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 칼럼] 우주에서 오시는 이여!

김은영

내가 나에게! 

 

참 오랜만이야. 왜 그랬을까? 너를 늘 생각하지만 정작 책상을 마주하고 앉지 못했어. 이 아침, 차가운 겨울의 풍경 앞에서 너를 만나지 않고는 내가 더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아서 이렇게 너를 불러봐. 내가 나에게! 책상 앞에 앉아서 너의 어깨 너머로 창밖을 본다. 동녘의 아침햇살이 갈색으로 변한 뒤뜰의 잔디와 저편 숲속의 낙엽들 위에 긴 나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네. 긴 그림자, 지구가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비스듬히 지나가기 때문이겠지. 긴 그림자의 낭만, 어느날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도 정면으로 오지 못하고 비스듬히 지나가며 긴 그림자를 남겼지. 아니 그건 내가 그를 정면으로 대하지 못한 탓이기도 하겠지만…  

 

긴 그림자가 있는 계절은 뜨겁지 않아서 좋지, 그리고 열정이 아닌 그리움이기에 더 좋고. 이렇게 한 해가 길고 긴 그림자를 내 뜰에 드리울 때는 내 마음에도 길고 긴 한 해의 그림자가. 그림자만 남기고 떠나간 사람들, 낮은 그림자로 내게 다가오는 사람들, 그리고 너와 내가 살아온 한해의 긴 그림자가 마음에 투영되는 시간이야.  

 

이젠 너를 만나야 하겠어. 늘 너와 대화를 하지만 정식으로 작정하고 둘이 마주 앉지 못했으니까. 이제 됐어. 너의 등 넘어 보이는 뒤뜰로 향하는 창문, 저 잔디밭 너머의 숲을 보고 있어. 여름 동안 아름다운 꽃과 잎의 잔해를 그대로 단 채 나무는 차가운 공기 속에 스산하게 서서 간밤에 간헐적으로 내린 첫눈의 잔해가 뭉게구름처럼 여기저기 덮인 대지 위에 한 해의 그림자가 끝 간데없이 어지럽게 드리워져 있어. 

 

겨울을 어기고 담쟁이넝쿨이 창틀을 타고 기어 올라오고 있어. 이층에 있는 내방까지. 어떻게 이렇게 멀리! 생명력에 감탄하지만, 이들이 귀엽지만은 않은 것이…. 지난여름 내내 정원 여기저기서 올라오는 녀석들의 뿌리를 뽑느라 진땀을 뺐거든. 작은 별 모양의 잎을 피우는 통통한 줄기, 귀여운 잎 사이마다 보송한 털 같은 덩굴손, 저 부드러운 털의 악력이 이렇게 셀 줄이야. 돌벽을 움켜잡고 여기까지 왔으니.  

 

덩굴손은 무엇이든 붙잡으면 그 속으로 박고 들어가 뿌리가 되나 봐. 붙잡은 덩굴손으로 영양소를 빨아서 기생하니 누가 좋아하겠어? 나무면 고사시키고 집의 벽이면 지반을 약하게 하니까. 나쁘지? 한때 이 집도 이 녀석들로 덮였던 적이 있었어. 240년 전에 돌로 만든 이 돌집에 주인이 많이도 바뀌었지만 어떤 주인은 그렇게 내 버려두었고 어떤 주인은 그걸 다 베껴내었어.

 

자연에는 선악이 없지. 오로지 균형만이. 균형과 순환의 원리 속에서 어느 위치에서 어떤 속성으로 생명이 구성되어 있느냐에 따라서 천사도 되고 악마도 된다고도 생각해. 여름이 거의 끝나는 어느날, 뒤뜰에 인접한 숲에서 막대기 같은 꽃대 같은 것이 쑥쑥 올라오는 것을 발견했어! 너무나 신기해서 계속 지켜보았지. 그런데 얼마 후 이 막대기 같은 꽃대 위에 족두리같이 예쁜 분홍색 꽃이 피는 것을 보고 얼마나 놀라고 기뻤는지 몰라. 내 가슴에 핀 그 환희는 하늘이 내게 한 아름 안겨 준 선물이었고 천사였지. 후에 알게 된 것은 그 꽃이 상사화라는 꽃인데 잎이 먼저 나와 자라서 사라지고도 한참 후에, 꽃대만 올라와 꽃이 핀다고 해. 그래서 잎과 꽃은 평생 만나지 못한대.

 

이렇게 신기하고 애틋한 꽃이! 그런데 이런 상상을 해 봐. 혹 그 꽃에 독성물질이 있어서 내게 해를 준다는 것을 내가 안다면 그 꽃을 그렇게 기뻐했을까? 그 꽃을 천사라고 생각했을까? 아름다움을 가장한 악마라고 생각했을 수도.. 그렇지? 스산한 한해의 마지막쯤에 초록색 생명으로 내 창을 기어오르는 담쟁이덩굴이 귀여워. 언젠가는 저 녀석을 뽑아내야지 하는 마음을 먹고 보니까 아마 귀엽다고 느낄 거야. 혹 어떤 이유로 내가 이 녀석을 뽑아낼 능력이 없다면 여전히 귀여울까? 

 

자연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우리의 존재가 다른 존재와 어떤 관계 속에 따라서 내가 보는 대상이 천사도 되고 악마도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행과 불행도, 내가 자연과, 가족과, 사회와, 우주와 어떤 관계에 있느냐에 달린 것이 아닐까? 

