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식 칼럼]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에서 보는 우리의 빙점은 무엇인가

민병식

미우라 아야코(1922 ~ 1999)는 일본 홋카이도 출생으로 1939년 아사히카와사립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초등학교 교사로 7년간 근무했다. 폐결핵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하던 중, 절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릴 적 친구 ‘마에가와 다다시’의 영향을 받아 1952년 세례를 받았다. 1963년 아사히신문사 주최의 1,000만 엔 현상 소설 공모전에 '빙점(氷点)'이 입상하며 커다란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길은 여기에', '이 질그릇에도', '살며시 생각하며' 등 다수가 작품이 있다.

 

의과대 교수 집안의 예쁘고 매력적인 나쓰에는 ‘쓰와구치 게이조’라는 대대로 병원을 운영하던 병원장과 결혼을 한다. 결혼을 전 게이조의 절친한 친구인 산부인과 의사로 다카키란 인물 역시 나쓰에를 마음에 두고 있었으나 게이조와 결혼을 한다고 하니 단념한다. 그러나 여전히 나쓰에를 마음에 두고 있는 남자가 있었으니 게이조의 병원 안과의사인 ‘무라이’다. 

 

​어느 날 남편인 게이조의 부재 시, 무라이는 집에 방문하여 나쓰에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었고, 나쓰에는 은근히 그 감정을 즐기면서도 무라이를 거절한다. 나쓰에와 게이조 사이에는 첫째아들인 ‘도루’와 둘째로 ‘루리코’란 딸이 있었다. 3살인 루리코는 나쓰에와 무라이가 대화하던 방에 들어가 놀아달라고 보채지만, 남편 아닌 사내의 감정을 좀더 느껴보고 싶었던 나쓰에는 딸에게 나가 놀라고 한다.

 

밖에서 놀던 루리코는 실종되고 얼마 후 강가에서 목이 졸린 채 죽은 딸의 시체가 발견된다. 아이를 죽은 범인으로 체포된 ‘사이시 쓰치오’는 유치장에서 자살을 한다. 이조는 나쓰에가 밀회 장면을 숨기기 위해 가정부에게 아들 도루를 데리고 나가도록 했고 루리코를 밖에 나가서 놀도록 했다고 추측한다. 

 

무라이와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루리코를 돌보지 않은 나쓰에와, 함께 있던 무라이가 살인의 공범이라고 게이조는 생각했고, 나쓰에의 어깨에 보랏빛 멍을 발견하고 나쓰에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한다.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나쓰에가 그 슬픔을 이기기 위해 양녀를 키우자는 요청에 그는 ‘요코’를 데려와 키우게 한다. 그러나 요코는 딸을 살해한 범인의 딸이었다. 게이조는 이를 숨기고 아내의 불륜에 대한 배신, 증오와 복수심으로 양녀 요코를 키우게 한다. 나쓰에는 그 사실을 모른 채, 요코를 애지중지 키운다.

 

그러던 나쓰에는 요코의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우연히 게이조가 산부인과 다카키에게 보내려던 편지를 발견하고 절망한다. 편지엔 자신의 아내와 무라이의 부정, 그리고 그 복수로 살인범의 자식을 기르게 했다는 모든 내용이 적혀있었다. 나쓰에는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게이조에게 말하지 않고 요코에게 급식비를 주지 않거나, 졸업식에 읽을 답사를 백지로 바꿔치기하는 식으로 요코를 남몰래 괴롭히기 시작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요코는 영문도 모른 채 엄마의 학대를 참고 견디며 아름답게 성장한다. 요코가 성인이 되자 오빠인 ‘도루’가 요코의 입양 사실을 알게 되고 요코에게 로맨틱한 감정을 품지만 친구인 기타하라에게 소개시켜 준다. 기타하라가 요코에게 구애를 하자 나쓰에는 편지 방해를 하거나 자신이 직접 기타하라를 유혹하는 방식으로 둘의 사랑을 방해하고 요코가 유괴살해범의 딸임을 고백하고 결혼을 막는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요코는 충격을 받게 되고, 그 죄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음독, 혼수상태에 빠진다. 그러나 루리코를 죽인 사람은 요코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요코의 아버지는 요코가 태어나기 보름 전에 죽은 학생이었고 어머니는 하숙집 주인이었다. 이에 나쓰에는 속죄의 눈물을 쏟는다.

 

물이 얼기 시작할 때 또는 얼음이 녹기 시작할 때의 온도 1기압 아래에서 섭씨 0도를 빙점이라고 한다. 요코의 빙점은 자신이 살해를 한 것은 아니지만 살인자의 딸이라는 죄의식이 그녀를 얼어붙게 만들고 자살을 시도하게 만든 빙점이었다. 게이조의 빙점은 아내를 향한 불타는 복수심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며 나쓰에의 빙점은 자신의 딸을 죽인 범인의 딸로 오해한 요코에 대한 증오심과 증오심에서 나온 복수의 행동이었을 것이다. 

 

작품의 등장 인물들에게는 인간의 순수함을 얼어붙게 만드는 빙점이 있었다. 작품은 말한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빙점이 존재하며 그것은 기독교가 말하는 원죄이기도 하고 마음 안에 들어있는 죄의식이기도 하다. 빙점을 녹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인가. 바로 용서, 자비, 이해, 연민, 인내 등을 모두 결합한 사랑이다. 

 

우리는 살면서 사랑하며 살고 있는가. 오로지 자신의 생존과 목표를 위해 비인간적으로 살고 있지는 않은지 마음이 얼어붙어 이기의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작품을 보면서 우리의 빙점을 살펴보아야 한다. 

 

 

[민병식]

시인, 에세이스트, 칼럼니스트

현)대한시문학협회 경기지회장

현)신정문학회 수필 등단 심사위원

2019 강건문화뉴스 올해의 작가상

2020 코스미안상 인문칼럼 우수상

2021 남명문학상 수필 부문 우수상

2022 신정문학상 수필 부문 최우수상

이메일 : sunguy2007@hanmail.net

 

작성 2024.12.04 10:58 수정 2024.12.04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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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