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식 칼럼] 어느 가을날의 하루

김태식

이른 아침 동네 한 바퀴 산책을 나서면 여름의 열기는 간데없고 볼에 와 닿는 바람이 어느새 차갑다는 느낌을 준다. 후텁지근함도 함께 가버리고 상큼함이 있다. 

 

‘이제 가을이 왔구나’하고 어루만져 주고 싶기도 하다. 가을이라는 계절은 언제나 그랬다. 흐트러져 있던 모든 것들을 제자리로 돌려보내야 하고 알맹이를 챙기게 한다. 한여름 동안 내리쬐던 뙤약볕을 묵묵히 받아들였다는 흔적들을 하나둘씩 거두어들이게 한다. 

 

한여름의 푸르름이 짙었던 잎새 사이로 석류 알이 영글어 가더니만 이제는 제법 통통해졌다. 속까지도 분명 튼실한 알맹이를 맺었으리라. 가을에 붉어지기만을 기다리던 석류 알은 그 속을 마침내 드러내고 말았다. 언젠가는 빠알간 석류 알이 보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지난밤 동안 그것을 터뜨리고 말았나 보다. 손끝으로 몇 알을 집었다. 혀끝에 닿는 맛은 새콤한 것이었다. 달콤하리라 기대했던 붉은 색과는 빗나가 있었다. 색깔과는 어울리지 않는 맛이었다. 

 

코스모스는 벌써 피어있었다. 요즈음에는 가을에 피는 것이 아니라 초여름에 피어 가을에는 꽃잎들이 벌써 지고 있었다. 듬성듬성 피어있는 꽃들이 피어야 할 시기를 잊어버리기라도 했던 양 이제 피어나고 있었다. 한곳에 모여 피지를 못한 꽃들은 그다지 예쁘지 않다. 무리에서 벗어나 있어 그러한지 초라해 보이기도 한다. 꽃들은 서로 어우러져 피어야 보기에 좋다. 

 

서로가 기대며 살아가는 모습이 예쁘게 보이기 때문이다. 서로 모여 제때 무리를 이루어 핀 코스모스꽃의 흔들림은 하늘하늘거리는 예쁜 모습이다. 그렇지 못한 것들은 ‘촐랑촐랑’이라는 경망스러운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무화과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먹는 과일로 생각하지 않는가 보다. 어느 집 담벼락에 기대어져 나무 위에 매달린 채 그 누구의 시선도 한 번 받지 못하고 그냥 보이는 열매로만 걸려 있다. 그중에 잘 익은 녀석을 하나 골랐다. 

 

연두색보다는 약간 연하고 꼭지 부분에서 위쪽으로 갈수록 약간 불그스럼한 빛을 띠어야 한다. 또한 몽실한 끄트머리가 열십자로 벌려져 있어야 더욱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이다. 혀끝에 닿자마자 그 맛을 느낄 수가 있었다. 예전의 맛이었다. 어릴 적 나의 고향집에는 아주 큰 무화과나무가 있었기에 나는 그 맛을 잘 안다. 

 

봄에 늦게 꽃을 피운다는 대추나무는 단단한 씨만큼이나 병충해에도 제법 강하다. 하루가 다르게 연둣빛이 불그스레하게 바뀌어 간다. 아침저녁으로 산책하는 길가의 집들 담벼락에는 생각보다는 많은 대추나무들이 보인다. 나무 끝이 약간 휠 정도로 꽤 많이 열려 있다. 

 

오다가다 하나씩 따서 맛을 보면 입안은 달큰하다. 오동통하게 물이 오른 대추다. 푸른색이나 붉은색보다는 반반 섞인 것이 훨씬 단맛이 많다. 사람들의 손길이 쉽게 닿는 곳에는 대추가 많이 없다. 미리 따버려서 그렇단다. 한참 높은 곳에는 볕을 많이 받아 그러한지 어느새 시들었다. 그러다 못 따면 그것은 까치밥이라는 이름으로 인심을 쓰는 것이다.

 

어느 가을날의 오후. 

점심을 먹은 뒤 졸음을 쫓기 위해 사무실 근처에 있는 숲으로 갔다. 빙빙 맴을 도는 것이 있었다. 잠자리였다. 고추잠자리가 아닌 검은 색을 띤 것이었다. 두 마리가 포개져 같이 돌고 있었다. 한 쌍이었다. 짝짓기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맴을 도는 것을 보는 내가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로 한참을 도는가 싶었더니 떨어졌다. 암컷으로 보이는 녀석이 조그마한 마른 풀 막대기에 앉아 버렸기 때문이었다. 구애하는 것인지 아니면 애걸하는 것인지 수컷으로 보이는 녀석은 연신 돌고 있었다. 빙빙빙... 

 

그 녀석들 살면 며칠을 산다고 저렇게 아등바등 사는 것일까? 그 맑던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잿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아침의 일기예보가 맞아떨어지는가 보다. 그러다 찬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잠시의 여유도 주지 않은채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였다. 

 

짝짓기를 하던 잠자리

불그스럼하게 영글어 가던 대추 

먹음직스럽게 끄트머리에 열십자를 그었던 무화과

늦게 피었던 코스모스꽃 

밤새 제풀에 속을 터뜨렸던 석류알

 

모두가 이 가을비에 젖어가고 있었다.

 

 

[김태식]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온마음재가센터 사회복지사(현)

울산신문 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해양문학상 논픽션 소설 당선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 wavekts@hanmail.net

 

작성 2024.08.20 10:50 수정 2024.08.2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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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