 

우리의 브레인은 다른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 나의 감정을 행복하게도 무섭게도 슬프게도 만들어낸다. 브레인의 궁극적 사명은 나의 현 생명 현상을 지속시키는 것이다. 브레인처럼 이기적인 것이 없다. 브레인에게서 가장 중요한 임무는 환경 속에서 내가 살아남는 전략을 짜고 살아남는 데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다. 내가 만나는 모든 대상과 사람들도 내 삶의 지속가능성에 견주어 도움이 되느냐 손해가 되느냐를 측정하여, 그 측정된 값으로 감정을 만들고, 만들어진 감정에 따라서 다음의 행동을 계획한다. 

 

나의 생물학적인 몸이 사라질 것을 알아서 아예 성이라는 메카니즘을 통하여 자식들에게 내 DNA를 세포마다 주어 놓았다. 자연선택이라는 것을 통하여 주어진 자연과 사회적 환경 속에서 더 많이 살아남은 유전인자가 다음 세대로 전해지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굉장한 통찰의 선언이다. 종교적인 절대 진리를 추구해 온 중세 천년의 암흑의 시기가 갈릴레오의 지동설, 쿠텐베르크의 금속활자의 발명, 뉴턴의 만유 인력과, 다윈의 종의 기원으로 파괴되어 가던 시대, 유럽인들의 항해술이 지구의 구석구석을 탐험해 가면서 발견되는 대륙에서, 닥치는 대로 총칼을 겨누어 주민들은 납치하여 노예선에 태우고, 착취한 자원과 함께 배에 싣고 돌아와 부를 축척하던 시대, 가슴속에 괴리와 갈등은 애써 외면하고, 움켜잡은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하던 유럽의 왕족들과 종교 지도자들의 만행의 시대에,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니체 자신의 표현대로, ‘망치로 두개골을 깨는’ 선언이었다. 

 

니체의 손가락은 땅을 가리킨다. ‘대지의 소리를 들으라’고 외친다. 그렇다! 왜 여태껏 우리는 하늘만 보고 살았을까? 우주인이 하늘에 가보았다. 우주는 온통 어둠이고 막막한 공간이었다. 우리가 알게 된 것은 그 어두움이 별을 만들고, 별은 빛을 만들고, 별과 빛이 만나서 빚어진 원소가 우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별의 자식이다. 똑같은 별의 자식인 지구는 우리에게 생명을 입혀준 어머니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레이첼 칼슨의 표현대로 ‘지구가 입고 있는 얇은 녹색 외투’ 속이 우리 생명의 고향이다. 수천 도의 철이 이글거리는 용광로 같은 지구의 내부와는 달리 적당하게 식어서 따뜻하게 우리를 덮어주는 외투같은 생명그물망 안에서 우리는 식물이 만들어 준 산소를 마시고 탄소는 내쉬어 식물이 살게 하면서 호흡을 주고받으며 수억 년을 살아왔다.

 

헤르만 헤세는 싱클레어를 시켜서 데미안에게 말한다. ‘새는 알을 깨고 날아간다’고, 그리고 그 새가 날아가는 곳은 ‘아프락사스’라고 일러주었다. ‘아프락사스’는 천사의 신도 아니고 악마의 신도 아니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하는 그 신은 ‘이분법의 신’이다. 천사와 악마를 가르는 신이다. 니체는 ‘춤추는 신’을 좋아했다. 그는 ‘춤추는 신’이 ‘진정한 신’이라고 했다. 그렇다, 아프락사스는 춤을 출 것이다. 천사나 악마의 특성을 모두 가지면서도 동시에 모두를 가지고 있지 않은, 다만 해와 달과 바다의 조수와 우리 혈액에 흐르는 조상의 피의 박동에 장단을 맞추어 춤을 출 것이다. 

 

우리도 춤을 추자. 생명을 준 옛 바다의 염도를 혈액 속에 담고 있는 우리. 그 옛 바다의 파도에 일렁이며 살았던 활유어, 박테리아, 바이러스 같은 원시 생물의 몸짓과 계절의 운율에 맞추어 우리 삶의 이야기가 멜로디가 되어 자연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에 맞추어 춤을 추자. ‘인간’이라는 캡슐을 깨고 날아가자. 생명그물망의 크고 작은 식물과 동물과 손을 잡고 대륙과 대양을 잇는 도래춤을 추자. 지구라는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항해하는 우리는 행성의 운행과 은하의 물결과 지구의 계절의 리듬에 맞추어 춤을 추며 찰나라고 불리는 생의 순간순간을 깊이 감사하고 지극한 행복함으로 영원을 만들어야 한다.  

 

내가 나에게! 새해 첫날의 아침 해는 담쟁이덩굴이 올라오는 이쪽 창문이 아닌 저쪽 창문으로 떠오를 거야. 저기 대서양의 수평선 위로 올라오는 붉은 해가 볼티모어 인너 하버(Inner Habor)를 비추고 저 동녘 창문을 뚫고 내 이마에 꽂히는 그때 우리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속삭이자 ‘우주에서 오시는 이여! 지금, 이 순간이 당신이 비추시는 사랑으로 영원합니다’

 

 

[김은영]

숙명여자대학교 졸업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석사

오크라호마주립대학 박사과정

시납스인터내셔날 CEO

미국환경청 국가환경정책/기술 자문위원

Email: kimeuny2011@gmail.com

 

작성 2024.12.31 10:07 수정 2024.12.31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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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