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근 칼럼] 베이비박스, 그 사랑과 유기 사이

박성근

제6회 코스미안상 은상 수상 [당선 소감] 

 

 

야만을 야성이라 우기는 시대, 지금 이 순간에도 영문을 모른 채 베이비박스에서 작은 쪽지를 배에 얹고 몸서리치게 울고 있는 아기들이 있습니다. 

 

 제 따뜻한 안방은 그 아기들의 바깥일 것입니다. 그나마 아기들이 후미진 익명의 장소에 버려지지 않고 그 직사각형의 방에 누웠기에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 그 아기들이 엄마로부터 베이비박스에 유기되었다고 써도 저는 마지막 남은 엄마의 사랑을 받은 아기로 읽고 싶습니다. 

 

 이 상을 2009년부터 베이비박스에 누웠던 수많은 아기들에게 바칩니다. 

 

 끝으로 함께 사는 지구공동체를 꿈꾸는 글로벌 신문 ‘코스미안 뉴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부족한 글을 올려주신 심사위원분들께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베이비박스, 그 사랑과 유기 사이

 

“너무나 죄송합니다. 가슴은 찢어지지만 열여덟의 저로서는 도저히 혼자 키울 자신이 없었습니다. 엄마로부터 이름도 얻지 못한 이 아기는 절대 저를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 아기를 잘 부탁드립니다. 훗날 제가 다시 찾아올 테니 절대 해외로 입양하지 마십시오. 아기가 태어난 시각은 202*년 *월 17일 오후 세 시입니다.” 

 

살을 에는 겨울, 서울의 어느 언덕배기에 설치된 베이비박스에 누운 한 아기의 배에 놓인 쪽지였다. 아기는 아직 탯줄을 그대로 달고 있었다. 그 짧은 쪽지는 훗날 그 엄마와 아기가 상봉할 수 있는 마지막 단서다. 베이비박스가 열리자 내부 직원들에게 벨이 울렸다. 베이비 박스 센터 직원들이 뛰어나갔지만 그 미혼모 엄마는 생각보다 빠르게 멀리 사라졌다. 

 

다만 엄마의 배신과 찢어질 듯 우는 아기의 비극적 겨루기만이 그 사각의 방에 덩그렇게 놓여 있었다. 그 센터는 2016년 5월 한국에서도 개봉된 미국의 영화감독 ‘브라이언 아이비’의 감동적인 다큐멘터리 영화 ‘The Drop Box’의 촬영 현장이기도 하다. 그곳을 찾아와서 아기들을 몰래 두고 가는 엄마들은 대부분 미혼모다. 그러나 다행히 그날의 그 엄마와는 달리 전체 엄마들의 센터 상담률은 96%로 대단히 높은 편이다. 

 

그 박스는 2009년 12월 처음 설치된 이래 그 지금까지도 안타까운 아기의 생명을 지켜주는 ‘사랑’이라는 큰 가치와 함께 반대로 『형법』 제272조에 의거 ‘불법 유기’라는 비난 사이에서 엉거주춤 누워 있다. 물론 2022년 ‘KBS2’에서 실시한 ‘굿모닝대한민국 국민배심원’ 찬반 판결에서는 배심원들의 84%가 베이비박스의 필요성에 손을 들어줬다. 그만큼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엄마들이 아기가 죽을 수밖에 없는 곳에 유기하는 대신 베이비박스를 선택한 것 자체가 그 아기를 지켜주고 싶은 사랑이 조금은 남아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 센터에서는 베이비박스에 아기가 들어오면 곧바로 관할 경찰서에 신고한다. 그리고 지자체에 인계된 아기는 병원 등에서 건강검진을 하고나서 다시 센터에서 잠시 임시보호를 한다. 그리고 얼마 후 정처 없이 여기저기 보육원(63%)이나 원 가정 복귀(24%)를 하고 나머지는 해외나 국내로 입양(13%)된다. 

 

베이비박스의 기원을 보면 1198년 이탈리아에서 교황 ‘인노첸시오 3세’에 의해 처음 고안되었다. 이어서 1600년대 프랑스를 거쳐 지금은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과 한국, 일본 등에서 베이비박스의 개념이 도입되었다. 우리나라의 베이비박스 실상은 ‘송강호’ 주연의 영화 ‘브로커’(2022년)와 중견 시인 ‘나호열’의 시집 『안녕, 베이비박스』(2019년)로도 소개된 바 있다. 

