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열사가 주도한 4월1일 천안 병천에 있는 아우내장터 독립만세운동이 도화선이 되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그날은
겨레시인 성재경
그날은
아무도 물건을 사지 않았다
굴비 한 손 보리쌀 한 됫박 머리빗 한 개
아무도 물건을 팔지 않았다
식육점도 포목점도 어전도 닫혀있었다
아우내장터 그날은
아무도 소리 내어 웃지 않았다
수다쟁이 할매도 짓궂던 더벅머리 총각도
비틀거리거나 들내지 않았다
무거운 발걸음 앞만 보고 내 디뎠다
사월 초하루 그날은
아무도 부모자식 걱정하지 않았다
보고 싶은 사람도 생각나지 않았다
하늘 아래 땅 위에 사람들이 모여
가슴과 가슴이 손과 손이 만났다
목이 터져나가던 그날은
그들의 손엔 어떤 쇠붙이도 없었다
그 흔한 낫 한 자루 부엌칼 호미마저도
삐뚤게 그린 태극기와 맨주먹
만세 부르는 입과 충혈 된 눈이 전부였다
유관순의 아우내장터 그날은
붉은 피에 또 뜨거운 피가 엉기고
죽음 위에 볏단처럼 주검이 덮여갔지만
그날은 이 나라 정신이 바로 세워지고
비로소 광복이 시작되는 날 이었다
詩作 노우트; 1919년은 일제의 침략에서 자주독립을 위한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는데
서울 탑골공원에서 3월1일 시작되어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져갔다.
그 중에서도 유관순열사가 주도한 4월1일 천안 병천에 있는 아우내장터
독립만세운동이 도화선이 되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현장에서 19분이
숨지고 30분이 부상 당했으며 유관순열사는 잡혀가서 1년6개월 동안
감옥투쟁을 전개했고 일제의 모진 고문으로 순국하셨다.
영원한 누나인 열사는 이화여고 2학년에 재학중인 18세 소녀였고 그 정신은
민족의 횃불로 타 올랐다. 아우내 만세운동은 비폭력 운동으로 세계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민족운동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