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쥐를 보기가 쉽지 않지만 지금부터 약 50년 전만 해도 도시와 농촌 할 것 없이 쥐가 득실거렸다. 쥐는 떼로 몰려다니며 농작물이나 추수한 곡물을 먹어치우니 골칫거리였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서민 대중과 함께 살 수밖에 없는 동물이었다. 밤중에 천정에서 쥐들이 달리기를 하는 소리를 듣고도 태연하게 잠자는 사람들을 요즘 세대는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쥐는 인간에게 해로운 동물이지만 서민들과 함께 애환을 같이한 동물이기도 하다. '콩쥐 팥쥐'라는 설화가 있는가 하면 쥐와 관련된 속담이 많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은 언제나 말조심하라는 경구다. 이 속담을 통해 새는 주행성이고 쥐는 야행성 동물임을 알 수 있다. 자나 깨나 말조심해야 된다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속담이다.
"독안에 든 쥐다"라는 말도 있다. 전쟁터에서 적을 포위했을 때 쓰는 말로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말이다. "고양이 앞의 쥐"는 워낙 센 상대 앞에서 주눅이 들어 옴짝달싹 못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보리쌀 바구니에 든 쥐새끼 같다"는 재미있는 표현도 있다. 어쩌다 실겅 위에 얹어 놓은 보리쌀 바구니에 들어가 포식을 할 기회는 잡았지만, 언제 주인이 나타날지 모르기에 눈알을 요리조리 굴리는 쥐를 묘사한 말이다. 빈집털이를 하는 도둑이나 직장에서 일은 하지 않고 남의 눈치만 살피는 사람을 여기에 비교할 수 있겠다.
"고양이도 궁한 쥐는 쫓지 않는다"라는 말도 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는데, 쥐도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면 돌아서서 고양이를 무는 수가 있다. 도둑놈도 퇴로를 열어두고 쫓아야 강도로 돌변하지 않는다. 인간사에서도 참고해야 할 말이다.
쥐는 종류가 다양하다. 새앙쥐로도 불리는 생쥐는 크기가 아주 작다. 워낙 작아서 새끼 쥐로 착각할 수 있지만 다 자란 어른 쥐도 탁구공 크기만 하다. 방에 들어와서 농장 밑으로 숨어버리면 쫓아내기가 쉽지 않아 애를 먹는다.

쥐는 서식하는 장소에 따라 집쥐와 밭쥐로도 나뉜다. 집쥐는 주로 사람이 사는 집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먹거나 곳간의 곡물을 훔쳐 먹고 산다. 밭쥐는 밭 주변에 살면서 농작물을 갉아먹는다. 옥수수 대를 타고 올라가 알이 여무는 옥수수를 아작 내기도 하고, 참외가 익기도 전에 속을 파먹는 놈들도 있다.
이런저런 쥐들이 많지만 '문쥐'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기차처럼 이동하는 쥐 떼를 '문쥐떼'라고 한다. 어스름 해 질 무렵에 문쥐떼는 아슬아슬한 담장을 타고 이동한다. 맨 앞에는 아빠 쥐가 서고 그 뒤에 새끼들이 줄줄이 서서 서로의 꼬리를 물고 나아가는데, 맨 뒤에는 엄마 쥐가 마지막 새끼의 꼬리를 물고 후방을 경계하며 따라간다. 나는 어릴 적에 시골집에서 이런 광경을 자주 보았다.
지금은 동네마다 애들 구경하기가 쉽지 않지만 6.25 전쟁이 끝나고 나서 폭발적으로 아이들이 태어났다. 도시의 골목에는 깡통차기나 고무줄놀이를 하는 애들로 왁자했고, 농촌에서도 편을 갈라 자치기를 하거나 택견의 원형인 '까기' 놀이를 하는 애들로 온종일 동네가 시끄러웠다. 이런 애들을 보고 어른들은 문쥐떼 같은 놈들이라고 싫지 않은 농담을 했다.
세상은 갈수록 각박하고 뒤숭숭하지만 아련한 추억 속에 남아 있는 문쥐떼 같은 죽마고우들이 더욱 그리워지는 시절이다.
[이봉수]
시인
이순신전략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