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란 말은 한마디로 훌륭한 인재를 잘 뽑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모든 일을 잘 풀리게 하고 순리대로 돌아가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시대와 장소를 아우르는 진리로써 그 말속에는 실천 또한 그만큼 어렵다는 뜻도 내포돼 있다. 행정부 요직에 유능하고 능력 있는 인재를 등용하기 위해 ‘인사청문회법’이 2000년 만들어져 현재까지 시행되고 있다. 인사청문회법의 목적은 대통령이 행정부의 고위 공직자를 임명할 때 국회의 검증 절차를 밟도록 함으로써, 대통령의 인사권을 통제하고 견제하고자 하는 데 있다.
지금까지 인사청문회를 통해 많은 고위공직 후보자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후보자로서 만족한 채, 임명을 받지 못하고 낙마했다. 낙마의 대표적인 단골 메뉴는 위장 전입, 부동산 투기, 다운 계약서 작성, 탈세, 고액 수임료 수수, 그리고 논문 표절 등등 다양하다. 청문회 과정에서 이런 문제가 불거지면 고위공직 후보자들은 “죄송하다, 관행에 따른 것이다”라는 변명과 함께 동문서답이나 모르쇠로 일관하기도 했다.
그런데 국무총리 등 일부를 제외한 장관 등의 인사청문회는 사실상 구속력이 없다. 인사청문회 결과, 국회에서 부적절하다고 판단하고, 부적격 보고서를 채택해도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이를 거부하고 임명하면 그만이다. 국회의 인사청문회나 국민의 잣대가 아니라, 대통령이 가진 자신만의 고유한 기준에 의해 임명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인사청문회는 물론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한 견제 기능도 있지만, 인사청문회를 통해 도덕적으로 국민에게 신망은 받을 수 있는지, 그리고 업무 수행 능력과 리더십은 있는지 등을 검증하는 데 더 큰 목적이 있다. 그런데 현행 인사청문회 제도는 본래의 취지대로 운영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국민 기대에도 부응하지 못하는 문제점과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여당은 후보 능력 검증보다는 무조건 감싸기로, 야당은 도덕성에 관한 의혹 제기에만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인사청문회를 수시 때때로 지켜봐야 하는 국민은 늘 피로감과 함께 불쾌감마저 느낀다. 이런저런 이유로 인사청문회 무용론도 끊임없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의 인사청문회는 우리와 달리 인사청문특별위원회에서의 청문 절차를 거쳐 본회의에서 토론 없이 표결하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은 상시 인사청문회를 운영하고 있으며 인사청문회의 핵심은 청문회 전 철저한 검증과 충분한 소요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대통령의 사전 인선에 평균 270여 일, 행정부 인준 준비에 평균 28일, 상원 인준에 50일, 총 350여 일 정도가 소요된다. 즉 후보자를 선정하고 일 년 가까이 철저히 검증한 후, 인준을 받게 된다. 이런 이유로 미국 인사청문회는 비리나 의혹을 밝혀내는데 거의 완벽하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필요할 때만 인사청문회가 열리고 있으며 기간은 하루, 길어야 이틀이 고작이다. 태생부터 제대로 된 검증이 이루어질 수 없는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정치 선진국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제부터라도 인사청문회의 검증 기간도 충분히 늘리고, 도덕성과 능력 위주의 검증제도로 법을 바꾸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인사청문회는 ‘예산 낭비, 시간 낭비, 전파 낭비’만 가져올 뿐 인사청문회로서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지난 2년 반 임기 동안 국회 인사청문 경과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임명을 강행한 인사청문 대상자는 현재까지 ‘29명’이나 된다. 아직 임기가 반이나 남은 상태에서 이 숫자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 ‘23명’, 박근혜 정부 ‘10명’, 그리고 이명박 정부 ‘17명’ 등과 비교해도 지나치게 많다. 윤석열 정부가 앞장서 국민과 국회 뜻을 무시해 가며 인사청문회 유명무실화에 한몫 단단히 하고 있는 셈이다.
[이윤배]
(현)조선대 컴퓨터공학과 명예교수
조선대학교 정보과학대학 학장
국무총리 청소년위원회 자문위원
호주 태즈메이니아대학교 초청 교수
한국정보처리학회 부회장
이메일 : ybl773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