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이로의 숨은영화찾기] 넷플릭스시리즈, 빌어먹을 세상 따위

임이로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제임스는 자신을 사이코패스라고 믿는 17살 소년이다. 제임스는 유아 시절 어머니의 자살을 목도한 후로 일상에 모든 일에 무감각해졌다. 감각을 깨우려 자극을 찾아 선택한 취미는 자기 학대와 동물 살해. 이윽고 더한 자극을 찾으려 살인을 처음 결심한 대상은, 감정 기복이 심하여 충동 행동을 일삼는 동갑내기 소녀, 앨리사다.

 

나름 치밀한 계획대로 중대한 사고를 치는 제임스는, 무작위로 가벼운 사고를 치는 앨리사를 죽이려고 몇 번이고 시도하지만, 그때마다 자신을 다른 방식으로 자극하는 앨리사 때문에 계획을 실천하지 못한다.

 

제임스는 이렇게 괴물 같은 자신을 자상하게 대하면서도 ‘웃으며 방치하는’ 삶을 지속하는 홀아버지를 믿지 않고, 앨리사는 재혼한 어머니의 무관심과 새아버지의 괴롭힘 때문에 이 ‘빌어먹을 세상 따위’를 등지려 동반 가출을 결심한다. 제임스의 계획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계획은 또다시 실패. 제임스와 앨리사는 오랫동안 비운 한 교수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해 일탈을 일삼는다. 음악을 시끄럽게 켜고 마음껏 술을 마시며, 그러다 같이 춤추는 서로에게 애정과 연민을 느끼며.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집주인이 돌아오는데. 문제는 집주인이 방에서 혼자 자는 앨리사에게 몹쓸 짓을 하려 했단 점이다. 그를 저지하기 위해 제임스는 앨리사를 죽이려던 흉기로 교수를 살해한다. 그렇게 둘의 운명은 시작된다.

 

넷플릭스 시리즈 <빌어먹을 세상 따위(The End of the F*ing World)>는 찰스 포스만(Charles Forsman)의 월간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다. 앞서 말한 ‘교수 살해 사건’으로, 제임스와 엘리사는 쫓기는 신세로 방황하면서 겪는 일은 어떻게 보면 웃기지만 어떻게 보면 무섭고 슬프기까지 한 블랙 코미디.

 

작품은 일탈로 시작한 가출 청소년들이, 어른들의 일탈을 직면하며 정말 다시 없을 성장과 극복, 그리고 사랑에 관한 지독한 이야기로 단순히 요약할 수 있겠지만, 영국 드라마답게 특유의 우울한 정서와 적나라한 연출 및 서사는 보는 이 뇌리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제임스는 죽지 못해 무언가를 끊임없이 죽여왔고, 앨리사는 죽지 못해 주변을 괴롭히며 살아왔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이들에게 극적인 구원과 용서는 구해지지 않는 것도 당연지사라. 그동안 저지른 제임스의 악행과 앨리사가 상처 준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들을 보복해 오고, 배신하며 상처입힌다. 

 

어른들과 세상의 나약하고 저열한 모습에 맞서며, 제임스-앨리사도 끝내 체념해 가는 것으로 시리즈는 마무리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은 자신들이 맞이한 비극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니까.

 

천만다행인 것은, 제임스와 앨리사는 아직 어리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스스로를 책임지지 못하기 때문에 법적으로 보호받는다. ‘빌어먹을 세상’에서 결국 그들을 멈춰 세운 것도 그 ‘빌어먹을 세상’의 방식인 것이다.

 

16부작 내내, ‘어떻게 저렇게까지 대책이 없을 수가 있지.’라는 생각을 멈출 겨를없이 아이들의 일탈은 드라마 내내 가감 없이 드러난다. 이 작품이 허구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러나 실제로 무시 못 할 ‘유아 청소년의 범죄 및 일탈’을 뉴스에서 꽤 자주 목도할 수 있다는 진실도 불편하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생각보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오지랖과 달리 알아서 잘한다고. 오히려 어린 이들에게 세상에 대한 불신 지옥을 보여주는 것은, 미숙하고 나약한 상태로 어른들이 되어버린 사람들 때문이라고. 성장기인 인간이 ‘내가 성장해 봤자 저런 인생을 살 거야.’라고 포기해 버리게끔 만드는, 절대 본보기가 될 수 없는 것들이 가장 문제라고. 

 

원망만 서린 철없는 생각이지만, 문화 컨텐츠는 동시대의 정서와 공명할 수밖에 없는바 <빌어먹을 세상 따위>라는 작품 제목과 제임스-앨리사의 일탈 및 사랑은 어쩐지 큰 울림이 있다.

 

근래 젊은 세대들에게 자주 읽히는 책이, 쇼펜하우어의 실존 철학과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등 주로 ‘삶의 허무’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들이라고 한다. 이런 문화적 현상이 말해주는 것처럼 극심해진 사회 격차, 취업 포기, 그리고 코로나-‘사회적 거리 두기’ 이후로 계속해서 고립되어 가는 우리는, 제임스와 앨리사처럼 삶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충동과 포기를 종용하는 ‘이 빌어먹을 세상’ 끝에 이미 와 있는 게 아닐까.

 

어쩐지 불안감이 엄습한다. 설마가 사람 잡을지도.

 

이 드라마는 그 ‘설마’를 실현케 한 아주 미래지향적이면서도 동시에 파괴 속 낭만이 있다. 우리가 끝내 이 빌어먹을 세상 끝에 이르러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지. 위트 있게, 하지만 아주 무겁게 골을 때리는 작품이다. 추천!

 

 

[임이로]

칼럼니스트

제5회 코스미안상 수상

메일: bkksg.studio@gmail.com

 

작성 2024.12.20 11:09 수정 2024.12.20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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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