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나 늙어 간다.
흘러가는 세월을 누가 잡을 수 있을까?
어버이가 젊을 땐 자식을 위해 힘줄이 터지고, 뼈가 부서지도록 애쓰셨다. 농촌의 늙은 농부를 볼 때면 더 실감이 난다.
늙은 농부와 함께 세월을 보낸 호미를 볼 때면 영락없이 늙은 농부와 닮았다. 늙은 농부와 호미는 일심동체나 마찬가지이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늙어 간다.
한 번쯤 어버이와 호미를 겹쳐 보면 어떨까?
늙은 농부는 호미를 닮아 가는 삶을 산다.
낡은 호미는 늙은 농부를 닮아 간다. 그 호미는 낡은 것이 아니라 늙은 것이다. 늙은 호미!
시골엔 농사를 짓는 젊은이가 드물다. 늙은 농부만이 시골에 남아 농사를 짓는다. 호미질이 일상이다. 호미질이 버겁지만,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서인지 자연스럽게 보인다.
밭일하는 늙은 농부를 볼 때면, 거의 호미를 손에서 놓는 법이 없다. 호미와 한 몸이다. 너나 할 것 없이 호미를 들고 밭고랑과 밭이랑의 구석구석을 쪼아 댄다. 잠시 허리를 펴고 땀을 닦을 때도 좀처럼 호미를 손에서 내려놓지 않는다.
그들의 모습은 손에 쥔 호미와 영락없이 빼닮았다. 호미를 닮아 간다. 가늘게 휘어 굽은 슴베를 닮아 가고, 닳아 둥글어진 앞날을 닮아 간다. 손때 묻은 나무 자루를 닮아 간다. 호미를 닮아 가는 것은 자식 뒷바라지하며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다.
날이 둥글어진 늙은 호미, 그도 호미로 생명을 얻어 태어났을 땐 날카로웠다. 그 예리한 날로 땅을 파고, 풀뿌리를 난도질했다. 호미는 늙은 농부를 닮아 간다. 늙은 농부의 휘어 굽은 허리를 닮아 가고, 닳아빠진 앞니와 관절을 닮아 간다. 햇볕에 검게 글린 살갗을 닮아 간다. 늙은 호미가 늙은 농부를 닮아 가는 것은 호흡을 함께해 온 세월의 흔적이다.
늙은 농부가 세월의 흔적을 되돌릴 수 없듯 늙은 호미도 세월의 흔적을 되돌릴 수 없다. 호미는 처음의 날카로웠던 날이 닳아서 점점 둥글게 변해 간다. 밭일의 고된 세월을 몸으로 말하는 듯하다.
대부분의 늙은 농부는 웬만해서는 새 호미를 사지 않는다. 새 호미보다 함께 늙어 버린 호미에 더 애착이 가나 보다. 밭에서 함께 호흡했던 고된 세월을 몸과 마음으로 말하는 듯하다.
많은 사람이 늙은 농부와 호미를 통해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날카로움과 무딤을 음미해 볼 수 있다면 더 좋겠다. 매일매일 깨달음을 하나 얻을 수 있다면, 늙어 가는 것도 나쁜 일이 아닌 듯하다.
늙은 농부가 호미를 닮아 가듯 늙은이는 날카로운 삶보다 무딘 삶이 더 어울린다. 날카로움과 무딤의 대립이 나이와 무슨 상관이 있겠냐마는 결부해 보면 볼수록 이치에 맞는 듯하다.
젊을 땐 날카로움이 더 빛나지만, 늙으면 무딤이 더 빛나는 법이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대구과학대학교 겸임조교수, 가야대학교 강사.
저서 : 평론집 7권, 이론서 2권, 연구서 2권, 시집 5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