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식 칼럼] 잊혀질 권리

김관식

몇 해 전의 일이다. 조지훈 시인의 작품을 연구하다가 인터넷에 낭송시로 여기저기 떠도는 조지훈의 「思慕」라는 시를 읽었다. 여러 번 읽어도 조지훈 시인의 시 경향과는 전혀 달랐다. 조지훈은 경북 영양의 명문가로 부친이 한의학자였다. 전통적인 유교와 불교 문화권에 어린 시절을 보냈던 분인데, 인터넷에 떠도는 「思慕」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은 “마지막 한 잔은 미리 알고 정하신 하나님을 위하여”였다. 

 

조지훈 전집과 그분에 관한 연구 서적들을 살펴보았는데, 「思慕」라는 제목의 시가 있었는데, 인터넷에 떠도는 시와는 내용이 달랐다. 의문이 풀리지 않아 영양군과 조지훈 문학관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지훈 시인을 존경하는 연구자인데, 인터넷에 떠도는 「思慕」가 조지훈 시인의 시집에 실려 있는 「思慕」와 전혀 다른데, 출처가 불분명한 「思慕」가 인터넷에 떠돌고 있으니 사실 여부를 알고 싶다,”

 

이렇게 용건을 말했더니 조지훈 문학관 관계자가 조지훈 시인이 재직했던 대학에 문의하여 그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며칠 후 답변이 왔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과 일치하게 출처가 없는 시이나 조지훈 선생의 명성에 위해가 되지 않으므로 그대로 인정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

 

그런데 문제는 출처가 불분명한 「思慕」라는 시가 낭송가들이 애송하는 시로 인터넷 여기저기에서 도배질이 되고 있었다. 조지훈 시인하면 박두진, 박목월 시인들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승무(僧舞)」, 「봉황수(鳳凰愁)」, 「고풍의상(古風衣裳)」 시가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고, '지조론'이라는 수필을 통해 정치인들의 지조 없음을 꾸짖은 전례가 있을 정도로 대쪽 같은 인물이었다.

 

조지훈 시인하면 유교와 불교 경향의 시들이 대부분인데, 난데없이 출처가 없는 「思慕」에서는 기독교 사상을 노래한 시다. 전혀 성격이 맞지 않은데도 출처가 없는 「思慕」가 인터넷에서 여기저기 도배질 해서 이제 위작인 「思慕」가 조지훈의 대표 시로 자리 잡아 버렸다. 일반 대중들이야 인터넷 정보에 의존하여 위작인 「思慕」가 지조론을 쓰신 조지훈 시로 알게 되었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출처가 없는 조지훈의 「思慕」가 동명이인의 시일 수도 있고,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조지훈의 이름을 빌려 어떤 의도에서 퍼뜨리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여전히 수수께끼일 뿐이다.

 

출처가 없는 위작인 「思慕」라는 시 한 편으로 조지훈 시인의 총체적인 정신세계가 왜곡되게 알려진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로 오늘날 빅토어 마이어 쇤베르거의 『잊혀질 권리』가 박탈되어 버린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인터넷 정보는 한번 유행하게 되면 그 사실 여부를 따지지 않고 널리 유포되어 조지훈 시인의 시가 아님에도 조지훈의 시가 되어버리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은 그것을 알 리가 없다,

 

이와 유사한 경험을 필자도 겪은 적이 있었다. 동명이인의 유명한 김관식 시인이 있어서 벌어진 일이다. 김관식(金冠植) 시인은 작고시인으로 논산 출신의 시인인데, 나와는 동명이어서 벌어진 해프닝이다. 분명히 한자 이름은 달라 구분이 된다. 논산의 김관식 시인의 ‘관(冠’자가 ‘갓관’자인데, 내 이름의 ‘관(寬)’자는 ‘너그러울 관’자로 한자로 표기했을 때는 다르지만, 한글과 발음으로는 동명이다. 그런데 내 시 한 편을 이름이 같은 이유로 도둑맞은 일이 있었다. 

 

작고하신 논산의 김관식 시인의 시로 내시를 잘못 소개한 책이 있었다. 저작권 위반 사실을 잘못 소개한 책의 편저자에게 항의했더니 정중히 잘못을 사과해서 그냥 넘어간 적이 있었다. 동명 때문에 빚어진 해프닝으로 편저자가 사실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인터넷 정보에 의존하였기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다. 그러나 한번 책으로 출판되었기 때문에 회수하지도 못하고 『잊혀질 권리』를 주장하지 못했었다.

 

이처럼 인터넷 정보는 오류가 많지만, 한번 잘못 전해지면, 그로 인해 피해를 본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빅토어 마이어 쇤베르거는 그의 저서 『잊혀질 권리』에서  “유사 이래로 인류에게는 망각이 일반적이었고, 기억하는 것이 예외였다. 그렇지만 디지털 기술과 전 지구적 네트워크 때문에 이 균형이 역전되었다. 오늘날 널리 확산된 기술의 도움으로 망각은 예외가 되어가고 있으며 기억이 일반적인 게 되어가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수 세기 동안 기억의 비용은 망각의 비용에 비해 언제나 비쌌으며 그 기술도 불완전해 망각이 기본이고 기억이 예외인 상황은 꾸준히 지속될 수 있었는데, 디지털 시대 상황이 역전이 되어버린 셈이다. 따라서 인터넷에 잘못된 정보가 잊혀 져야 함에도 지워지지 않아 문제가 되고 있다.

 

글을 쓰는 문인들은 자신이 쓴 글을 문집으로 엮을 때 신중해야 한다. 한번 책으로 출판된 책은 오류가 있으면 수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문인의 저서는 그 문인의 총체적인 정신세계와 문인으로서의 능력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낙인이다. 우리 문학인 중에서도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분이 한때 실수로 위정자를 찬양하는 글을 써서 그것이 낙인찍혀버리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가짜 문인들이 많이 생겨나고 이들은 자신의 수준 낮은 엉터리 작품에 대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문집으로 엮어 주위 사람들에게 배포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옛날보다 소득이 높아지고 책을 출판하여 자신이 문인임을 다른 사람에게 홍보하려는 명리적 욕망이 넘쳐나 자신이 쓴 글의 수준이 평생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낙인인 줄도 모르고 책으로 출판하고, 심지어는 시비를 세우고 있는 무모한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일반 대중들이야 작품의 질적 수준을 판가름하는 안목이 없으므로 속아 넘어갈 수는 있겠지만, 문학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문집을 통해 지은이의 총체적인 정신세계와 작품의 형편없는 수준을 알고는 측은해할 것이 뻔하다. 그런데도 이런 졸속한 작품집 발간을 서슴없이 벌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만약 나중에 자신이 성장하여 문학작품에 대한 안목이 생겨났을 때 얼굴이 부끄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자신의 명리적인 가치만을 우선하다가 평생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긴 불행한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불행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일이 아닐 수 없다. 생각 없이 내뱉은 말도 남에게 상처를 주는 법인데, 한번 문자로 활자화되어 문집으로 남게 된다면, 자신의 추악한 내면이 드러나는 낙인으로 사후에도 지워지지 않고 남게 된다고 생각해 보라. 그 얼마나 끔찍한 일이겠는가? 

 

자화자찬하는 오만한 에고이즘에서 함부로 문집을 발간하고, 문학비를 세우려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아야 『잊혀질 권리』에 대해 심려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한 번쯤 자신을 되돌아볼 때이다.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이메일 : ​kks41900@naver.com

 

작성 2024.11.11 09:45 수정 2024.11.11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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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