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차영의 아랑가] 장녹수

​박성훈 작사 임택수 작곡 전미경 아랑가

마른 잎 한두 장이 오솔길에 자랑거린다. 깊어가는 가을 절기의 징표다. 습기 두툼하던 청바람이 콧날 시큰한 갈바람으로 변하여 스산하다. 그 바람결이 산자락의 원로 같은, 장엄한 솔가지에 걸린 솔잎 사이를 스쳐가는 소리가 들린다. 쉬이잉~.

 

코스미안사상을 사유(思惟)하기 좋은 날이다. 며칠 뒤면, 코스미안 상(償)을 시상한다. 자연과 인문의 융복합 한 마당, 문학과 사유와 철학과 삶의 이상과 실제를 아우르는, 글자와 단어와 어휘로 코스미안사상을 얽은, 큰 울림을 공감 공명하는 장이, 세종문화회관에서 펼쳐진다.

 

코스미안사상은, ‘나의 뇌리가 지향하는 방향, 그 지향을 향하여 뛰는 나의 가슴, 다가올 훗날이거나, 오래 전 추억과 기억에 가물거리면서 지워지지 않는 지난날의 질곡 속 실루엣, 그래서 다시 가슴으로 만지작거리면서, 재생하고 싶은 오래된 음반 속의 음률 같은 아련한 첫사랑~’그 생각의 응결체를 현실로 이행하는 것이다.

 

코스미안사상의 핵(核)은, ‘저마다가 주인공이고, 어울려 하나의 우주가 되는 철학’이다. 이 철학이 행위로 표출되어, 세상이 변화될 때, 가치(價値)로 승화된다.

 

그래서 세월은 흘러가도 청춘은 흘러가지 않는 것이다. 세월이라는 단어 속에는, 시간과 사람이 응결되어 있다. 그 속에서 사람과 사람은, 관계라는 메카니즘으로 저마다의 씨줄 날줄이 되어, 세상이라는 원단(原緞)의 주체로 짜인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은, 역사 속에서 사람들의 삶을 혼융한 유행가 아랑가, 전미경의 <장녹수> 사연을 펼친다.

 

노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충돌과 마찰을 화해하고 응결하는 마력(魔力)이 있다. 그래서 노래, 유행가 아랑가는 삶의 선택과 관계 속에서 영감(靈感)과 지침(指針)을 가름하는 뇌(腦)의 저울이 되기도 한다.

 

이 감성 저울의 추가 가리키는 것, 가슴의 울렁거림이 입으로 나오기 전에 머리를 한 바퀴 도는데, 이 순간 횡적인 공유문화의 감흥이 일어나고, 그 공유된 순간들이 표출되어 횡적으로 누적되어 감흥의 역사가 된다. 이것이 바로 시대 이념과 민중의 감성을 담는 역사 그릇이 되는 것이다. 바로 유행가, 아랑가이다.

 

가는 세월 바람 타고 흘러가는 저 구름아 / 수많은 사연 담아 가는 곳이 어드메냐 / 구중 궁월 처마 끝에 한 맺힌 매듭 엮어 / 눈물 강 건너서 높은 뜻 걸었더니 / 부귀도 영화도 구름 인양 간곳없고 / 어이타 녹수는 청산에 홀로 우는가

 

​한 조각 구름 따라 떠도는 저 달님아 / 한 많은 사연 담아 네 숨은 곳 어드메냐 / 곤룡포 한 자락에 구곡간장 애태우며 / 안개 강 건너서 높은 뜻 키웠더니 / 부귀도 영화도 꿈인 양 간 곳 없고 / 어이타 녹수는 청산에 홀로 우는가. 

 

중국의 경전 중 첫째는 늘 시경(詩經)을 꼽는데, 이는 춘추전국시대 방방곡곡(坊坊曲曲)에서 부르던 노래를 모은 것이다. 행인(行人)들이 탁발하듯 모아 온 것이 3천 여수였는데, 이 중에서 공자가 모아서 편집한 311편이었고, 오늘 날 전하는 305편이 바로 시경이다.  서경이 3천여 편 중 58편, 초사가 93편(굴원 25, 송옥 16, 여대림 52 등)인 것도 이와 유사하다.

 

조선 시대 3대 섹스 스캔들 주인공은 연산군의 장녹수, 세종의 유감동, 성종의 어얼우동(어우동)이다. 이처럼 여인으로 인하여 조정의 종사를 그르치거나 역사의 물꼬를 돌려놓은 사례들이 많다.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 이 노래 <장녹수>의 주인공 연산군의 애첩 장녹수, 중종의 제2계비 문정왕후, 숙종 폐비 장희빈, 영조 계비 정순왕후, 순조비 순원왕후, 고종 후비 명성황후 등이 그 대표적이다. ​이들이 권력의 전면에 등장했을 때마다, 내명부(內命婦, 조선시대 궁중에서 봉직하던 빈·귀인·소의·숙의 등 여관(女官)의 총칭)에는 피바람이 불고, 조정은 파탄이 나고 민생은 도탄에 빠졌었다. <장녹수> 노래가 바로 이런 파탄을 역사 속에서 반추한 노래다.

 

당시 29세 전미경은 1966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경복여상고·서울예술대를 졸업하였으며, 어머니 영화배우 윤정란의 막내다. 1982년 <들국화>로 데뷔하였고, 대표곡은 <장녹수>, <해바라기 꽃>, <추억의 남자> 등이 있다. 전미경의 데뷔곡 <들국화>는 원로가수 황금심의 일대기를 그린 노래로서, 서울예대를 다니면서 불렀고, 이어서 1991년 <추억의 남자>를 내고 본격적으로 트로트를 부르기 시작했다.

