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형의 집(A Doll's House)은 1879년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리크 입센(1828-1906)에 의해 발표된 희곡으로 은행가 헬메르의 아내 노라를 주인공으로 새로운 시대의 여성상을 세상에 보인 이야기로 전체 3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은 입센의 대표작으로 최초의 페미니즘 희곡이라고 거론되는 작품이며 19세기말 세계적으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 작품의 성공이 입센을 일약 세계적인 극작가로 만들었다. 또한 유네스코는 2001년 입센의 자필 서명이 있는 ‘인형의 집’ 원고를 역사적 가치를 고려하여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한 바 있다.
세 아이의 어머니이자 아내인 노라는 즐겁게 크리스마스를 준비 중이다. 새해가 되면 남편 헬메르가 은행이 총재로 부임할 예정이다. 노라는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 ‘크리스티네’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몇 년 전 남편이 생사의 기로에 선 큰 병에 걸렸을 때 치료비 마련을 위해 남편 몰래 큰돈을 빌렸다. 아버지를 보증인으로 세워야 했기에 서명을 위조해 차용증서를 작성한 것이다.
별 볼 일 없던 변호사였던 남편이 은행의 총재로 부임이 예정되자 노라는 그동안의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으라는 희망으로 기쁨에 들뜨고 남편이 높은 지위에 오름에 따라 노라는 남편에게 부탁하여 한 사람을 해고하고 그 자리에 친구인 크리스티네를 앉히는데 해고자는 바로 노라에게 돈을 빌려준 채권자 코로그스타드였다. 그는 노라의 빚과 서명 위조 사실을 남편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하고 자신의 자리보전을 요구한다.
노라는 남편에게 이 비밀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크로그스타드를 위한 자리를 하나 더 만들어줄 것을 요청하지만 거절당한다. 이미 해고한 사람을 다시 데려오는 건 자신의 명예, 권위에 걸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크로그스타드는 이 비밀을 모두 담은 편지를 써서 편지함에 넣는다. 편지함은 자물쇠로 잠겨있으며 열쇠는 오직 남편 헬메르에게만 있다. 남편이 우편함을 못 열도록 시간을 미뤄보지만 결국 헬메르는 편지를 확인한다.
노라는 어찌됐든 자신이 한 행위가 결국엔 남편을 위한 것이었으니까 남편이 현재 상황에 대해 책임지겠다고 말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노라에게 폭풍비난을 한 헬메르는 가만히 있으라며 이 일은 우리 셋이서만 조용히 이야기하고 끝낼 것이라고, 우리 둘은 여전히 사이좋은 부부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야기하던 중 갑자기 종이 한 장이 집으로 도착한다. 크로그스타드가 마음이 변해, 거짓 서명이 되어있는 차용증을 부부에게 돌려준 것이다. 문제가 해결되자 헬메르는 갑자기 돌변해서 노라를 가여이 여기면서 기꺼이 용서하겠다고 말한다. 아마 예전의 노라라면 용서해 주는 헬메르에게 고마워했을지도 모르지만 이 순간 노라는 다른 태도를 보인다. 헬메르의 곁에서 인형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가정 즉, 남편과 아이들을 떠나기로 결심한 것이다. 헬메르는 노라를 붙잡으려 하지만 노라는 떠난다.
노라는 남편을 만나기 전엔 아버지의 인형이었고, 결혼 이후에는 남편의 인형으로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인형으로 살아온 여성의 흔적은 현대 사회에도 여전히 남아있다. 남편(남자친구)이 아내(여자친구)를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뒤로는 데이트 폭력과 가정폭력을 일삼는 커플도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또 자신들의 체면을 위해 쇼윈도우 부부로 지내는 커플도 있다. 이 경우는 남녀 모두 마찬가지다.
작품 속의 헴메르가 노라를 진실로 사랑했다면 그런 이기적인 언어와 행동을 쉽게 보일 수 있을까. 마구 비난하기만 했을까. 그것이 헬메르의 진심이었던 것이다. 남편과 상의를 하지 않았다는 잘못은 있으나 그때 남편은 환자였다. 자신 때문에 일어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헬메르는 자신의 명예, 권위 등을 먼저 생각한다. 어찌 진정한 사랑이라고 판단할 수 있나. 아내와 어머니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찾아 허위와 위선뿐인 인형의 집을 떠나려는 노라를 보면서 남녀 할 것 없이 모두 각자 자신의 삶에 대해 존중받아야 할 권리에 대해 생각한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1800년대이기에 가부장적인 남성과 권리를 상실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 지만 현대사회에서는 남녀 모두가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대우받아야 할 가치의 문제에 대해서 적용되어질 듯하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가부장이 아닌 가모장, 차별이 아닌 역차별이라는 용어가 쓰일 정도로 발전된 세상이 되었지만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곳도 많다. 그 누구든 서로 남녀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평등한 존재로 여겨지고 존중받는 진정한 평등의 사회가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개선해야 한다는 숙제를 주는 작품, 인형의 집이었다.
[민병식]
에세이스트, 칼럼니스트, 시인
현) 한국시산책문인협회 회원
2019 강건문화뉴스 올해의 작가상
2020 코스미안뉴스 인문학칼럼 우수상
2022 전국 김삼의당 공모대전 시 부문 장원
2024 제2회 아주경제 보훈신춘문예 수필 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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