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이란 녹록하지 않다.
세상천지에 내 뜻대로 이루어지는 일은 하나도 없다. 세상사 내 뜻대로 이룰 수 있다면 곧 내가 신(神)이다. 젊을 땐 세상만사가 모두 내 뜻대로 이룰 것 같다. 삶이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재빨리 깨닫지 못하면 큰코다친다.
젊을 땐 잠시 좌절하더라도 빨리 정신 차려 새로운 길을 걸어가야 한다. 우물쭈물하다 보면 의도하지 않은 길로 빠진다. 행복은 늘 가까이에 있다. 내 마음속에 잠자고 있다. 이를 빨리 깨달아야 한다. 몸과 마음이 힘에 부치더라도 마음의 평안을 찾는 노력을 부단히 해야 행복을 깨울 수 있다. 마음속 행복을 깨우자!
나는 늘 웃음 더불어 가렵다. 삶이란 알콩달콩 가려운 것!
내 얼굴도 몸도 웃음꽃 피듯 가렵다. 봄이 올 때면 노루귀가 쫑긋쫑긋 조그마한 꽃으로 세상을 엿보고 엿듣듯 내 귀도 쫑긋댄다.
출근길은 걸어서 오십 분 거리다. 자주 걷는다. 걸음걸이가 솜털처럼 가볍다. 솜털이 얼굴에서 웃음과 함께 흩날린다. 불그레한 볼에서 행복의 열기가 넘실댄다. 내 기분은 새털구름이다. 산뜻하다. 그 모든 것을 발걸음에 얹고, 횡단보도를 당당히 건너기도 하고, 골목길을 사뿐히 빠져나가기도 한다.
사무실 문을 열 때 생긋 미소도 지어 본다. 책상 위에 비춰 드는 햇살이 출근을 축하라도 하듯 포근한 미소를 짓는 것처럼 눈에 밟혀 온다. 그 한줄기의 햇살이 장미꽃보다 더 향긋한 자연의 향기를 풍기기도 한다. 햇살과 마음의 손짓을 하며 교감도 한다. 그 순간 생기가 더 돋는다. 이런 느낌은 백수를 경험한 사람의 특권이기도 하다.
가끔 지금의 일을 때려치울까 하는 먹구름이 마음속 깊이 파고든다. 이런 마음을 억누를 때마다 행복감을 만끽한다.
오래전 잠시 경험한 백수 생활이 인생의 진정한 맛이었을까? 그 맛은 텁텁했다. 지금의 자리라도 붙어 있을 수 있는 것이 감사한 일이다. 자주 걸어서 퇴근길에 오른다. 운동 삼아 땀을 뽑아낸다. 도시 생활이 녹록하지 않아 걷기 운동이라도 해야만 한다.
집으로 걸어갈 때면, 고요에 젖어 들곤 한다. 아니 늘 고요에 젖은 중년 남자다. 지나는 동네마다 골목길이 고요하다. 고요가 어깨를 스치며 은하처럼 잔잔히 흐른다. 고요를 즐기며 걷는다. 때로는 중년의 무거운 어깨로 쓸쓸히 걷는다. 고요를 느낀다. 알록달록 얼룩진 일상을 되밟으며 삶의 미소를 느낀다. 행복이 깃든 고요에 젖은 중년의 남자.
집에 다가올 때면 이따금 옛 기억이 귓전에 맴돈다. 이미 내 품에서 떠나 버린 아이 둘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보금자리에서 들려오는 토끼 같은 아이들의 웃음소리! 환청과도 같은 소리와 함께 어깨를 활짝 펴고 옷을 가다듬는다. 웃음 머금고 문을 연다.
아내가 냇내를 풍기며 웃음 더불어 맞이한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대구과학대학교 겸임조교수, 가야대학교 강사.
저서 : 평론집 7권, 이론서 2권, 연구서 2권, 시집 5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