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서 칼럼] 문학, 정의로움으로 향하는 문

이진서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자신의 저서 『시적 정의』에서 ‘문학의 쓸모’와 관련해 특별한 주장을 한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문학과 정치가 그녀의 책 속에서 조우한다. 누스바움이 책을 통해 주장하는 바의 핵심은 문학이 제공하는 상상력과 공감의 정서가 어떻게 공적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있다. 

 

그녀에 따르면 공적 영역으로 문학적 상상력이 스며들 때 사회의 공적 담론은 정의로워질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는 꽃을 피우게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모든 것이 숫자로 환원되는 경제성 우위의 사회에서 문학적 상상력은 인문적 성숙을 넘어 그 자체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휴머니티인지도 모른다. 

 

나는 격동의 한가운데서 다시 책을 들었다. 하지만 이 많은 책들이, 인문학이 지금의 우리 현실에 대해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독서를 강조하는 슬로건은 말 그대로 구호 이상이긴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지금 많은 이들이 겪고 있는 까닭 모를 공허함과 분노, 공포를 넘어서 소수의 인지장애자들이 자행하는 고문과 같은 횡포까지 책을 통하지 않고서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나는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듯 한 권의 책을 찾아 헤매고 있다. 

 

혹 누스바움의 책이 이런 갈증을 해소해 줄 수 있을까. 그녀가 주장하는 시적 정의는 일견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의 모순적인 상황을 설명해 줄 단초일 수는 있다. 우리는 종종 극단적인 이견이 충돌할 때 조차도 합리적 판단과 선택을 기대한다. 감정을 배제한 이성적 판단이 가능하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이에 누스바움은 감정적 판단을 배제하고서는 어떠한 합리적 판단도 가능하지 않다고 일축한다. 

 

그녀는 『시적 정의』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여러 유명한 판결문들을 분석했는데, 놀랍게도 가장 객관적인 사실을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법의 영역에서 논리적 해석으로만 가득차야 할 것 같은 판결문이 사실은 가장 ‘문학적’으로 쓰였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누스바움이 분석한 ‘역사적이고도 유명한’ 판결문들은 한결같이 가장 문학적일 때 가장 공정하고 정의로웠다. 이 흥미로운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해마다 독서율이 곤두박질치는 한국에서 문학작품을 읽자는 주장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마음을 파고들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문학작품을 통해 우리가 가 닿을 수 있는 어떤 세계를 상상하는 것은 즐거움을 넘어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문학작품을 읽으며 우리의 뇌와 마음이 향하는 세상의 진실에 함께 가 닿아보길 원한다. 

 

작품 속에서 함께, 현실의 혼란과 격정, 불안, 당혹스러움과 고통을 우회적으로 경험해 볼 것을 권한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지금까지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가치와 규범, 올바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기를 갈망한다. 아마도 그것은 상상을 뛰어넘는 치열한 여정일 것이다. 

 

나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으로 인문학을 추켜세우고자 함이 아니다. 저마다 ‘자신들의 진실’만을 고수하는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야 하는 최소한의 이유와 준거를 찾고 싶은 것이다. 우리 사회의 무지와 반지성, 성찰의 부재는 도를 넘어 나라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언어의 백가쟁명이어도 좋겠다. 함께 문학작품을 펼쳐보기를.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6위를 기록했다는 보도에도 여전히 춥고 허기진 이들로 넘쳐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이제는 정말 헤아려보아야 한다.

 

 

[이진서]

고석규비평문학관 관장

lsblyb@naver.com

 

작성 2025.01.20 10:23 수정 2025.01.20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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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