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동주의 이름은 참 오래간다. 그런데 지금까지보다 앞으로는 더 오래 갈 것 같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27년의 짧은 그의 생애는 맑은 유리상자 안에 들어있는 것 같다. 그 상자를 들여다보면 내 마음이 거기에 투영되는 거울이 된다. “그의 삶이 시였습니다. 시인은 자신이 시가 먼저 되어야 합니다. 그러했기에 ‘쉽게 씌여지는 시’는 그에게는 그렇게 쉬웠습니다”라고 지난 토요일 죠지메이슨 대학 한국학센타에서 있었던 윤동주문학제에서 축사자 한 분이 말씀하셨다.
시를 쓰는 사람으로서 가슴이 뜨끔했다. 윤동주라는 거울을 내게 비쳐 보면 어떨까. 부끄럽다! 부끄럽고, 부끄럽다. 기조연설을 해주신 연사 한 분도 이 점을 강조하셨다. 시를 쓰는 사람은 시인이 먼저 되어야 하기에 우리가 시인을 ‘시작가詩作家’라고 하지 않고 사람 인(人)자를 붙여서 시인(詩人)이라 부른다’고 했다.
이날의 기조연설자 한 분은 그의 시 ‘별 헤는 밤’에는 ‘이름’이라는 단어가 8번이나 나온다고 지적해 주었다. 윤동주는 시를 일기(日記)처럼 썼다. 시를 쓴 날짜를 꼭 적었다. ’별 헤는 밤’ 아래에는 1941년 11월 5일이라고 적혀있다.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을 하려면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창씨개명을 앞두고 쓴 시이다. 조선인의 이름으로는 현해탄을 넘어갈 수 있는 ‘도강증명서’를 받을 수 없다.
그의 가족은 윤동주의 장래를 위하여 ‘윤’을 ‘히라누마’로 이미 바꾸어 놓았다. 윤동주가 아닌 ‘히라누마 도오쥬우 (平沼 東珠)가 된다. 윤동주라는 이름을 이루는 자신의 정체성이 사라진다. 그는 별을 헤며 별마다 이름을 하나씩 붙여본다. 생각나는 이름 모두 붙여보고 나서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내 이름자를 써 보고/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라고 적었다. 히라누마 도오주우라는 이름을 자신에게 붙이고 5일 후 ‘참회록’을 쓴다.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24년 1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1942년 1월 24일 쓴 ‘참회록의 육필원고는 시 아래 난잡한 빗금과 세로줄이 그어지고 알 수 없는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다. 잃어버린 이름, 파열되는 자신의 정체성, 고뇌에 찬 참담한 심정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결국 이 시는 그가 조국에서 쓴 마지막 시가 되었다. ‘별 헤는 밤’을 쓴 날과 ‘참회록’을 쓴 날 사이가 2달 반이다. 그리고 일본에 갔다. 그해 6월 3일 일본에서 쓴 ‘쉽게 쓰여진 시’는 남의 나라에서 부모님의 학비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어릴 때 동무를 다 잃어버리고 사는 자신을 쓸쓸하게 바라본다.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기조연설자는 자신을 만들어 준 문화적인 공동체인 한국을 고향으로 의식하고 일본을 남의 나라라고 인식하는 윤동주의 고향 의식을 말해준다고 한다. 이듬해 43년 7월 10일 송몽규가 일경에 잡혔다. 위기를 느낀 그는 급히 귀향을 준비하고 있는데 나흘 뒤 일경은 그의 하숙집으로 찾아와 체포해서 곧바로 교토에 있는 카모가와 경찰서에 구금시켰다. 8개월 후, 1944년 3월 31일 교토지방재판소에서 사촌형 송몽규와 함께 개정치안지법 제5조 위반(독립운동)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둘은 후쿠오카 형무소로 이동되었다.