 

장녹수는 조선 10대 왕 연산군(1495~1506)의 후궁이었다. 그녀의 아버지 장한필은 문과급제 후 충청도 청원군 문의현령을 지냈고, 어머니는 천인이었다. 당시 모계첩실(母系妾室)은 천민이 되는 관례에 따라, 녹수는 성종의 종제 제안대군의 노비로 살면서 제안대군의 가노와 혼인하여, 아들을 하나 낳았고, 생활고로 몸을 파는 일도 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천부적인 요부(妖婦)였으며, 이 사실을 안 연산군이 입궐시켜 숙원(淑媛, 종4품)에 봉하고, 1503년에 숙용(淑容, 종3품)으로 승진시킨다. 장녹수는 연산군보다 10살 위였으나 30세에도 16세처럼 아름다웠단다.

 

연산군 어릴 적 아명(兒名)이 백돌이었는데, 장녹수는 연산군을 전하(殿下)라고 부르지 않고 백돌아~라고 부르며, 치마폭에 싸고 놀았다. 이 같은 총애를 통하여 그녀의 오빠 장복수와 그의 아들을 양반 신분으로 올리지만, 권력을 함부로 휘둘러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1506년 9월 2일 중종반정 때 그녀는 완전히 무너진다. 

 

​중종반정(中宗反正)은 1506년 9월 18일 조선 10대 임금 연산군이 폐위되고, 진성대군 이역(李懌)이 11대 임금 중종으로 옹립된 사건이다. 이유는 연산군은 무오·갑자사화를 통한 정치보복. 경연 폐지, 신언패 실시, 성균관 연락(宴樂)장소, 도성 30리 내 민가 철거, 언문도서 폐기 등 폭정. 원각사를 폐하여 연방원으로 고치고, 흥청(興淸)들과 기거를 함께하며, 채청사(採靑使)로 지방 파견, 이 같은 연산군의 국정 도외시에 반발하여, 훈구세력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왕위를 바꾼 정변이다.

 

이 반정이 성공하고 연산군이 폐위된 뒤, 그녀(장녹수)는 반정군들에게 잡혀가서 군기시 앞에서 참형되고, 수많은 백성들이 그녀의 시신에 돌을 던지며 욕설을 퍼부어 시신은 돌무덤이 되었다.

 

​군기시(軍器寺)는 고려, 조선 시대에 병기·기치·융장·집물 따위의 제조를 맡아보던 관아로, 방위사업청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오늘의 서울시청 자리에 있었다. 이는 1466년(세조12)에 군기감을 고친 이름이다. 이후 1884년(고종21)에 폐지하고, 그 일은 기기국으로 옮겼다. 관원은 병조판서나 병조참판 중에서, 도제조와 무장(武將) 중에서 제조를 두어 감독하게 하였다.

 

​중종반정, 연산군 폐위, 장녹수의 돌무덤~ 모든 것이, 부귀도 영화도 구름인 양 간 곳 없는 종말이었다. 이 종말을 그녀가 죽은 지 489년이 지난 1995년 박성훈 작사 임택수 작곡으로 대중가요로 탄생했다.

 

연산군은 폭정의 대명사로 오명이 붙여졌으며, 성종의 적장자로 7세에 세자로 책봉되었고, 19세에 왕위에 올랐었다. 하지만 즉위 후 무오사화(士禍)(1498)와, 갑자사화(1504)를 일으키고, 중종반정(1506)으로 폐위된다. 왕으로 12년을 제위 하였으나, 왕의 존칭인 종(宗)이나 조(祖)를 붙이지 않고 왕자 칭호 군(君)으로 기록되었으며, 재위기록은 실록이라 하지 않고 일기라고 한다. 연산군일기.

 

1502년 11월 25일 연산군일기에, 이런 절구가 있다.

 

​‘장녹수는 영리하여 사람의 뜻을 잘 맞추고, 아들을 하나 낳은 뒤에, 노래와 춤을 배워서 창기(倡妓)가 되었다. 또한 30세 나이에 16세처럼 보였고, 왕(연산군)이 궁중으로 맞아들여 숙원(淑媛)으로 봉했다. 그녀는 남모르는 교사(巧詐)와 요사스러운 아양을 떨었고, 왕이 혹(惑)하여, 금은보화를 다 그 집으로 보냈다. 그녀는 왕을 조롱하기를 마치 어린아이같이 하였고, 왕에게 욕하기를 마치 노예처럼 하였다.’

 

​대중가요 유행가 아랑가는 역사의 보물이다. 이러한 정과 한과 사연과 민족적인 DNA를 얽은 노래를  '트로트'라는 말로 통용하는 것은, 5천년 민족 역사 앞에 무엄을 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랑가'라는 단어, 용어, 장르명칭을 주창하는 것이다. ​'아랑가'는 '아리랑에서 아랑을, 가요에서 가를 차운하여 합친 단어'이다. 이는, 특허청에 상표등록을 출원하여, 심의 진행 중인 단어이다.

 

한 사람의 열정은, 다른 사람의 공감을 바탕으로 한 동행으로 이어진다. 그 동행이 확산되면서 유행이 되고, 유행은 문화로, 문화는 역사의 마디가 된다. 이 깃발이 코스미안사상이다.

 

 

[유차영]

한국아랑가연구원장

유행가스토리텔러 

글로벌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경기대학교 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교수

이메일 : 519444@hanmail.net

 

작성 2024.10.22 09:37 수정 2024.10.2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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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