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문이 꽃 천지를 담뿍 담아낸다. 굳이 멀리 나갈 필요가 없다. 내다보기만 하면 눈에 박히는 예쁜 꽃 대궐이다. 누가 더 예쁘나 서로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 겨우내 꽃을 피우기 위해 얼마나 애태웠을지 다 안다. 모두 다 사랑스럽다. 올 봄꽃은 새삼 기특하다. 이는 느닷없이 체포당한 2년여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리라.
인류의 기억에 남게 될 바이러스가 출현한 뒤를 이어 동생에게 암이란 불청객이 들이닥쳤다. 생각할 수조차 없는 어린애가 딸린 젊은 나이기에 의식이 마비되는 충격이었다. 불과 얼마 전 엄마가 독감 예방접종 후유증인 길랭바레 증후군으로 투병을 마쳤다. 겨우 허리 펴고 하늘을 쳐다보다 덜컥 사레가 들려 숨이 막혔다.
누구랄 것도 없이 우리만 알고 있기로 입을 모았다. 하늘이 주신 선물은 달라도 뭔가 달랐다.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 신이 모두를 살필 수 없어 엄마를 대신 보냈다고. 알리지 않아도 기민한 촉수와 오감으로 동생을 파고든 암 덩어리를 짚어내고야 만다. 성치 않은 몸에도 막내를 살리겠다는 투지는 엄마의 힘을 영혼까지 끌어모은다. 밤마다 끙끙 앓았을 것은 안 봐도 훤하다. 막내네 집에 매일 오셔서 집안의 잡다한 일을 자처한다. 한 마디로 ‘너는 오직 병 치료에만 전념해라, 집안일은 내가 하마’이다.
일흔여덟, 가만히 있어도 귀찮을 연세에 빨래하고, 요리하고, 집안 구석 곳곳을 정갈하게 만든다. 동생의 맘이 편치 않다. 잠시도 앉아있지 않은 엄마가 속상하다. 한 공간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참다못해 나에게 SOS를 친다. 노모보다는 그래도 젊은 언니가 편한 것이리라.
동생의 말벗을 자처하여 마음을 편안히 해 주고 점심을 챙겼다. 더불어 저녁거리를 해 놓고 귀가하는 일상을 보낸다. 내가 가는 날은 오시지 마시라고 당번을 정했다. 번번이 엄마가 약속을 깨뜨리신다. 동생 의사는 묻지 않은 채 몸에 좋다는 걸 연신 해서 나른다. 급기야 아픈 딸의 심기를 건드렸다. 더 이상 오시지 말라는 폭탄을 투하한다. 속상한 엄마가 눈물을 훔친다. 표리부동한 동생은 뒤란에서 몰래 꺼이꺼이 목 놓아 울었다.
그나마 남은 기력을 다 주고 정작 당신은 야위어간다. 그 덕에 일부만 절제한 동생은 가슴앓이한다. 서로를 너무 생각해서 오는 연민으로 인해 터질 게 터졌다. 부드럽게 이야기하면 그때뿐이다. 반복된 도돌이표에 강경한 최후 수단을 택한다. 눈에 보여야 안심되는 노모에게는 대못 박는 말이다. 감정 사슬을 지켜본 중간계의 내가 나섰다. 둘의 매듭을 풀어주고 정서 대변인으로 다리를 놓아주었다. 삭신이 부서져도 감수하는 모정은 타협으로 풀 수가 없는 난공불락일 때도 있다.
동생 소식을 알게 된 울산에 사는 사촌과 통화했다. 중년을 함께 바라보니 대화가 통한다. 이모와 냉전 상태라고 전한다. 뒷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샴쌍둥이처럼 닮았음을 깨달았다. 한쪽은 힘이 들까 깊숙이 개입하고도 더 못해서 안달이다. 받는 쪽은 그것이 못내 속상해서 거부하는 상태였다. 불편한 감정의 원인을 공유했다. 이번에는 이모랑 통화한다. 워킹맘으로 바쁜 1인 3역의 역할에 힘겨워 사랑을 주지 못했다고 한다. 딸에게 사랑 대신 감정 배출로 쏟았다. 늦게라도 주고 싶은 회한이다. 쌍방의 솔직한 자아는 적당한 틈만 주면 만사형통할 일이다. 흡사 코로나로 전 세계가 거리 두기를 했던 것과 일맥상통하리라.
