, 검찰 그리고 법원이 앞장서 알게 모르게 사기꾼 양산에 한몫하며 ‘사기 공화국’을 조장하고 방조하는 형국이다.
그런데 사기는 타인을 고의로 속여 이익을 취하는 악랄한 범죄 중 하나다. 특히 사기범죄는 피해자의 생계를 위협하고 삶까지 파괴하는 까닭에 '경제적 살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따라서 사기범죄를 저지른 사기꾼은 법에 따라 반드시 처벌받는 사필귀정으로 귀결돼야 순리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법은 있으나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지도층이나 재벌, 힘 있는 자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채 슬그머니 비껴가고, 힘없는 무지렁이 힘없는 국민에게는 ‘법대로’라면 매우 슬픈 일이다. 사기꾼들이 사회 곳곳에서 더는 활개 칠 수 없도록 사기범죄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법을 현실에 맞게 조속히 개정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할 때다.
[이윤배]
(현)조선대 컴퓨터공학과 명예교수
조선대학교 정보과학대학 학장
국무총리 청소년위원회 자문위원
호주 태즈메이니아대학교 초청 교수
한국정보처리학회 부회장
이메일 : ybl773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