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이 험악해지면 헛웃음이 나온다. 체념(諦念)과 달관(達觀)의 경지에 이르러, 새로움을 지향하는 화두도 회자 된다. 1972년 신중현이 지어서 부른 노래 <아름다운 강산>이 바로 그런 유행가다.
이 유행가 아랑가는 1969년 3선개헌의 꼬랑지에 매단 유신 시대, 그 세월 언덕 저 너머에 있은 듯하던, 그 시절로부터 먼 훗날에 다가올 사랑하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그리워한 절창이다.
이 노래는 1986년 제10회 아시아경기대회와 1988년 9.17~10.2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제24 서울올림픽대회의 흥몰이 노래 중의 한 곡이다. <아침의 나라에서>, <손에 손잡고> 등과 같이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의 허공을 향하여 쏘아 올려진, 허공지살(虛空之撒)을 절창이다.
하늘은 파랗게 구름은 하얗게 / 실바람도 불어와 부풀은 내 마음 / 나뭇잎 푸르게 강물도 푸르게 / 아름다운 이곳에 / 내가 있고 네가 있네 / 손잡고 가보자 / 달려보자 저 광야로 / 우리들 모여서 / 말해보자 새 희망을 / 하늘은 파랗게 / 구름은 하얗게 / 실바람도 불어와 / 부풀은 내 마음 / 우리는 이 땅 위에 / 우리는 태어나고 / 아름다운 이곳에 / 자랑스런 이곳에 살리라 / 찬란하게 빛나는 / 붉은 태양이 비추고 / 파란 물결 넘치는 / 저 바다와 함께 있네
이 노래는, 1972년 당시의 시대적 무게를 벗어나 새로운 대한민국을 지향했던 대중문화예술가 신중현이 꿈꾸었던 우국가, 애국가였다. 특히 노랫말을 세찰 해 보시라. 1972년이 아니라 21세기의 대한민국을 서정한 어휘와 단어들이 아닌가. 이는 그 시절 최고의 권위에 항변했던 신중현의 부르짖음이었다고 함이 적절하리라.
이처럼 세월의 여러 우여곡절을 거친 뒤, 1988년 이선희 목청을 넘어 온 이 절창에는 1990년대로 향하는 대한민국의 풍취가 걸렸다. 1987년에 한국대중가요 100년사의 노정에서 금지곡이 해제된다. 3S시대도 저문다. 섹스‧스크린(영화)‧스포츠의 이니셜이자 정치적인 캐치프레이즈가 변곡점을 맞이했던 것이다.
1986년 아시안게임 2년 뒤, 1988년 서울올림픽준비 열기를 달군다. 전통가요 부활로 시대 이념의 감성 물길도 방향을 튼다. 이때부터 우리 전통가요 아랑가(트로트라고 불리는) 삼국시대가 다시 열리고, 현철‧태진아‧설운도‧송대관‧주현미 등의 기성세대 물결이 넘실거리고, 문희옥‧박상철‧장윤정‧박구윤‧신유‧박현빈으로 이어지는 신세대 아랑가 물줄기가 강이 되어 흐른다. <아름아운 강산> 2절 노랫말을 펼쳐보자.
그 얼마나 좋은가 / 우리 사는 이곳에 / 사랑하는 그대와 노래하리 / 오늘도 너를 만나러 / 가야지 말해야지 / 먼 훗날에 너와 나 살고지고 / 영원한 이곳에 우리의 / 새 꿈을 만들어 보고파 / 봄여름이 지나면 / 가을 겨울이 온다네 / 아름다운 강산 / 너의 마음 나의 마음 / 나의 마음 너의 마음 / 너와 나는 한마음 너와 나 / 우리 영원히 영원히 사랑 / 영원히 영원히 / 우리 모두 다 모두 다 / 끝없이 다정해.
<아름다운 강산> 노랫말 1, 2절을 한 어휘로 농축하면, ‘21세기 대한민국의 코스미안’이다. 아름다운 이곳에 너와 내가 손을 잡고 새 희망을 노래하는 순간, 그 공간, 그 지향점이 바로, ‘가슴 뛰는 대로의 삶을 지향하는 사상이 현실화된 장’이 아니랴. 그렇다, 유행가 아랑가에서도 코스미안사상의 답을 찾을 수가 있다.
신중현 원곡의 <아름다운 강산>을 리메이크한 이선희는, 그 시절 누나부대를 몰고 다닌 가객이고, 가수 이승기의 사부이다. 그녀는 1964년 보령에서 출생하여 상명여고와 인천전문대를 졸업하였으며, 1984년 제5회강변가요제에서 〈J에게〉로 대상을 수상했다. 그해 12월 최고인기가요상‧신인상‧10대가수상을 동시에 받았다.
그녀는 소년 같은 헤어스타일과 바지만 입는 여자가수로 화제를 모았으며, 1985년 <아 옛날이여>, 1988년 <아름다운 강산〉 리메이크, 1992년 <조각배>를 통하여 국악과 가요의 콜라보레이션을 이끌기도 했다.
국악과 우리 전통가요의 콜라보레이션, 이런 유의 대중가요 유행가가, 필자가 주창하는 진정한 아랑가(ArangGA)이다. 미국에서 탄생한 폭스 트로트(F0X Trot)가 일본을 경유하여,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달고 들어온 이름패, 도로또(도롯도, 도로도)를 상쇄할 수 있는 것이다.
