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주하는 읍내에서 상자지향의 선산까지는 승용차로 20분 남짓 거리이다. 아버지가 그리울 때마다 종종 운전대를 잡는다. 아무 격식도, 차림도 없이 그냥 산소 제절에 앉아 멀리 강줄기를 바라보거나 산바람 소리를 들으며 마음에 평안을 찾는다.
선산으로 가는 길은 두 갈래다. 한쪽 길은 산 중턱을 구불구불 넘나드는 오래된 옛길을 포장한 것이고, 또 한쪽 길은 논밭 사이로 직선으로 새롭게 단장한 평탄한 길이다. 어느 길이나 향촌의 한산한 소로며 예스러운 시골길임은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편리한 신설도로를 이용한다.
내 길은 옛길이다. 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에 바쁘고 불편할 일은 없다. 찾아뵙는 그 과정 속에 그리움과 정겨움이 먼저 다가온다. 어린 시절 아버지 손을 잡고 비포장인 도로를 구식 버스를 타고 덜컹거리며 지나다녔던 추억도 한몫한다. 구불구불 산 중턱에 올라서면 발 아래 둥두렷한 산 능선과 초록의 메숲진 나무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떼, 창을 열어 청정한 녹음과 새소리도 들을 수 있다. 몇 분 빠른 편리함보다 ‘천천히’ 갈 수 있는 옛길이 더 좋다. 어쩌면 나만의 힐링의 숲길인지도 모른다.
오르다가 내리다가, 숨었다가 보였다가, 빨리 가거나 앞서가지 않는 옛길은 직선을 만들지 않는다. 속도보다 나선형의 시간에 익숙한 굽은 길은 발 없는 뱀이 걷는 보법이며, 둥근 나이테를 목각하는 산의 오래된 습관이다. 맨바닥을 견디며 오래 숙성된 구불구불한 옛길, 나무의 각도를 여는 바람의 고샅길처럼 언제나 순한 모습 그대로다.
햇빛은 따사롭고 흙은 부드럽다. 나무도 스스로 서 있고 다람쥐도 스스로 먹이를 찾는다. 인간과 자연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또한 속박하지 않는다. 서로를 간섭하지 않고 차별하지 않고, 버릴 것도 불필요한 것도 없는 자유로운 공존이다. 시골로 이주해 온 이유가 그렇게 자신에게 주체적이고 자립적인 삶의 존재로 살아가고 싶었다.
그 길이 사라져가고 있다. 요 몇 년 사이에 그 옛길의 풍광이 하나씩 하나씩, 조금씩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태양광을 설치한다며 양지바른 산허리를 허물고 빌딩 유리 벽 같은 이질적인 시설이 하나둘 들어서고, 차 몇 대 지나다니지도 않는 도로를 직선화한다고 이 산 저 산을 반토막 내고, 마을 민원을 피해서 옮겨온 공해나 오염 시설들이 숲을 밀어낸 골짜기에 들어섰다.
천년만년 이어온 숲과 인간의 얼개가 무너지고, 그곳에 삶의 터를 이루었던 야생동물들이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간편함과 편리함을 이유로 자연의 질서와 균형이 허물어지고 있다. 살아있는 생명들은 둥글지 않은 것이 없다. 그들에게는 둥글게 돌아가는 세상이 가장 편하고 친숙하다. 속도보다는 여유, 도태보다는 공존하는 곡선의 시간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오랜 것은 오래된 대로, 시골이면 시골다웠으면 좋겠다. 빠른 길도 필요하고 천천히 가는 길도 필요하다. 자기만의 개성이 있어 유행이나 무리를 따르지 않는 사람이 있듯이 살아가는 환경 또한 선택의 폭이 넓었으면 좋겠다. ‘자연’보다 깊은 경전은 없다는 말이 있듯이 자연 속 삶의 깨달음과 영혼의 안식은 MZ세대에도, AI시대에도 엄연하다. 내 삶의 배경 하나, 낭만 하나가 사라져가는 아쉬움이다.
[허정진]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
저서 : [꿈틀, 삶이 지나간다]
[그 남편, 그 아내]
[시간 밖의 시간으로]
[삶, 그 의미 속으로]
천강문학상 수상
등대문학상 수상
흑구문학상 수상
선수필문학상 수상
원종린수필문학상 수상
이메일 :sukhur9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