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의 영화에 취하다] 책상 서랍 속의 동화

최민

우리는 이런 영화를 원했는지 모른다. 따뜻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이야기에 눈물 적시며 찌든 삶에 오염된 마음을 씻어내고 싶었을 것이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브레이크 없는 기차를 탄 현대인들은 어디쯤에서 내려야 할지 모른 채 계속 달려간다. 그래서 순수하게 따뜻하게 살며 명량하고 우아하게 영혼을 살찌우고 싶은 것이다. 세상에 넘쳐나는 건 이야기다. 소설로 영화로 만화로 뮤지컬로 노래로 유튜브로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들은 날이 가면 갈수록 욕망의 범주를 벗어나 어디까지 갈지 모르는 줄 풀린 맹견과 같다.

 

지금 영화판은 그야말로 ‘빌런3종세트’가 판친다. 패륜, 깡패, 살인 같은 인간 내면을 좀먹는 그런 영화로 도배되어 있다. 모방범죄가 판치고 모방 자살이 급증하며 뇌를 자극하는 마약 같은 중독성에 빠지게 만든다. 애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제정신이 아니다. 한마디로 돈벌이에 미친 것이다. 자극적이지 않은 영화는 흥행이 안 된다. 삶이 각박하고 힘들고 남과 비교해야 직성이 풀리는 ‘욕구불만증’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제도 탓도 아니고 사람들 탓도 아니다. 남 탓하다가 우린 망한다. 뇌가 망하고 정신이 나가고 영혼이 박살 난다. 그래도 영화는 굴러간다. 아이러니다.

 

세계적인 거장 ‘장이모’는 ‘책상 서랍 속의 동화’를 통해 우리에게 동화 같은 따뜻함과 잃어버린 순수를 되찾아 주고 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땅 어느 한구석에는 때 묻지 않은 사람들의 삶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영화를 보면서도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현장에 함께 있는 듯한 감정이 드는 영화다. 모두 자본을 따라 도시로 몰려들고 그 도시로부터 자본이라는 거대한 힘의 논리에 정신이 나가 있을 때 날것의 순수함을 그대로 드러내 우리 마음속 깊이 가라앉은 본래의 모습을 끄집어내고 있다. 가공된 보석의 아름다움보다 가공되지 않은 원석을 발견했을 때 느끼는 기쁨이다. 

 

장예모 감독의 초창기 작품인 ‘책상 서랍 속의 동화’는 1999에 만든 영화다. 중국 어느 시골 마을에서 벌어졌던 실제 이야기를 듣고 장예모 감독은 인간의 순수한 감정에 감동하여 영화로 만들었다고 한다. 작품 속에 나오는 인물은 배우가 아니라 그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연기한 것이기에 진심이 배어있다. 눈빛 하나 행동 하나에 빨려 들어간다. 그래서 그런가. 생생한 현장감이 있다. 반세기 전에 우리도 겪었던 가난을 보는 것은 마음 저 밑에 가라앉은 무언가를 보는 것 같았다. 찢어지게 가난해서 월사금도 못 내고 점심 도시락도 못 싸갔던 우리 부모님 시대의 고난이 가슴으로 전해온다.

 

가오 선생님은 슈쿠안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고향에 계신 아픈 어머니를 돌보러 한 달간 학교를 떠나 있어야 한다. 마을 촌장님은 열세 살 소녀 웨이민치를 데려와 월급 50원을 주고 가오 선생님이 올 때까지 대리교사를 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가오 선생님은 웨이민치가 초등학교만 나왔다는 걸 알고 촌장에게 따지지만 당장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허락하고 만다. 이 학교는 원래 학생이 사십 명이었는데 도시로 하나둘 떠나다 보니 이제 스물여덟 명밖에 남지 않았다. 가오 선생님은 한 달 동안 학생이 한 명이라도 줄지 않으면 십 원을 더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고향으로 떠난다.

 

오십 원을 준다는 말에 선뜩 아이들을 가르치겠다고 했지만 열세 살 어린 소녀가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냥 대충 한 달만 때우면 된다고 생각하며 매일 출석부를 부르고 교과서 내용도 칠판에 빼곡하게 적어서 아이들에게 받아쓰도록 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어린 소녀 선생님을 얕잡아 보고 서로 싸우며 난장판을 만들기 일쑤였다. 그중에서도 제일 말썽꾸러기는 장거휘다. 소녀보다 세 살 어린 장휘거는 분필을 부러뜨리고 아이들을 못살게 굴며 심지어 선생님인 소녀에게까지 대들고 개긴다. 

 

그러다가 일이 벌어지고 마는데 달리기에 소질이 있던 여학생이 도시로 전학을 가게 된다. 소녀는 그 여학생을 숨기면서까지 촌장과 실랑이는 벌이지만 말썽꾸러기 장휘거가 일러바치는 바람에 결국 학생 한 명이 줄어들고 약속한 보너스 십 원을 못 받을 위기에 처한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말썽꾸러기 장휘거가 가난 때문에 도시로 돈을 벌러 떠나고 만다. 소녀는 남은 학생들과 머리를 맞대고 장휘거를 다시 찾아올 궁리를 한다. 도시까지 갈 버스비를 마련하기 위해 무작정 벽돌공장에 가서 벽돌을 나르고 번 돈으로 장거휘가 일한다는 공장에 찾아가지만 이미 그곳을 떠나고 없다. 

 

결국 소녀는 방송으로 장휘거를 찾기로 결심하고 무작정 방송국을 찾아가지만 들어가지 못하고 문밖에서 서성이는데 소녀를 본 방송국 간부의 눈에 띄어 드디어 방송에 나갈 수 있게 된다. 장휘거는 식당에서 우연히 티비에 나와 눈물로 호소하는 소녀를 보고 울음을 터트린다. 이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는 시골학교 이야기가 전국으로 퍼져 나가고 소녀의 방송을 본 국민들이 십시일반 성금과 학용품을 모아 소녀에게 전달한다. 소녀와 장휘거는 선물을 가득 안고 시골 학교로 돌아온다. 

 

‘책상 서랍 속의 동화’의 원래 제목은 ‘하나도 모자라면 안 돼’이다. 1999년 베네치아영화제 황금사자상(Golden Lion)을 수상했다. 또 같은 해 우리나라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소녀는 월급 오십 원을 받기 위해 시작한 대리선생님이지만 자신도 모르게 학생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며 진정한 선생님이 되어가고 있다. 동화처럼 아름답고 다큐처럼 사실적이며 시골 정서를 과장 없이 그려 상상력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수작이다. 어릴 적 누구나 마음속에 꼭꼭 숨겨 놓은 보물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사랑스러운 느낌의 영화다. 장예모 감독의 중국 특유의 수묵화 같은 마음 편안한 자연을 보는 것 같았다. 거장이 괜히 거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말한다.

 

“선생님이니까 뭔가를 해주세요”

 

 

[최민]

까칠하지만 따뜻한 휴머니스트로 

영화를 통해 청춘을 위로받으면서

이제 막 한 걸음을 뗀 칼럼니스트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플로리스트로 꽃 속에 살다가

밥벌이로 말단 공무원이 되었다. 

이메일 : minchoe293@gmail.com 

 

작성 2024.12.31 10:33 수정 2024.12.31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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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