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필 칼럼] “골프공을 허공에 날리다”

김용필

노년이여, 꿈을 가져라. 걷는 것이 살아있는 것이다. 

무슨 생뚱맞은 말인가. 누워서 움직이지 못하고 늙음을 두려워하며 추억만 그리는 노인에겐 조롱과 조소 같지만 진정으로 노년에 필요한 것은 생동이다. 노력하고 꿈꾸는 자에게 미래가 있다. 하루를 살아도 천일 꿈을 꾸는 노인이 행복하다. 웃기는 소리 말아라, 미래가 안 보이는 데 무슨 꿈이며 희망인가, 용길 내서 좋은 친구, 좋은 취미, 좋은 생각으로 소일하면 하루가 즐겁고 현재가 행복하다. 그런 현재가 곧 미래다.

 

가을날 친구와 같이 골프를 친다. 

은퇴 후 무력한 소일을 방지하고 건강을 챙기는 운동으로 5명의 친구가 골프 동호 클럽을 만들었다. 전직 교수, 작가, CEO, 마도로스, 과수원 하던 농부였다. 그린필드를 걸으면서 골프를 치는 노인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허공에 공을 날리고 공을 따라 걷는 기분을 어디에다가 비길까. 혹자는 나이 70에 호사스러운 팔자라고 하겠지만 이처럼 노익장을 과시하며 필드를 활보하는 노인의 모습은 대견하고 아름답다. 보행은 건강을 유지하는 최상의 보약이다. 

 

오늘은 4명의 친구와 필드에 나갔다. 언제나 푸른 골프장은 바라보기만 하여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이다. 넓은 초원의 구장에서 시니어 스타트 매트에서 핀을 꼽고 드라이버를 몇 번 휘둘러 워밍업 한 후 꼿꼿하게 중추를 바로 세워 정립한 어드레스로 시선을 공에 주시하고 몸통으로 큰 환의 스윙하여 정점에서 잠시 멈추었다가 힘차게 내리꽂아 임팩트하여 던지듯 공을 치고 팔로우 스윙을 마치면 골프공은 16도 각으로 38속 스피드로 날아올라 허공을 가르고 45도 점에서 떨어지면 완벽한 비거리 타를 얻게 된다. 

 

비거리 180야드이면 노인으로선 장타다. 그런데 점점 비거리가 줄어들어 150야드도 힘들다. 골퍼에게 홀인원은 평생 재수가 좋다.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이다. 파3, 130야드 필드에서 친구 A가 홀인원을 하였다. 평생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행운이었다. 홀인원 하면 3년 동안 호재를 맞고 옆에서 본 사람도 1년은 재수가 좋단다. 골프장에 홀인원 기념식수를 하고 친구가 사는 술을 실컷 얻어 마시고 귀가했다. 정말 기분이 좋았다. 움직이는 환희였다.

 

그런데 즐거운 모임에 위기가 왔다. 마도로스였던 B가 71 나이에 갑자기 치매에 걸려 요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가 빠지면서 자유로운 팀 구성이 어렵게 되었다. 골프는 보통 4명이 한 팀이 되어 움직인다. 그래서 인원 구성은 골프 매너 중 한 가지다. 골프는 4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팀웍이 잘 이루어진다. 첫째, 건강한 몸과 둘째, 자유로운 시간과 셋째, 여유로운 자금 넷째, 인간다운 매너가 필요하다. 이 중의 하나라도 결손이 생기며 팀웍에서 아웃 된다. 그리고 골프 치는 비용은 그날 경비를 합산하여 네 사람이 1/N로 분담 지불하는 것이 상례다. 그래야만 저비용으로 운동을 즐길 수 있다.

 

그런데 또 즐겁던 골프 동호회에 위기가 닥쳤다. 어느 날 필드에 나가 공을 치는데 친구 B가 엉뚱한 짓을 하였다. 자기가 친 공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고 헤매다가 낙하지점 50m 앞으로 가서 주머니에서 새 공을 꺼내 치는 것이었다. 내가 지적했다.

 

“너, 매너가 왜 그래, 드라이브 공이 떨어진 곳에서 치지 않고 왜 앞으로 나가서 치는 거야.” 

“내 공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어.”

“그럼 페날티 에어리에서 쳐야지.” 

“알겠어.” 

 

그런데 페날티 에어리에서도 공을 쳤는데 허공으로 날아간 공의 행방을 모르고 서성였다. 갑자기 돌변하는 행동이었다. 평소에 그런 일이 없어서 좀 이상하긴 하였다. 골프가 끝나고 점심을 먹고 게임을 평가하는 대화 중에 그는 화제 밖의 엉뚱한 소릴 하면서 자꾸 옛날 이야길 하는 등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소통이 끊어져서 불편했다. 아무튼, 그에겐 치명적인 날이었다. 

