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봄, 문예교양지를 표방하고 창간한 계간 《연인》에 2010년 봄호부터 ‘한 줄 시’를 연재 발표한 시인이 있다. 그는 『한 줄의 시 싶다』(도서출판 문현, 2010)라는 시집에서 70편의 한 줄 시를 발표하였다. 한 줄 시의 여백에 영역(英譯) 표기와 함께 컬러 그림을 넣었다. 몇 편을 읽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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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 전문
말 말 말 말… 고놈의 주둥아리
― 「입소문」 전문
미안해, 미안해…
― 「유서」 전문
금방 터질 것 같다
― 「터널」 전문
서로 눈물 닦아주기
― 「사랑」 전문
그 때가 참 좋았어
― 「추억」 전문
뜰 때 날아라
― 「권력에게」 전문
가진 것 없이 힘만 센 돌대가리
― 「포크레인」 전문
더불어 오염될까봐 비껴간다
― 「쓰레기통」 전문
이들을 참으로 시라고 말하기는 곤란할 정도이다. 무엇보다도 시인으로서 치열성이 부족하다.
시 「죽음」은 기호 상징을 차용하였다. 관습적 언어를 버리고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내려는 몸부림으로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수단으로 기호 상징을 차용한 것이다. 시에서 기호란 무의미에서 의미화로 전이하는 효과를 가져 온다. 이것은 기호의 형태가 드러내는 상징성 때문이다. 물론 기호의 형태가 실제의 대상과 불일치하여 무의미한 것이라 할지라도 기호는 의미화되어 가는 속성이 있다.
시 「죽음」에서 “●”이 본문이다. 이 검은 점을 처음 접했을 때, 과연 검은 점 하나가 의미하는 것이 죽음일까. 아무리 시인의 주관적 시점의 표현이라 하더라도 너무 난해하여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한 글자도 아까운 것이 죽음일까. 검은 점 하나가 죽음을 의미하고, 죽음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납득하기에는 아직 식견이 도달하지 못했다는 느낌 때문에 더 황당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이 점 바로 아래 “period”라고 적혀 있다. 마침표의 점(.)을 조금 크게 확대하여 “●”로 표기한 것이다. 삶의 마지막 끝이 죽음이다. 그래서 마침표 하나를 찍은 것이다. 느낌의 시임에는 분명 맞다. 하지만 영어 “period”를 빼버린다면 죽음이라 읽힐까. 영어의 도움이 과연 필요할까. 우리의 시를 영어의 도움을 받아야만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에 한국 시의 무덤을 보는 듯하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대구과학대학교 겸임조교수, 가야대학교 강사.
저서 : 평론집 7권, 이론서 2권, 연구서 2권, 시집 5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