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식 칼럼] 달 아래에 묶인 수레

김태식

밤늦게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목에 남루한 옷차림의 노인 한 분이 길 위에서 힘겨운 손놀림을 하고 있다. 길가에 흩어진 폐지를 주워 수레에 싣고 있었으나 잘되지 않는다. 

 

“종이를 주워 싣고 오다가 길바닥에 흘렸는데 주워 올릴 기운이 없네요,” 

“할아버지, 그런데 왜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수레를 끌고 나오셨나요?” 

“낮이나 저녁 시간에는 나보다 젊고 빠른 사람들이 폐지를 모두 걷어가고 내 차지는 없는걸, 이 정도면 5,000원가량 받는데 집에 있는 마누라하고 라면은 사서 끓여 먹을 수 있다오.” 

 

나의 귀를 스쳐 간 ‘마누라하고 라면은 사서’라는 말에 나의 가슴이 찡해진다. 3년째 치매를 앓고 있는 마누라에게 맛있는 음식을 못 챙겨줘 늘 미안하다는 할아버지. 간간이 길을 비키라고 경적을 울려대는 차량이 올 때마다 힘겨운 허리를 펴야 하는 할아버지. 

 

자제분은 아들만 셋인데 큰아들과 둘째 아들은 명문대학을 나왔다고 한다. 잘 생기고 똑똑하여 부잣집에 장가를 갔으며,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그곳에서 대학교수로 있다고 한다. 셋째 아들은 서울의 명문 의과대학을 졸업하여 아들이 없는 부유한 집안의 데릴사위로 갔고, 개인병원의 원장이라고 한다. 할아버지는 이어지는 자식 자랑에 입이 마른다. 

 

미국에 있는 아들과 며느리가 돈을 보내 주려 하는데 자식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받지 않는단다. 셋째 아들과 며느리는 자신들을 서울로 모셔 가려는데 그곳에서의 생활이 답답할 것 같아 본인들이 가지 않는단다. 이태 전에 ‘아버님과 어머님이 우리랑 합치면 자식이 좋지 않대요.’ 라는 며느리가 했던 말도 있고...... 말끝을 흐린다. 여러 가지 그림이 나의 눈에 그려진다. 할아버지는 말을 이어간다. 

 

“우리 아들이나 며느리가 종이 줍는 것을 알면 난리가 날거야. 내 자식들은 모두 효자라서.” 

 

자기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인지 애써 자식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감추려는 듯 했다. 할아버지의 손자 자랑까지 들었을 때는 꽤 시간이 흘렀다. 

 

일순간 나의 가슴에는 슬픔이 고여 든다. 할아버지와 병으로 누워있는 할머니가 자식들을 키우는 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이제 몸이 늙어 자신의 거동조차도 힘든 할아버지는 늦은 밤에 폐지를 줍는 신세가 되었고, 할머니는 치매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환자가 되어있다. 

 

애지중지 키워온 자식들이 늦은 시간에 폐지를 주우러 다니는 아버지를 생각할까. 과연 노인의 말처럼 자식들이 용돈을 보내 주려 하고, 며느리가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모시려 할까. 

 

나이가 많고 힘이 약한 할아버지 혼자 어설프고 힘없이 줄을 묶었기에 수레에 실린 폐지가 반쯤이나 흘러내렸던 것이다. 그것들을 모두 실어 올리고 나니 나의 이마에도 땀이 맺혔다. 나는 수레의 줄을 매어 주며 내일은 할아버지에게 더 많은 폐지가 이 수레에 실리기를 기원했다. 한편으로는 할아버지가 이 수레를 끌지 않아도 될 만큼 자식들의 보살핌이 있길 빌었다. 

 

할아버지의 집은 약간 오르막길에 있다고 하니 그냥 돌아서지 못해 수레를 밀어 집에까지 도착했다. 좁은 골목길을 돌고 돌아 다다른 할아버지의 집에서 내려다보이는 도심의 밤은 화려한 불빛으로 도배가 되어있다. 아주 오래된 슬레이트 지붕에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내는 대문은 노인의 굽은 허리만큼이나 힘들어 보인다. 희미한 불빛으로 집안은 잘 들여다보이질 않는다. 경사진 길 어귀에 수레를 두고 집으로 들어가려 하니 아래로 굴러갈 것 같아 노인은 줄로 묶어둔다. 

 

“젊은이, 이거 고마워서 어쩌나.” 

“아닙니다. 할아버지, 제 아버지와 비슷한 연세라서 그랬을 뿐입니다.”

 

 먼 친척의 도움으로 사람이 살지 않던 집에 보금자리를 마련해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살아가는 할아버지. 고맙지만 시원한 물 한 그릇 대접 못하는 자신이 너무 미안하다고 한다. 기울어진 나무 대문을 붙잡고 힘들게 서 있는 할아버지가 돌아서는 나의 등 뒤에 힘없는 목소리를 다시 보낸다. 

 

“내일 이 종이를 팔면 우리 할멈과 내가 3일 동안은 양식 걱정 안 해도 되겠네.” 

 

그래도 그날만은 부자가 된 듯한 할아버지의 희망이 서려 있는 한마디가 나의 귓전을 맴돌며 떠나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세월의 흐름 앞에 허리가 휘었지만, 늦은 밤의 풍성한 폐지를 차지했기에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 노인은 힘든 하루를 무사히 접었다는 안도감과 함께 달빛을 가슴에 묻어두기라도 하려는 듯 하늘을 보며 허리를 편다. 우리 인생도 노인이 묶어둔 수레처럼 세월을 먹으며 굴러가는 것을 붙잡아 맬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노인이 묶어 둔 수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깊은 밤길을 옮기는 나의 마음은 무거웠다.

 

 

[김태식]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온마음재가센터 사회복지사(현)

울산신문 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해양문학상 논픽션 소설 당선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 wavekts@hanmail.net

 

작성 2024.08.27 10:14 수정 2024.08.27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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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