 

다음 골프회에 B는 나오지 않았다. 다다음 3번째도 나오지 않았다. 처에게 전화하였더니 청천벽력같은 소릴 했다. 남편이 뇌신경 이상을 보여 치매 병원에 입원을 시켰다는 것이다. 건강한 친구가 사라지는 것에 모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팀 구성이 안 되어 필드경기는 접고 스크린으로 취미를 돌렸다. 스크린 골프도 필드만큼 재미가 있어서 노인들이 하기 좋은 운동이었다. 그런대로 3명이 일주일에 한 번씩 재미있게 스크린을 계속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대학교수인 친구 A가 또 이상한 행동을 하였다. 거리에 맞지 않게 골프채를 아무거나 잡고 치는 것이었다. 

 

“너, B처럼 치매 걸렸니? 골프채를 거리에 맞게 선택하여 치란 말이야. 80m 남았으니 P로 쳐라.” 

 

그런데 3번 우드로 치는 것이었다. 공이 산 너머 날아가 버렸다.

 

“너 미쳤니. 왜 P로 칠 거릴 우드로 치는 거야. 그것도 장타 우드로 말야.” 

 

내가 피 잔을 줘도 친구는 아무 말 안 했다. 그리고 다음번에 또 골프채를 고르지 못했다. 치매병원에 입원한 친구 B와 같은 행동을 하였다. 그런데 난감한 것은 지적한다고 화를 내는 것이었다.

 

“글쎄. 나도 모르겠어.”

“너, 홀인원 하던 놈이야. 정신이 이상해졌어, 병원에 한번 가봐라.” 

 

그런데 다음 회에 그는 나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나 겁이 나서 그의 처에게 전화를 했더니 이게 또 무슨 소린가. 병원에서 치매 초기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두 명의 친구가 치매로 무너졌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단 말인가, 노년에 이른 상실감이었다. 모두 젊을 때 운동을 안 하고 일을 많이 해서 얻은 병 같았다. 

 

그러나 그를 그대로 둘 수가 없어서 A를 골프장으로 불러냈다. 운동으로 인지 능력을 회복시키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완전 무스탕이었다. 제멋대로 공을 날렸다. 할수 없어서 칠 때마다 거리에 맞는 골프채를 골라주면 잘 치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을 의식하고 건강을 위해서 스크린 치는 날 합세하였다. 점점 사태는 심각해져서 같이 놀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더니 그 역시 나오지 않았다. 

 

영원할 줄 알았던 다섯 사람 친구 중에 두 사람이 치매로 사회 활동이 중단되고 의식과 동작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남은 세 사람이 긴장하기 시작하였다. 인생은 인위적으로 할 수 없는 것이 세월의 환이다. 이는 필연적인 노년의 슬픔이었다. 남아 있는 세 사람, 농부 출신 E와 작가인 나, CEO 출신 D가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E가 우울한 질문을 하였다.

 

“김 작가, 이젠 누가 먼저 가지?” 

“가긴 누가 가. 2녀석이 병원에 있을 뿐이야. 죽지 않았어.”

“병원, 살아있으면 뭘 하니, 움직이지 못하면 죽은 거나 다름없는데....” 

 

E가 울먹이며 말했다. 

 

“그래서 우린 병원에 간 놈들 몫 이상으로 건강해야 해.”

“그야 물론이지.” 

 

D가 잔을 비우고 흐느꼈다. 

 

“김 작가, 우린 끝까지 골프를 치는 거야.”

 

노인에게 내일이 없는 걸까. 나이가 들수록 주변이 허전해지는 것은 사라지는 것 때문이다. 사람이 사라진 빈자리가 너무나 허전하다. 아무리 추억으로 되살리려고 하지만 뜬구름 잡는 격이다. 누구 하나 불러주지 않아서 대화할 친구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가, 행동이 제한되고 말수가 줄면 혼자라는 늙음을 자조하며 존재가 두려워진다. 그래서 노년엔 새로운 도전의 율동이 필요하다. 돈의 집착에서 벗어나라, 탐욕은 죽음으로 가는 사자이며 수명을 단축한다. 모든 것을 비우고 걸어라. 그것이 건강하게 잘 사는 법이다.

 

나는 젊은 작가들하고 많은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대화와 작품을 읽고 젊은 나를 재생하려고 노력한다. 노인들이여, 나이를 탓하지 말고 새롭게 도전하라. 자연 속을 걸어라. 움직이면 살아있는 리듬의 세상을 보인다. 걷노라면 초월하여 새로운 세상의 변화를 보고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생기를 얻는다. 움직이고 걸으면 새로운 꿈이 생기고 희망이 생길 것이다. 

 

사실 이렇게 말하면 늙어서 병석에 누워 움직이지 못하는 분들에겐 미안하다. 쾌유를 빈다. 노년엔 돈도 명예도 잘난 과거도 심지어는 가족까지 부질없다. 현재가 재산이고 꿈이며 행복이다. 허공에 공을 날리고 떨어지는 곳을 찾아가면 행복이 있다.  

 

 

[김용필]

KBS 교육방송극작가

한국소설가협회 감사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마포지부 회장

문공부 우수도서선정(화엄경)

한국소설작가상(대하소설-연해주 전5권)

이메일 :danmoon@hanmail.net

 

작성 2024.11.12 10:44 수정 2024.11.1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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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