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식 칼럼] 부산도시철도 3호선 막차

김태식

귀뚜라미가 울지 않는 도시철도역이라 할지라도 이곳에는 이미 가을이 영글어 있다.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벽면에 걸어둔 가을에 관한 시는 가을의 소리를 귓전에 울리게 한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메말라가는 정서를 순화시켜 주기 위해 마련해 놓은 마음의 양식들이 눈에 들어온다.

 

도서관이 아니라도 좋은 책의 구절이 눈에 들어오기 알맞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가 하면 책을 무료로 빌려준다는 책꽂이도 있으니 참으로 좋은 서재가 되고 있다. 미술관은 아니지만 명화가 걸린 벽면을 보면 그림에 관해 문외한일지라도 눈이 즐거워진다. 불교에서 말하는 좋은 법문이 있는가 하면, 기독교의 좋은 성경 구절도 빼놓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지하역 구내에서는 기분 좋지 않은 냄새가 거의 사라졌다. 서민들의 건강을 챙겨주는 덕분인지 깨끗함은 물론이고 호흡에도 전혀 문제가 없다.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고 환경미화원의 부지런함이 있어 그러한지 깨끗한 거리를 보는 것처럼 기분이 상쾌하다.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막차가 도착한다는 방송에 묻힐지라도 빼놓을 수 없는 풍요로움이다. 막차가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역 구내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하지만 환승을 위해 달리는 사람들은 모두 단거리 선수들이다. 연세가 지긋하신 분, 하이힐을 신어 빠른 걸음으로 가기에 불편한 여성들과 아이를 안은 아기엄마도 뛴다. 집으로 가는 막차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인지라 서두른다. 

 

열차가 도착하여 문이 열리기 무섭게 올라타지만, 막차는 평소보다 조금 길게 정차해서 바쁘게 달려오는 손님들을 배려해 준다. 승객들을 내버려 두고 야속하게 떠나버리는 매몰찬 쇠붙이는 아니다. 앉을 자리가 충분하고 군데군데 빈자리가 있는 차 안에는 하루의 사연들을 정리한 사람들이 지친 몸을 이끌고 차창에 머리를 기댄 채 목적지가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몇 잔의 소주를 마신 듯한 취기 어린 얼굴도 눈에 띈다. 술에 취한 아저씨는 머리를 앞뒤로 흔들며 졸고 생업을 마친 아주머니는 좌우로 머리가 왔다 갔다 한다. 

 

듣고 싶지 않은 남의 휴대전화 통화 내용은 조금 전 친구와 헤어진 것 같은데도 할 말이 더 남았는지 연신 얘기를 한다. 휴대전화의 사용 예절 지키기가 아쉽다. 옆에 앉은 젊은 남녀의 다정해 보이고 풋풋한 지하철 데이트는 옛날 시절을 회상케 해주어 즐겁다. 건너편 자리에서는 중년 부부가 서로의 손을 지긋이 잡고 있다. 막차가 달리고 있듯이 일생을 함께 가야 할 동반자는 무언의 약속으로 손을 더욱 굳게 잡은 것처럼 보인다.  

 

보충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고3 학생은 그래도 공부가 부족한지 열차 안에서도 책을 펴든다. 하지만 너무 피곤한 탓인지 책을 잡은 채로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 열차가 정차할 때 안내방송 소리에 잠이 깬 학생은 어느 역인지 확인을 하느라 바쁘다. 자신의 목적지는 아직 남았다는 표정이다. 고3의 애처로움도 지하철 막차를 함께 타고 달려간다. 

 

식당 일을 마친 아주머니는 가게에서 조금 일찍 나오느라 수도꼭지를 열어 놓았다고 동료 직원에게 전화를 한다. 요즈음에는 정신이 깜빡한다면서 미안함을 표하는 아주머니의 손은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서민들의 표상으로 보인다. 전화를 끊자마자 보충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학생을 안쓰럽게 보다가 집으로 다시 전화를 한다. 

 

“니! 지금 오데고? 보충수업 마치고 집에 왔나?” 

 

그분의 딸도 고3이란다. 귀가 시간이 늦은 숙녀 3명은 부모님의 꾸지람을 걱정한다. 하지만 2시간 정도 늦어진 시간만큼이나 그녀들은 즐거웠을 터이니 더 이상 걱정하지 않는 듯하다. 딸과 부모와의 용서가 눈에 선하다. 걱정이 잠시 지나고 입을 막고 연신 하품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애처로운 얼굴, 보기 좋게 웃는 모습, 때로는 볼썽사나운 일들도 도시철도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광경들이다. 서민들의 발이 되고 있는 도시철도의 하루는 이렇게 모든 것을 품은 채로 또박또박 정리를 하고 있다. 얼기설기 사연들을 가슴에 품은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들이 하나둘 겹쳐진다. 늦은 시간의 막차는 하루의 사연들을 열차의 객실에 담아 자신의 보금자리로 향한다. 하지만 이것은 끝이 아니라 이른 새벽에 시작을 알리며 다시 달리는 첫차가 될 것이다. 이토록 막차와 첫차를 반복하며 여러 가지 할 일을 가진 사람들을 목적지에 옮겨 놓기 위해 우리네 삶을 쉼 없이 실어 나르고 있다. 

 

오늘의 마지막 열차는 정해진 시간에 오지 않는 실수를 범하지 않으며, 시간을 앞당겨 가 버리는 거만스러움도 없다. 그래서 막차는 더욱더 기다려지는 다음 날의 희망이다.

 

 

[김태식]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온마음재가센터 사회복지사(현)

울산신문 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해양문학상 논픽션 소설 당선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 wavekts@hanmail.net

 

작성 2024.10.15 10:45 수정 2024.10.15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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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