 

미혼모 등 위기의 엄마들이 베이비박스를 찾는 큰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만이 아니다. 비정상적인 임신을 한 자신들의 신분이 세상에 노출되는 것도 염려해서이다. 설상가상 2012년 실명으로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원천적으로 입양의 길을 막는 개정 『입양특례법』이 시행되자 베이비박스를 찾는 미혼모들의 발걸음이 부쩍 더 빈번해졌다.

  

지난해 6월에는 경기도 수원시에서 ‘냉장고 영아 유기 사건’이 발생하여 사회적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에 2023년 보건복지부에서는 2015년부터 2022년 사이에 태어난 후 아직 임시신생아번호로만 남아 있는 아동 2,123명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상당수인 601명이 베이비박스로 보내진 것이 확인됐다.

 

생명에 대한 경외와 인간 존중은 그 무엇보다 큰 가치이다. 사실 베이비박스가 아니었으면 더 많은 아기들이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상자가 차가운 세상에 버려진 아기들의 마지막 희망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내 처음 베이비박스를 설치한 종교인은 베이비박스는 끝내 소멸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베이비박스를 찾는 미혼모 등에 대한 현실적인 복지구조와 정책이 완비되면 눈물을 삼키며 베이비박스를 찾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여러 형태의 아동 유기 문제로 고심하던 정부는 마침내 금년 7월 19일부터 소위 쌍둥이 제도인 ‘출생통보제⦁보호출산제’를 동시에 시행했다. 즉 위기 임산부가 신원 노출 없이도 지정 의료기관에서 가명으로 출산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 후 아기는 ‘출생통보제’에 따라 지자체에 통보되고 즉시 주민등록번호를 대체할 13자리 ‘관리번호’를 부여 받는다. 물론 UN에서는 익명의 출산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고 권고한다. 

 

그리고 ‘보호출산제’를 통해 미혼모들이 익명으로 아기를 입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모든 정책에는 동전의 양면처럼 양과 음이 있다. 정부에서는 위기에 몰린 엄마들이 입양보다 원 가정에서 직접 양육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더구나 그 입양에 대한 우리나라의 운용 시스템도 지나치게 중앙정부에만 치우쳐 있다. 따라서 입양 수요자가 가장 가까이에서 보다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각 지방자치단체에 상당 부문 위양하는 것을 검토했으면 한다. 

 

베이비박스를 찾는 위기의 엄마들은 그 누구에게도 자신들의 비정상적인 출산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의 도덕적 해이만을 질타할 때가 아니다. 정부에서는 이러한 엄마들의 상처를 외면하지 말고 현행 모자가정 관련 지원보다 더 개인 정보가 보장되고 지속가능한 대책을 펼 때다. 공존의 세상에서 내 밥만이 밥은 아닐 것이다. 

 

미혼모 등의 맞춤형 복지를 원스톱으로 해결하기 위한 ‘미혼모자가족복지시설(가칭)’ 등을 설치하는 방안도 있다. 그 비틀거리는 엄마들과 아기들도 당연히 『헌법』 제10조가 보장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향유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정부에서는 베이비박스에서 처음 보육원으로 떠났던 아이들에 대한 사후관리도 지속적으로 강구해야 할 것이다. 제22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도 베이비박스 출신 청년들과 관련된 법을 정비함과 동시에 더욱 장기적인 치유의 법도 적극 제정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정부에서는 2021년 7월부터 보육원 보호기간을 기존 18세에서 본인이 희망할 경우 24세로 연장한 바 있다. 평생 베이비박스에서 발견됐다는 주홍글씨를 달고 상처 속에 살아갈 그 분들이 그 옛날 영문도 모른 채 처음 누웠던 그 베이비박스를 아름다운 요람으로 기억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자신을 홀로 두고 떠난 엄마였지만 고심 끝에 베이비박스를 선택한 한 톨 마지막 사랑만큼은 가슴에 쟁여두고 세상을 헤쳐나아가면 좋겠다.  

 

작성 2024.10.23 10:39 수정 2024.10.23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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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