만주에 사는 그의 가족이 1945년 2월 26일 일본에서 온 그의 사망 전보를 받았다. 해방되기 6개월 전이다. 그가 사망한 지 열흘 후에 전보가 도착했다. 그의 아버지와 삼촌이 현해탄을 넘어 황망히 달려갔다. 언제나 수줍은 듯 엷은 웃음을 띤 건장한 청년 윤동주는 한 줌의 재가 되어 있었다. 아직 살아있는 윤동주의 사촌 형 송몽규를 만났다. 그 초췌한 모습이 살아있지만, 살아있는 것 같지 않았다. 송몽규는 매일 알 수 없는 주사를 맞는다고 한다. 나흘 후 송몽규마저도 사망했다.
그들이 일제의 감옥에서 사라진 지도 거의 80년, 그들의 조국은 간단없이 출렁이는 격량의 역사를 살았다. 6.25와 한반도의 분단, 4.19, 군사 독재, 5.18…… 때로는 한없이 침전하다가 그만큼 또 높이 솟아오르는 생존의 파도를 꼭 붙잡고 살아왔다. 식민지에서 문화강국, 경제강국, BTS, 오징어 게임, 기생충, 냉장고와 에어콘, 핸드폰 등으로 한국은 지구촌에 사는 인류의 일상 속으로 그리고 그들의 마음속으로 스며들어 왔다.
기술 발전과 함께 인구는 늘었고 IT 인프라와 생활의 편리함, 고품질의 의료체제가 세계 속에
서 우뚝 썼다. 고층 빌딩과 거미줄처럼 뻗어나간 고속도로와 전철망과 초고속기차 등. 밤의 위성사진에서 한반도 남쪽의 불빛은 점점 더 휘황찬란해진다. 한껏 자부심에 부풀어 문득 밤하늘을 본다. 윤동주가 별을 세던 그 밤하늘을. 그런데 밤하늘이 없다. 밤이 대낮 같다. 거리의 가로등, 상가의 불빛, 고층 아파트의 빼곡한 창문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물결에 희끄무레한 하늘은 저 멀리 물러나 있다.
그 총총한 별들은 다 어디로 갔나? 그 별들을 빛나게 해주던 캄캄한 하늘은 어디에 있나. 밤하늘과 그 속에서 빛나는 영롱한 별을 보지 않고 우리의 아이들은 어떻게 꿈을 꾸나. 그러고보니 아이들이 써야 할 맑은 물, 맑은 공기, 비옥한 땅을 하나도 남겨 두지 않고 우리 모두가 화학물질과 미세 플라스틱으로 덮어버렸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무도, 그 누구도 부끄럽다고 말하지 않는다.
윤동주문학제는 해마다 죠지메이슨 대학 한국학 센터에서 열린다. 우리보다 윤동주를 더 사랑하는 한국 문화권 밖의 인사들을 기조연설자로 해마다 모신다. 시카고 주립대학의 토마스 로완 교수, 일본 릿교대 윤동주사모회 회장 야나기 하라님, 전 브리멍햄대학의 마크 피터슨 교수 등이다. 그런데 금년에는 특별한 손님을 모셨다. 미국대학에서 한국을 공부하는 젊은이이다. 이 학생은 워싱턴윤동주문학회에서 American University의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동주문학상 수상자이다. 그는 ‘서시에 대한 성찰’이란 제목의 자필 수필을 낭독해 주었다. 그 에세이를 들으면서 우리 젊은이의 마음에 스민 윤동주의 거울을 보는 것이 흐뭇했다.
워싱턴윤동주문학회는 2006년 1월 7일 20여 명의 지역 인사들로 구성된 ‘윤동주문학사상 선양회’로 시작되었다. 후쿠오카 감옥에서 생체실험의 이슬이 된지 61년 만에 지구의 반대편 워싱톤 지역에 윤동주를 기리는 협회가 생긴 것도 놀라운데 벌써 18년이나 지속되었다. 이미 윤동주는 중국, 한국, 일본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는다. 심지어 그를 죽게 한 적국, 일본의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윤동주의 시 3편이 실렸다.
