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서 칼럼] 리더의 조건

이진서

'세계'에 대해선 다양한 정의가 가능하겠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 한가지, 우리 의사와 상관없이 우리가 머무는 세계는 언제나 우리를 근본적으로 규정한다는 것이다. '구조와 개인'이라는 오래된 논쟁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우리를 규정짓는 세계의 힘은 실로 막강하다. 

 

나는 특정한 세계에서 출몰하는 인간 유형에 대해 관심이 많다. 특히 그러한 세계에서 양산되는 문제적 주체, 지도자에 대해선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문제적' 지도자는 어떤 구조에서 만들어지는가. 특정 사회에 출현하는 리더들은 어떤 방식으로 사회와 연루되는가. 

 

지난해 12월3일 이후, 한국사회의 정치 지형을 진보와 보수 간의 치열한 공방쯤으로 몰고 가는 이들이 많은 듯하다. 물론 나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지키려고 하는 자'와 '나아가고자 하는 자'라는 오래된 도식에는 당연한 사실 하나가 전제되어야 한다. 무엇을 지키려고 하는지, 무엇을 뒤로 하고 앞으로 나아가려 하는지가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굴곡진 현대사를 생각한다면 그 '무엇'에는 그간 말할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이 담겨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끄집어내어 '말할 수 없었음에도 말할 수밖에 없는' 어떤 개념적 모순을 이겨내야 한다. 이는 지금의 우리가 만들어진 토대를 비판적으로 들여다보아야 하는 고된 여정이기도 하다.

 

내가 생각하는 지도자는 무엇보다 자신의 사상과 이념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자신의 권력을 제대로 인식해야 하는 지도자의 출발점이다. 필부가 저질렀더라면 해프닝일지 모를 말과 행위가 권력을 가진 자의 손에선 그 자체가 폭력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사회 광장을 소음으로 메우고 있는 특정 정파의 정치인과 종교인들은 어떤 정치적 이념과 사상으로 저곳에 가 있는 것일까. 국민들이 저들의 생떼를 들어주기 전에 나는 우선 저들이 주장하는 바가 궁금하다. 저들은 과연 자신들이 떠드는 보수의 정치적 기원이나 연원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는 되어있는 자들일까. 

 

지금의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제각각의 이견에도 불구하고, '윗물'이 이렇듯 탁하다 못해 악취가 나는데도 변함없이 또 이렇게 도도한 '아랫물'을 본 적이 있는지를 나는 묻고 싶다. 반만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라는 수사가 언제나 뼈아팠지만 그 유구한 역사 속에서 죽고 뺏기고 고통받은 이들의 하방연대가 없었다면 우리의 유구한 역사는 없다. 그들은 위기상황 때마다 분연히 일어나 공동체를 붕괴시키는 적들과 맞서 싸웠으며, 한 줌 어치의 지배 세력들이 유포하는 분열의 언어, 사대의 언어를 박살을 냈다.

 

이제 우리시대가 요구하는 리더는 절대다수의 국민들과 삶의 구체성을 공유하는 이라야 한다. 고담준론이든 난전의 개똥철학이든 국민들의 삶을 담아내지 못하는, 구체성 없는 허황된 얘기에 더 이상 국민들이 속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휘두르는 권력이 진정 어디서 나오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한 리더의 최후를 우리는 똑똑히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이진서]

고석규비평문학관 관장

제6회 코스미안상 수상

lsblyb@naver.com

 

작성 2025.03.03 10:21 수정 2025.03.03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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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