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은 인간의 생존 환경을 극한의 상황까지 몰아붙이는 시기이다. 군대에 의한 잔혹한 살상, 식량 부족, 전염병 창궐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닥쳐오는 때이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또한 그러한 시기였다.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살펴보면, 극한 상황이었던 전쟁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동국사'를 읽었다는 기록이 나와 눈길을 끈다. 다음은 그 해당 기록이다.
『난중일기』 1596년 6월 25일
저녁때까지 계속 비가 내렸다. 홀로 수루 위에 앉아 있으니 온갖 생각이 들었다. 동국사를 읽어 보니 개탄하는 뜻이 많았다.
[원문] 雨雨終夕 獨坐樓上 懷思萬端 讀東國史 多有慨嘆之志也
위 일기에서 이순신은 '동국사'를 읽은 사실과 그 내용에 대한 비평을 간략히 서술하였다. 우선 '동국사'가 무엇인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노산 이은상은 『이충무공전서』 번역본을 저술하면서 '동국사'를 ‘우리나라 역사’라고 해석하였다. '중국(中國)'과 대비되는 말인 '동국(東國)'이 '조선'을 가리키므로 '동국사(東國史)'를 이렇게 해석한 것 같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이은상의 해석이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사료 편찬에 대해 조금이라도 파악하고 그 시대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동국사'가 단순히 '우리나라 역사'로 해석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전기에 조선은 관찬사서(官撰史書)인 『동국사략(東國史略)』과 『동국통감(東國通鑑)』을 편찬하였다. 『동국사략』은 태종 때 하륜(河崙)과 권근(權近) 등에 의해 편찬되었으며, 『동국통감』은 성종 때 서거정(徐居正)에 의해 편찬되었다. 이 두 책의 이름은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책 이외에도 유사한 이름을 가진 사찬사서(私撰史書)가 조선 전기에 여러 차례 편찬되었다. 이우(李堣)의 『동국사략』, 박상(朴祥)의 『동국사략』, 유희령(柳希齡)의 『표제음주동국사략(標題音註東國史略)』, 민제인(閔齊仁)의 『동국사략』, 유중영(柳仲郢)의 『동국사략』 등이 그러한 책이다. 즉, 조선 전기에는 '동국사(東國史)'가 당대의 사서 이름에 널리 쓰였다.
『동국사』는 위 『난중일기』의 기록과 비슷한 시기인 1594년의 『선조실록』 기사에도 언급되어 있다. 다음은 그 해당 기록이다.
『선조실록』 권56, 선조27년(1594) 10월 21일 을축 6번째 기사
(선조가) 전교하기를,
"『동국사(東國史)』를 사고(史庫)에다 소장해 둔 것은 숨은 뜻이 있어서일 것이다.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와 다른 『동국사』를 양호(兩湖:충청도와 전라도)에 하서(下書)하여 널리 구해서 올려보내도록 하고, 그렇게 해서도 얻지 못하면 그때 사고에 소장된 것을 가져온다하더라도 될 것이다. <<후략>> 이 밖에도 모든 동국의 문적(文籍)에 관계된 것은 아울러 양호의 감사(監司)에게 하서하여 널리 구해서 즉시 올려보내도록 하고, 올린 자에게는 논상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의논하여 아뢰라."라고 하였다.
위 『선조실록』 기사에 나타난 『동국사』는 사고에 소장되어 있다는 언급이 보이는 점으로 보아 관찬사서일 가능성이 높다. 『난중일기』는 동국사의 내용 중에 개탄하는 뜻이 많다고 서술하였는데, 이는 하륜·권근의 『동국사략』과 서거정의 『동국통감』에 실려 있는 사론이 대체로 유교적 관점에 의한 신랄한 비판을 싣고 있는 점과 부합한다. 즉, 『난중일기』에 언급된 『동국사』는 하륜·권근의 『동국사략』과 서거정의 『동국통감』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선조실록』의 기사에 의하면 선조는 충청도와 전라도의 감사로 하여금 동국사를 널리 구해서 조정으로 올려보내도록 하였는데, 시기적으로 위 『난중일기』 기록과 가까운 때이므로 이 일이 이순신이 『동국사』를 읽게 한 계기가 된 듯하다.
긴박한 전쟁 시기에도 조정은 사서에 관한 정책을 수립하고 전방의 장수는 사서를 읽었다는 사실은 당시 조선이 가진 역사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비슷한 시기인 1596년의 『선조실록』 기사에 따르면, 당시 검토관(檢討官) 정경세(鄭經世, 1563~1633년)는 선조가 있는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선조실록』 권60, 선조28년(1595) 2월 8일 신해 6번째 기사
"나라에 역사가 있는 것은 관계된 바가 매우 중합니다. 나라는 망할 수 있으나 역사는 없을 수 없습니다."
(國之有史 所係甚重 國可亡 史不可無)
[참고자료]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조동걸·박찬승,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 (상)』, 1994, 창비
[윤헌식]
칼럼니스트
이순신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저서 : 역사 자료로 보는 난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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