수상학생을 추천한 교수님은 ‘K-문학’을 세계에 펼칠 때’가 되었다고 한다. 한국 관련 과목을 듣는 비한국인 학생 수가 미국의 대학에서 갈수록 늘어난다고 한다. 한국학 전공, 부전공이 생겨나고 있다. 워싱톤 지역만 하더라도 죠지 메이슨 대학은 한국학 전공 학과가 있어서 약 200여 명의 학생이 택하고 있고 아메리칸 대학에도 부전공이 설치되었다. 이 지역의 각 커뮤니티 칼리지와 대학과 대학원에 작게 잡아도 천명 이상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문학제에서는 동주문학상의 확대와 대학생들과 커뮤니티와의 연계 프로그램도 의논되었다. 축사자 한 분은 ‘윤동주의 시비가 연세대학교 그가 살았던 기숙사 앞 비탈길에 서 있음”을 주지하라고 하신다. 그의 삶이 비탈에 있었듯 2024년을 사는 인류의 생존도 비탈길에 서 있다. 커다란 두 개의 전쟁, 기후변화, 초고속으로 달리는 기술 사회, 그만큼 빨라지는 빈부의 격차, 사람보다 더 똑똑한 휴머노이드의 출현. 그런데 세월이 흐르니 기쁜 소식도 들린다. 누구도 예기치 않았던 2024년도 노벨문학상은 53세의 여린 한 한국 여성에게로 왔다.
얼마나 기다리던 노벨상인가?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으로 40여 년 전에 사라진 ‘사자(死者)들의 목소리를 전 세계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사자들이 죽음의 현장에서 겪었던 처참했던 장면들을 절절히 얘기해 준다. 이젠, 힘센 사람이 상을 받지 않고 약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상을 받았으면 좋겠다. 목소리가 없는 자연이 상을 받았으면 좋겠다.
스웨덴 아카데미가 한강을 찾아낸 것처럼, 시인이란 소리를 들은 적도 없이 그냥 일기 쓰듯 시를 쓴 부끄럼 많은 윤동주의 여린 목소리도 세계인이 찾아내 주었으면 좋겠다. 작은 목소리들이 ‘K-문학’을 통하여 전 인류의 가슴속으로 스며들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이 윤동주라는 거울을 자신의 마음에 비추어 보면 좋겠다. 그래서 꺼먹 묻은 마음의 부끄러움을 찾아낼 수 있으면 좋겠다. 찾아내면 닦아 내고 싶을테니까.
윤동주의 거울은 생명의 본향을 가리킨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있는 아름다운 고향을 그리워하게 한다. ‘밤마다 자신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듯 우리도 윤동주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 문화 강대국, 경제 강대국이라한다. 그런데 우리가 딛고 있는 발아래는 기울어진 지 오래다. 경사가 점점 더 심해진다. 인공지능이 해결해 줄 수 있을까? 인공지능이 만드는 미래에는 포근하고 정이 넘치는 고향마을, 인간다움의 마을이 있을까? 개인은 점점 더 핵개인이 되어간다. 기계와 감정까지도 약품이 조절해 주는 세상에서 우리는 진정 마음속에서 울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그 여린 소리 속에 인간다움의 고향으로 가는 길이 있을 것이다.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길을 K-문학이 열어주면 좋겠다. 미국에서 한국을 공부하는 학생들부터 그 길을 보여 주어야 하겠다.
겨울이다. 황량한 바람이 부는 빈 들녘, 비탈길에 서서 윤동주 거울이 가리키는 마음의 고향, 생명의 고향을 그리워한다. 눈 덮인 고향 마을, 하얀 눈 속에 덮힌 마음의 고향, 그 고향을 향한 작은 꽃등불 하나 켜본다.
[김은영]
숙명여자대학교 졸업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석사
오크라호마주립대학 박사과정
시납스인터내셔날 CEO
미국환경청 국가환경정책/기술 자문위원
Email: kimeuny20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