문제가 있다. 주문대로 늘렸다 줄였다 고무줄처럼 재단할 수 있다면 그것을 과연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나치면 집착이고 부족하면 방임이 아닌가. 어떤 이는 방치와 무관심으로 비뚤어진다. 어떤 이는 지나친 사랑에 질려 도망가 버리고 싶다. 사랑은 참으로 어렵다. 생수처럼 목마를 때만 담아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중간하게 사랑이라고 선심 쓰듯 준대도 달갑지 않으니 사랑이란 해석하기 쉽지 않은 모스(morse) 부호만 같다.
원숭이를 대상으로 우유를 공급하는 실험이 있다. 플라스틱 방이 아닌 털이 있는 방에서 성장이 더 빨랐다는 결과이다. 사랑받는 욕구 충족이 몸피를 키운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오죽할까. 사람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었던 핵심은 잘한다는 주 양육자의 칭찬과 격려라고 한다.
깊숙이 스민 엄마의 강력한 사랑은 동생을 기어코 수렁 속에서 건져냈다. 요리엔 도무지 소질이 없는 언니의 음식은 오래가지 못했다. 입맛은 뼛속 깊이 탯줄인 모정을 원했다. 딸을 다시 온전히 만들겠다는 간절한 손끝으로 만든 음식은 암브로시아(ambrosia)이다. 탈모가 되고 밥알이 모래 같아도 엄마표는 씹히고 혈맥을 돌아 살이 되었다. 고비가 몇 번 있었지만, 무사히 험준한 항암 산을 완주했다. 모녀는 얼싸안고 등을 토닥이며 눈시울을 붉혔다.
추적 관찰 중인 요즘, 틈나는 대로 맛집을 순례한다. 물주는 연장자인 엄마이다. 엄마의 체크카드를 받은 동생이 본인의 카드로 결제한다. 잘 먹었다 다음엔 더 맛난 걸 사달라면서 엄마의 팔짱을 낀다. 엄마가 통장을 정리할 때까지는 완전한 속임수이다.
복직하며 일상으로 돌아온 동생은 안심이다. 취학한 딸아이를 엄마가 살뜰히 챙겨주시니 얼마나 감사한가.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진다. 과분한 사랑을 주는 엄마는 늘 자식에게는 죄인 아닌 죄인이다. 가슴 밑동의 사랑을 긁어 주어도 자식의 앙칼진 말 한마디에 생채기가 난다. 그런데도 자식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지난 31일 영국 《인디펜던트》지는 어미 범고래가 일주일째 죽은 새끼를 떠나보내지 못했다고 전한다. 물 위로 계속 띄우며 바다를 떠다닌단다. 왜 내리사랑인지 자식을 키워보니 알겠다. 생명보다 귀한 내 새끼 생사의 기로 앞에서 지나친 사랑을 자중하라 말할 수 있을까.
바라는 것은 하나 없으면서 턱없이 모자란 것이 아닌, 출렁거리는 사랑이 아가페 사랑이리라. 꽉 눌러 담은 엄마의 고봉 사랑을 먹는 우리는 갑부이다. 텅 빈 통장이 아닌 가슴을 꽉 채운 통장이 있다. 누군가는 부러워할 복에 겨워 투정 부릴 수 있는 엄마가 참 좋다.
살랑살랑 봄바람이 분다.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오늘이란 선물에 눈이 휜다. 이번 주말엔 어떤 맛집을 갈까.
[민은숙]
시인, 칼럼니스트
코스미안상 수상
중부광역신문신춘문예 당선
환경문학대상
직지 콘텐츠 수상 등
시산맥 웹진 운영위원
한국수필가협회원
예술창작지원금 수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