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룡마을’은 왠지 궁금한 게 많아 늘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차편으로 양재대로를 지나치거나 대모산을 끼고 지나는 서울 둘레길을 갈 때 먼발치에서 바라다본 것이 전부였다. 그때마다 온갖 구호가 난무한 현수막들이 을씨년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마침 한 모임에서 구룡마을에 연탄을 배달하는 봉사단을 모집한다는 연락이 왔다. 후원금만 돈으로 내도 된다고 했지만 후원도 하고 연탄배달도 하겠다고 자청했다.
2월 초 늦추위에 바람도 불어 귀와 볼이 시러울 정도로 차가운 토요일 아침이었다. 참가자 여덟 명과 함께 마을에 일찍 도착했다. 어느새 다른 봉사팀들은 연탄을 분주하게 나르고 있었다. 오늘 행사를 주관하는 단체인 ‘연탄은행’ 직원의 안내가 시작되었다. 먼저 연탄배달 봉사에 대한 취지에 대한 설명을 했다. 연탄은행의 사업에 대한 소개와 궁금했던 구룡마을에 대한 안내가 이어졌다.
연탄배달을 주관하는 곳은 순수한 민간후원 단체인 <밥상공통체은행>이었다. 처음에는 IMF 시절 어려운 사람들에게 무료급식과 노숙인 자활을 돕는 사업들을 주로 해왔다. 2002년 어느 독지가 한 분이 후원하기로 하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연탄을 나눠주자는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그것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연탄배달 봉사단인 연탄은행이 출범하게 되었다.
이 은행에서는 연탄 사용 가구 조사를 해마다 하는데 아직도 10여 가구가 연탄을 때고 있다고 한다. ‘밥은 하늘이고 연탄은 땅입니다.’ 연탄은행 홈페이지에 쓰인 글귀처럼 아직도 연탄에 의지해서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고지대 달동네, 비닐 하우스촌, 농어촌 산간벽지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주로 나이 든 어르신이 많은데 값산 연탄을 찾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들에게 연탄은 퇴출의 대상인 화석연료가 아니라 생존의 에너지인 셈이다. 연탄은행에서 지금까지 7천8백만 장이 넘는 연탄배달 봉사를 했고 봉사자만도 50만 명이 넘었다.
“이 마을은 워낙 세간에 화두에 많이 올랐던 지역이라 투기 목적으로 개발 이익을 얻기 위해 사는 분들도 일부 있지만 저희 연탄은행이 354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실제로 어렵게 사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오늘은 두 가구에 연탄이 150장씩 들어갈 예정인데 가족들이 한 달 정도 따뜻하게 지내실 수 있습니다.”
담당자의 설명으로 추위에 움츠러들었던 가슴이 좀 따스해지는 것 같았다. 여기는 산기슭이라 빨리 추워지고 늦게까지 추위가 이어지는 지역이다. 길게는 5월 초까지도 연탄을 때야 하고 여름 장마철에는 무척 습해서 연탄을 때야 해 거의 365일 연탄이 필요하다. 그 말을 들으니 연탄 한 장이 800원이지만 무게 3.65kg의 연탄이 36.5도의 체온을 365일 유지해 주는 그 가치가 한없이 무겁고 크게 느껴졌다.
대부분 연탄배달이 처음인 우리들에게 배달 요령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우선 팀을 셋으로 나눠서 한 사람은 연탄을 실어주고, 또 한 사람에게는 연탄을 내려놓는 일을 맡겼다. 나머지 인원에게는 지게에 연탄을 싣고 직접 나르는 일을 분담시켰다. 입고 간 옷이 시커먼 연탄재로 더러워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장갑부터 팔에 끼는 토시까지 모두 준비되어 있었고 앞뒤로 입는 긴 조끼까지 있어서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
연탄을 나르면서도 거주하는 분들이 눈에 띌 때마다 틈틈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더러는 옛날처럼 연탄을 화덕에 넣어 밥을 짓고 요리를 하며 난방까지 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 요리할 때는 가스불을 쓰고 연탄보일러를 통해서 순환식으로 난방을 하고 있었다. 열악한 환경에서의 삶이 녹록지 않지만 제일 힘든 일은 개인 화장실이 없어서 추운 겨울날에도 공동 화장실을 쓰는 일이라고 했다.
이 판자촌에 사람들이 거주하기 시작한 시점은 1988년 서울 올림픽 전후였다. 이후 도곡동에 있던 판자촌이 1994년 부촌의 상징이 된 타워팰리스의 부지로 선정되고 그곳에 있던 주민들의 거주지가 철거되자 철거민들이 구룡마을에 들어와 정착했다. 2000년대 이후 부동산 붐과 재개발 활성화로 인해 재개발 예정지가 다 그렇듯 기존의 실제 거주민 중에 부동산 '보상 꾼'들도 일부 유입되었다.
1970년대 철거 판자촌의 애환과 사회갈등을 다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소설과 영화가 화제가 되어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50년이 흘렀지만 거기에 등장하는 도시 속 소외계층의 고달픔이나 사회적 갈등이 그대로 존재하는 몇 안 남은 곳 중의 하나가 구룡마을이다. 지금도 구룡마을에 사는 거주민들을 이해하지 않은 채 무능한 사람으로만 낙인찍는 폐쇄적인 편견이 그대로 남아 있다. 몇 년 전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기 전까지 구룡마을 주민들이 수십 년간 전입신고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기부나 봉사는 자신을 위한 이기심에서 나온다고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번 구룡마을에서의 연탄배달로 나 자신이 행복을 느끼고 삶에 의미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여러모로 다행이었다. 작은 나눔이지만 이러한 마음이 행복바이러스가 되어 계속 이어지고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미얀마에 청소년들을 위한 장학사업을 하고 있는 내게 아내는 굳이 해외에까지 장학사업을 하느냐고 늘 불만이었다. 그러던 아내가 지난봄 성큼 목돈을 내밀며 후원금에 보태 쓰라고 하니 고마울 뿐이다. 중학생을 둔 딸아이도 뒤따라 미얀마 청소년 장학금으로 매월 기부금을 내기 시작했고 아들은 회사에서 자주 봉사를 나가고 있다니 감사하다. 수년 전부터 시작한 봉사나 기부하는 일들은 이제 출발에 불과하다. 안도현 시인은 내게 이렇게 묻고 있는지 모른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좀 더 뜨겁게 살아야겠다.
[가재산]
한류경영연구원 원장
한국디지털문인협회 부회장
미얀마 빛과 나눔 장학협회 회장
저서 : 『한국형 팀제』, 『삼성이 강한 진짜 이유』
『10년 후 무엇을 먹고살 것인가』, 『아름다운 뒤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