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날에 박씨 성을 가진 나이 지긋한 백정이 장터에서 푸줏간을 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백정이라면 천민 중에서도 최하층 계급이었다. 어느 날 양반 두 사람이 푸줏간에 고기를 사러 왔다. 첫 번째 양반이 거친 말투로 말했다.
"야, 이 백정 놈아, 고기 한 근 대령해라!"
"예, 그렇습지요."
그 백정은 대답하고 정확히 한 근의 고기를 떼어주었다. 두 번째 양반은 상대가 비록 천한 신분이지만, 나이 든 사람에게 함부로 말을 하는 것이 거북했다. 그래서 점잖게 부탁했다.
"이보시게, 박 서방! 여기 고기 한 근 주시게나."
"예, 그러시지요, 고맙습니다."
그 백정은 기분 좋게 대답하면서 고기를 듬뿍 잘라주었다. 첫 번째 고기를 산 양반이 옆에서 보니, 같은 한 근인데도 자기한테 건네준 고기보다 아무래도 갑절은 더 많아 보였다. 그 양반은 몹시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며 따졌다.
"야, 이놈아! 같은 한 근인데 왜 이 사람 것은 이렇게 많고, 내 것은 이렇게 적으냐?"
그러자 그 백정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네, 그거야 손님 고기는 ‘백정 놈’이 자른 것이고, 이 어른 고기는 ‘박 서방’이 자른 것이니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의 마음이 적은 편이다. 모처럼 던지는 말 한마디가 상대방 가슴에 못을 박히게 하거나 기분을 거슬리게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가벼운 접촉사고 정도의 교통사고 났을 때 노상에서 삿대질하며 고성으로 싸움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데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일을 목격하기 힘들다. 이는 상대방에게 말 한마디의 배려가 없기 때문에 가는 말이 거칠다 보니 결국 교통사고와 무관하게 싸움판으로 변질되고 만다.
확실히 일본 사람들은 유난히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상당히 습관화되어 있다. 일본에는 상대방의 면전에서는 속내를 말하지 않고 “하이 하이” 하면서 상대방에게 듣기 좋게 말하는 습관이 있는데 이를 ‘혼네’라고 하며 겉치례 말인 ‘다떼마에’라는 말까지 있다. 자기 의견을 피력함에 있어서 상항이나 상대에 따라 두 가지를 구별하여 사용하기에 익숙하다. 이러한 혼네와 다테마에는 전체의 조화를 위해 개인이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미덕으로 여긴다.
최근 모처럼 몇 년 만에 30년 넘게 가까이 지내던 대학 동창들을 만나 저녁 식사를 하기로 하여 조그만 한식집에 모였다. 오랫동안 외국기업에 근무하다가 심한 당뇨로 고생을 하고 있어서 모처럼 모임에 나온 친구가 처음 나를 보자마자 하는 인사말이
“야! 그동안 못 본 사이에 나이가 들어 너도 얼굴이 팍 갔구나.”
이 말을 들은 나의 표정은 일그러졌고, 오랜만에 만나 반갑다는 생각보다 ‘오랜만인데 하필 그런 식으로 말을 할까. 너는 어떤데...’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 5분 뒤에 들어온 친구는 사업을 하고 있어서 세상을 잘 알아서 그런지 아주 반가운 표정과 말투로
“친구 오랜만이다. 너는 어떻게 몸을 관리하길래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건강한 모습이구나. 요즘도 다니던 체육관에서 열심히 운동하는 모양이지?”
집안에서 고부간의 갈등, 직장에서의 상하 간의 갈등, 노사 간의 갈등, 특히 요즘 여야 정치인들이 인기가 떨어지는 이유도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은 거친 말씨에서 출발한다. 국감장이나 대정부 질문과 답변 시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말투와 볼썽사나운 장면들이 많아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국민의 대표임을 자처하는 여의도 사람들의 상대에 대한 말투는 거칠고 전투적이라 아이들이 따라 할까 봐 걱정스럽다.
실제로 ‘칼 맞아 죽은 사람보다 말이라는 칼에 맞아 죽은 사람이 훨씬 더 많다’라는 말이 있다. 그처럼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나쁜 거짓말은 곤란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는 경우나 남을 속이기 위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쁜 거짓말을 많이 하는 사람을 사기꾼으로 간주한다.
말투는 평소에 그 사람의 습관이자 인격이기도 하다. 아무리 친한 친구 사이라 하더라도 말은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고 예쁘게 말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어린애들처럼 잘 삐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더 늙어 보이는 건 당연하다. 설령 입고 있는 옷이 안 어울리고 전보다 살이 쪄 보이는 경우라도 첫인사를 할 때 예쁜 거짓말하는 사람은
“너 오늘따라 옷이 잘 어울리는데, 살이 붙어 왠지 더 건강해 보인다!”
반면에 돌직구형은 이렇게 말한다.
“너 그 옷이 뭐니!. 유행이 한참 지난 옷이네. 게다가 왜 그렇게 똥배까지 불뚝 나왔냐?”
같은 상황에서 이 얼마나 다른 표현인가. 대개 집안에서 착한 며느리로 소문난 경우 어른들에게 예쁜 거짓말을 많이 한다. 늘 자신은 낮추고 타인을 올리고 존중해주는 말씨다. 어느 조직에서나 잘 나가는 상사들은 칭찬을 통해 상대방을 내 편으로 만들어 나가기 때문에 주위 사람이 따르고 인기가 있다.
특히 한국인들의 특징 중 하나가 정(情)에 의한 인과 관계가 얽혀있다 보니 말 한마디 실수로 인간관계가 파탄이 날 수도 있어서 더욱 말을 조심해야만 한다. 한국인들은 서로 공감이 되고 마음이 통하면 신바람이 나고 흥(興)이 솟아나지만, 말 한마디 잘못하여 한
(恨)이 서리게 되면 마음의 문을 꽁꽁 닫아버린다. 말을 어떻게 상대방에게 기분 나쁘지 않고 호감을 줄 수 있는 표현 방법은 없는지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말을 건네는 배려의 마음이 필요하다. 분명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을 수도 있다. 그게 때로는 예쁜 거짓말이 필요한 이유다.
[가재산]
한류경영연구원 원장
한국디지털문인협회 부회장
미얀마 빛과 나눔 장학협회 회장
저서 : 『한국형 팀제』, 『삼성이 강한 진짜 이유』
『10년 후 무엇을 먹고살 것인가』, 『아름다운 뒤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