1960년대 우리 전통가요의 틀이 된, 4/4박자 리듬과 오선지 악보 위에 애잔한 노랫말을 올라 앉힌 가창 풍의 노래는 한동안 ‘뽕짝’이라는 단어, 용어, 장르 개념으로 통용되었었다. 이 뽕짝이라는 단어가, 너무 통속적이면서 비속한 의미로 인식된다는 세류의 풍설에 대응, 대체한 단어, 용어, 장르가 오늘날 풍성거리는 트로트라는 말이다.
사전적으로 ‘여우가 빨리 달린다, 혼란스럽다’는 의미의 폭스 트로트에 근간(根幹)한 ‘트로트’라는 말은, 우리 전통노래의 리듬과 감흥과 도무지 연계되지 않으며, 연결시킬 수도 없다. 그런데, 왜 통용되고 있는가. 누구의 책임을 따지기 전에, 우리 전통가요의 본말을 바로 세워야 한다.
왜 아무도, 누구도 말이 없는가. 이제 코스미안뉴스가 깃발을 흔들어야 한다. 필자는 문화체육관광부로 ‘트로트를 아랑가로 대체하자는 제언’도 했다. ‘아랑가라는 용어 속에, 트로트와 관련한 일체의 의미와 활동을 함의’하는, 특허 상표도 출원하여, 특허청의 심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아름다운 강산> 작사 작곡가 신중현은 한국 록 음악의 전설이다. 그는 1938년 서울 명동에서 출생하여 서라벌예술고를 졸업하였다. 아버지는 이발사 어머니는 미용사 집안으로 그 시절로 치면 유복하게 유년기를 보냈다. 1938년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우리나라 민족문화말살정책을 펼치던 시기다. 군국주의로의 편향과 신사참배와 창씨개명이 그 실증적 증거다.
1938년에는 조선인육군징집령을 발령한 시기다.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기간이었으며, 1941년 미국 하와이 진주만 기습공격 전으로써, 조선인 징집과 징용 수탈이 만행 되던 시기다.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신중현의 아버지는 일본제국주의의 침탈을 피해 만주로 떠났다. 신중현의 다섯 살 때다. 신중현은 아버지를 따라 만주벌판을 떠돌았고, 여덟 살 되던 해에 해방광복(1945)을 맞이하여 귀국하였다.
이런 중에 1950년 6.25전쟁이 또 발발한다. 이때 충북 진천군 백곡면으로 피난을 가 있었는데, 그 와중에 부모를 모두 잃고 고아가 되었다. 신중현이 13세 때다. 그는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먼 친척집 공장에서 일하며, 독학으로 기타를 익혔으며, 열여덟 살에 친척집을 나온다.
그해 1955년 미8군 무대에서 기타리스트 히키-신으로 데뷔한 그는 1958년 단독앨범을 냈다. 1964년 자신의 첫 앨범이자 한국 록음악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밴드 <애드 포>(Add4) 데뷔 앨범이었다. 이 앨범은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신중현은 1968년 자매 듀오 펄시스터즈의 데뷔음반을 제작하면서 프로듀서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이때 발표한 <님아>, <커피 한 잔>, <떠나야 할 그 사람>은 한국에서 히트한 거의 최초의 로큰롤과 R&B(리듬 앤드 블루스) 곡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1975년 대마초사건(해피스모그사건)으로 인해 5년 동안 활동을 하지 못했다. 심지어 서대문형무소 옥살이도 했다. 서대문형무소는 1908~1998을 거치면서, 전옥서·경무청감옥서·경성감옥·서대문감옥·서대문형무소·경성형무소·서울형무소·서울교도소·서울구치소라는 이름으로 변천되다가 1987년 의왕시로 이전했다.
1979년 그는 마흔이 넘은 나이로 컴백 해 <신중현과뮤직파워>, <세나그네>같은 밴드를 결성했지만, 이어진 군사정권 아래에서도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언론과 음악비평계는 그의 음악사적 의미를 재조명했으며, 봄여름가을겨울, 강산에, 윤도현, 한영애를 위시한 뮤지션들은 헌정앨범 <A Tribute To 신중현>(1997)을 발표했다.
2006년 11월 16일 신중현은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은퇴를 선언하고, 은퇴공연을 가졌다. 인천에서 시작한 그의 은퇴 공연은 전국을 돌고 마지막으로 서울에서 45년 음악 인생 대미를 장식했고, 그는 한국 록음악계의 전설로 남았다.
그는 오늘날 ‘우리음악의 뿌리가 없다’는 사실을 문제점으로 꼬집고 ‘대중음악이라면 그 나라의, 국민적이고 토속적인 문화를 담고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외국의 음악에 치우친 경향이 있다’고 비판했다. 이는, 필자가 국민켐페인으로 펼치고 있는, ‘트로트라는 용어를 아랑가(ArangGA)로 변경, 대체하자는 맥락’과 연계되는 통로이다.
1곡의 유행가 아랑가를 탄생 시점으로 스펙트리밍하여, 당시의 시대정신과 메시지로 반추해보면, 나라와 민족의 흥망성쇠 궤적을 되짚을 수 있다. 흘러온 유행가의 매력이다. 아랑가 1곡은 작사, 작곡, 가수, 탄생시대, 창작 모티브, 노랫말 사연, 창작 당시를 살아낸 사람들의 삶이 아롱져 있다.
[유차영]
한국아랑가연구원장
유행가스토리텔러
글로벌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경기대학교 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교수
이메일 : 51944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