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은 나뭇가지를 거쳐서 온다.
소슬바람이 잎을 떨어뜨리고 외롭게 남은 가지를 건너서 너울너울 넘어온다. 귓가에 낙엽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듯 말 듯 할 즈음에 겨울은 이미 사람들의 마음의 입구에 와 있다.
자신의 옷을 훌훌 벗어 던져 버린 나뭇가지는 모든 영양분을 떨쳐 내고 난 뒤의 싸늘한 모습이다. 겨울은 모든 나뭇가지를 앙상하게 만들어 놓는다. 화려했던 날들의 푸른 잎들을 뒤로 한 채 힘없는 매달림으로 겨우 붙어있는 나뭇가지가 오늘따라 유난히 힘들어 보인다. 나뭇가지에 겨울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겨울은 산을 멀리 보이게 한다.
가을의 산이 가까이에 있다가 낙엽이 지면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목裸木이 된 나무들이 틈새를 많이 벌리기 때문이다. 나무 사이의 간격이 멀어지고 눈이라도 내려 나뭇가지에 걸리면 산은 더욱 멀어져 보인다. 먼 산에 보이는 나무들도 모두 옷을 벗었다. 겨우 입고 있던 갈색 옷마저도 서서히 벗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그 산이 멀리 떠나가는 것이 아니라 새순이 돋아나는 봄이면 다시 우리 곁으로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산은 언제나 푸른 잎을 띠고 있는 소나무는 변함없이 안고 있다.
겨울은 바람을 몰고 온다.
볼 끝을 스쳐 지나가는 알싸함이 겨울을 알려 온다. 콧잔등에 시린 바람을 잠시 뿌리고 가벼운 감기 기운이 감돌게 하는 바람이 겨울의 시작임을 알려 주기도 한다. 수북이 쌓인 활엽수 낙엽이 바람에 날려 이리저리 뒹굴다가 살얼음 얼려진 시골의 웅덩이에 둥지를 틀게 만든다.
겨울바람은 농촌을 잠시 정적의 시간에서 머물게 한다.
겨울바람은 논두렁을 태우던 불씨도 꺼지게 했는가 하면 김장배추를 꽁꽁 묶이게 한다. 농촌의 차가운 바람은 농부의 옷매무새를 단단하게 한다.
겨울은 어릴 적 팽이 돌리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잎이 모두 떨어진 겨울철의 나무라 할지라도 그 쓰임새는 있다. 많은 나무 가운데 대추나무로 팽이를 만들어 돌리던 어린 시절은 생각만 해도 재밌다. 튼실한 나무를 골라서 톱으로 잘라 낫으로 끝을 뾰족하게 다듬는다. 팽이는 얼음 위에서 닳지 않고 오래도록 돌아야 하므로 나무가 단단해야 한다.
따라서 단단하기로는 대추나무가 제격이다. 동네 조무래기들이 함께 모여 추운 줄도 모르고 저수지 빙판 위에서 썰매를 타고 팽이를 돌리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요즈음에는 지구온난화현상으로 인해 얼음이 잘 얼리지도 않으니 어린 시절의 추억도 함께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다.
겨울은 엷은 서리를 내리게 한다.
밤새 내린 서리가 논두렁을 하얗게 채색하고 있다. 내린 듯 만 듯한 서리가 한 겨울을 쉬고 있는 논의 이불이 된다. 햇빛이 나오자마자 서리는 언제 내렸느냐는 듯이 자취를 감추긴 하지만. 황량한 들판에는 잠시 내린 서리를 빼고는 아무것도 없다. 아침 출근길에 주차를 하고 내리면 어느새 입김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입가에도 가벼운 물기가 서린다. 겨울이 나의 입가에까지 다가와 있다.
겨울은 살아가는 인생을 논하게 한다.
계절의 마지막이니 앞서 지내온 세월을 잠시 되돌아볼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차가운 날씨가 많아지는 탓에 바깥 활동이 줄어들고 움직임이 둔해지니 사색의 기회가 많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인생이 즐겁다는 생각도 하겠지만 때로는 무상함이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한 해를 바쁘게 지내온 자신의 시간들을 돌이켜 보고 인생설계를 다시 하고 챙겨 보는 것도 겨울이 가져다주는 덕분이다.
입동이 지난 지도 며칠이 지났건만 겨울은 아직 손에 닿지 않고 있다. 추위가 문 앞에서 늦가을과 섞여 서성대고 있다.
[김태식]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온마음재가센터 사회복지사(현)
울산신문 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해양문학상 논픽션 소설 당선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 wavekt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