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식 칼럼] 성석제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에서 말하는 순수함의 패배

민병식

성석제(1960~ )는 소설가이며 시인으로 1986년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했으며, 1995년 문학 동네 여름 호에 단편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소설가의 길로 들어섰다. 해학과 풍자, 과장 등을 통해 현대 사회의 다양한 인간상을 그려 내는 작품을 주로 썼고 주요 작품으로 ‘새가 되었네’, ‘재미나는 인생’ 등이 있고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오영수문학상, 요산문학상, 채만식문학상, 조정래문학상 등의 수상 경력이 있다.

 

소설은 '황만근이 없어졌다'로 시작된다. 마을에서 있으나 마나 한 존재이면서 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던 황만근이 없어지자 마을 사람들이 모인다. 사실 황만근의 부재는 그가 해왔던 궂은일을 마땅히 할 사람이 없어지는 데서 기인한 불편함 때문이다. 이를테면 마을회관 변소에서 분뇨를 퍼내는 일, 분뇨를 익혀 공평하게 분배하는 일 등 궂은일은 황만근이 다 했던 것이다. 

 

황만근이 사라진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마을 사람들이 황만근이 사라진 것을 안 것은 농가 부채 탕감 촉구 농민궐기대회에 참석한 그다음 날이었다. 황만근이 사라지기 전날 동네 이장은 마을 사람들에게 대회에 꼭 참석해서 자신들의 의지를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고 대회 참가를 신신당부했었다. 그리고 이왕에 참여할 거면 경운기를 몰고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황만근에게는 상 농사꾼이 꼭 가야 한다며 참여를 더욱 부추겼다. 이에 '농사짓는 사람은 빚을 지면 안 된다'는 지론을 지녔던 황만근은 새벽 일찍부터 경운기를 타고 나섰고 그 후로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전 일에 선생은 경운기를 끌고 면소재지로 갔지만 경운기를 타고 온 사람이 없어 같이 갈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선생은 다시 경운기를 끌고 백리 길을 달려 약속 장소인 군청까지 갔다. 가는 동안 선생은 여러 번 차에 부딪힐 뻔했다. 마른 봄바람에 섞인 먼지가 눈을 괴롭혔다. 날은 흐렸고 추웠다. 이윽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경운기에는 비를 피할 만한 덮개가 없어서 선생은 뼛속까지 젖어드는 추위에 몸을 떨었다. 선생이 군청 앞까지 갔을 때 이미 대회는 끝나고 아무도 없었다.’

 

위의 인용은 마을 사람들 중 유일하게 황만근의 진실성을 이해한 민 씨에 의해 쓰여진 황만근의 묘비명 중 일부다. 위의 인용처럼 황만근은 동네 이장이 요청한 대로 고장 난 경운기를 끌고 백리 길을 달려 군청까지 갔던 것이었고 결국 돌아오는 길에서 목숨을 잃게 된다. 마을 사람 그 누구도 경운기를 가져오지 않고 동네 이장마저도 자가용으로 이동했지만 황만근은 이장의 말을 진실성 있게 받아들였고 이를 실천한 것이다. 결국 경운기를 몰고 오라던 이장의 말 한마디가 고지식하고 성실한 황만근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황만근을 조롱하고 이용해 멱었으나 중 유일하게 황만근의 가치를 인정한 이는 얼마 전 귀농한 묘비명을 쓴 귀농한 민씨였다. 황만근은 선량하고 이타적인 인물이었다. 그리고 전통 사회의 인정을 유지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이러한 인물이 1990년대의 경제 위기와 농가 부채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죽고 말았다는 것은 농촌 사회는 희망이 없으며 기울어 가고 있다는 탄식을 함축한다. 또한 황만근은 누구보다도 남을 많이 도왔지만 혼자 죽어 갈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황만근이 죽도록 원인을 제공한 이기적인 마을 사람들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을 내포한다.

 

이 작품은 1990년대 IMF 경제 위기를 맞고 있는 농가 현실을 배경으로 이기적인 현대인에 대한 풍자와 함께 암울한 농촌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비교적 객관적인 시선을 갖고 있는 민 씨를 통해 ‘황만근’이라는 인물의 생애를 추적하는 형식으로 전개되는데, 바보 취급을 받는 황만근이 실제로는 매우 긍정적인 인물이며 오늘날 현대인의 삶에 결핍된 관용과 도량의 정신을 가진 인물임을 보여 주고 있다. 

 

작가는 민 씨의 입을 빌려 황만근이 바보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밖에 모르고 남을 이용해 먹는 마을 사람들을 바보라고 비판한다. 어디 1990년대뿐이며 농촌뿐이겠는가. 착하게 살면 손해 보는 세상이 된지 오래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이용당하고 사기당하기 일쑤인 부조리한 현대의 사회, 인간성을 회복시켜야 하는 것은 시급한 과제다. 

 

무섭고 각박한 세상을 사랑이 충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은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의 시대정신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면 이미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것이기에 반성과 회개를 지구중력처럼 내 안으로 끌어당겨 순수함의 인간으로 되돌아오려고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황만근의 죽음에 사죄하는 우리의 양심이며 의무다.

 

 

[민병식]

에세이스트, 칼럼니스트, 시인

현) 한국시산책문인협회 회원

2019 강건문화뉴스 올해의 작가상

2020 코스미안뉴스 인문학칼럼 우수상

2022 전국 김삼의당 공모대전 시 부문 장원

2024 제2회 아주경제 보훈신춘문예 수필 부문 당선

이메일 : sunguy2007@hanmail.net

 

작성 2025.02.12 10:33 수정 2025.02.12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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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