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길에서 낯선 사람들과 만나 하룻밤을 묵으면서 나눈 얘기다.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분의 나이는 10살이다. 휴전선 근처가 고향인 그곳에는 눈이 키보다 높게 쌓이면 앞집도 옆집도 뒷집도 구분이 되지 않았다. 외로움이 가슴을 파고들었지만 그래도 이 세상의 유일한 피붙이로 남아있는 2살 위의 누나와 단둘이 손을 꼭 잡고 울기만 했단다.
무엇이 그렇게도 급했든지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찍이 지병으로 6개월 간격으로 나란히 세상을 떠나셨으니 부모 없이 자라는 어린 그들의 겨울은 유난히 길었다. 배고픔에 지친 긴긴밤은 더욱 무서웠다. 부모님들이 남겨 놓고 떠난 유일한 유산인 움막집에서 겨울을 보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눈이 쌓인 겨울이면 이웃으로 밥 동냥을 하러 갈 수도 없었으니 추위와 배고픔을 눈물로 지샜다. 언뜻 그들은 고향을 떠날 생각을 했다.
어린 마음에 가난한 고향을 떠나면 무엇인가 해결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빙산처럼 굳어있는 눈이었지만 이웃의 훈훈한 인심은 그들의 집에 음식을 전했다. 동네 사람들이 눈을 치우고 길을 내어 전해주는 음식으로 연명하며 거역할 수 없는 계절의 흐름이 있어 희망 어린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봄눈이 녹아내리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계절이 찾아왔을 무렵 12살 누나와 그는 산에 가서 나무를 주워 모으고 산나물을 캐어 남쪽으로 갈 차비를 마련했다.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반겨줄 사람이 있는 것은 더욱 아니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단둘이라도 좋으니 겨울의 혹독한 추위와 먹거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남부지방으로 내려가서 살자는 것이었다. 떠나는 날 고향마을 사람들에게는 있지도 않은 부산의 친척집으로 간다는 거짓말을 하고 챙길 것도 없는 짐을 쌌다. 산으로 들로 남의 집에 일하러 다닐 때 입던 옷을 입고 때 자국이 줄줄 흐르는 신발을 신은 모습은 거지의 모습 그대로였다.
고향을 떠나는 이별은 아픔이었다. 그래도 10여 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왔던 터라 무슨 미련이라도 있었던지 발길이 쉬이 돌려지지 않았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리기 전에 동네 어르신들이 시키는 대로 부모님 산소에 들러 큰절을 올리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비석도 없는 묘소에 제물祭物이라고는 눈물뿐이었다.
겨우내 쌓여있던 눈의 물기를 먹으며 파릇파릇한 새싹들을 틔운 나뭇잎들이 열차의 차창 넘어 양쪽으로 늘어서 있었지만 목적지도 없이 열차에 몸을 실었기에 마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큰 도시로 전학을 가는 것도 아니고 다니던 고향의 초등학교마저도 그만두고 떠나니 어린 마음은 걷잡을 수 없는 슬픔으로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밤을 달리는 완행열차의 승차표 검사가 있는 시간에 그들은 자신들의 딱한 사정을 승무원에게 말해야만 했다. 무임승차를 했던 탓에 승차표가 있을 리 없었고 얼떨결에 나온 말이‘경주에서 탔고 울산에서 내린다’고 했단다. 그 차비만 주고 내린 곳이 울산이었다.
황량한 벌판에 내려진 이들은 갈 곳이 없었다.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은 그들을 더욱 처량하게 만들어 가고 있었다. 누나는 동생의 신발이 커서 자꾸만 벗겨진다는 얘기에 어디에선가 끈을 구해 묶어 주었다. 걷고 또 걸었다. 철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은 물론이고 제대로 먹지 못하고 씻지 못한 얼굴로 찾아간 곳이 어느 식당이었다. 아침 일찍 해장국을 먹으려는 사람들로 식당은 북적거리고 있었다. 일하는 아주머니 한 분이
“얘들아, 부모님이 들어오실 때까지 여기 의자에 앉아 기다릴래”
우리에게 부모님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아주머니 그게 아니라 저 여기에서 일을 할 수 없을까요?”
그의 누나는 당차게 얘기를 했단다. 너 도대체 ‘몇 살이냐?’는 물음에는 못 들은 척하던 누나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면서 그는 콧물을 닦았다. 고향을 떠날 때의 그 아픈 이별이 가슴에 묻혀 자꾸만 고향 쪽으로 눈을 돌리던 시간 속에서 또 다른 헤어짐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누나의 손은 거칠어져 가냘픈 12살 소녀의 피부가 아니었다. 그래도 누나는 식당에서 부엌의 허드렛일이라도 하면서 밥이라도 얻어 먹지만 그는 아니었다.
남자아이는 그저 밥만 축내는 눈칫덩이였던 터라 다른 집으로 옮기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낯선 곳에서 누나와의 이별은 부모님이 세상을 떠났을 때의 슬픔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록 컴컴한 지하 단칸방일지라도 둘이 같이 지냈던 날들은 그들에게 있어 호사스러운 생활이었다.
[김태식]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온마음재가센터 사회복지사(현)
울산신문 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해양문학상 논픽션 소설 당선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 wavekt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