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기자는 술을 마시고 사람을 만나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혼술'을 집에서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다음날 출근의 부담이 없는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별다른 저녁약속이 없을 때면 아내와 아이가 잠든 조용하고 어두운 집 거실 TV 앞에 앉아 행여 식구들이 깰까봐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TV 음량을 설정하고 소주나 막걸리를 마시는데, 그러다 보면 몇시간 지나지 않아 얼굴이 벌개진다. 취객이 되지만 취기를 부릴만한 상대가 없어 기분이 좋은 채로 잠이 든다.
어느덧 혼술이 한주의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그 시간 만큼은 모든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것 같다, 그 시간 만큼은 앞으로 뭐든 할수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TV속 슬픔이나 기쁨이 두세배로 느껴지면서 굉장히 감성적이 된다.
2년 전 즈음 혼술을 하면서 한 케이블 TV 채널에서 드라마 '전원일기'를 보게 되었는데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다. 그 뒤로 혼술을 할때면 '전원일기'가 방영하는 시간을 예약해 놓고 술잔을 들이킨다. 얼마전에는 '전원일기'를 보면서 혼술을 하는 취미가 아내에 의해 폭로(?) 되면서 부부동반 친구들 모임에서 놀림감이 된 기억이 있다.
'전원일기'는 1980년 ~ 2002년까지 MBC에서 일요일 아침에 방영했던 농촌 배경의 가족드라마이다. 4대가 한집에 사는, 마을의 정신적 지주인 '김회장'(최불암) 가족을 중심으로 마을의 노인, 장년, 청년들의 소소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었다.
기자는 초·중학교 시절 마치 의무처럼 일요일 아침 늦잠을 자고 일어나 가족들과 '전원일기'를 시청했던 기억이 있다. 그 시절의 향수 때문인지 감성을 한껏 끌어올린 주말 저녁의 취기 때문인지 전원일기를 볼때면 추억의 어린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든다.
극중에서는 당시 시대상황을 반영한 시사적인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였는데, 지방에서 도시로의 대거 인구이동에 따른 농촌 공동화를 비판하기도 하고, '孝'와 '가부장적 권위'를 배격하는 당시 젊은 세대들의 세태를 비판하기도 하였다. 그런 변화된 시대상을 체험하는 것도 또다른 큰 재미로 다가온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금요일 오후, 기자는 오늘 밤 '전원일기'와 함께하는 '혼술'을 기대하고 있다.
이선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