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富)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지금은 소유할 수 없는 책 ‘무소유’는 절판되었다. 난 법정 스님이 스님이어서 참 좋았다. 성격이 대쪽 같아서 더 좋았다. 냉정해 보여서 좋았고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않아서 좋았다. 어느날 봄바람을 타고 떠나셔서 좋았다. 떠나시면서 “내 이름으로 출판된 모든 책은 더 이상 출간하지 말라”고 해서 좋았다. “어리석은 탓으로 제가 저지른 허물은 앞으로도 계속 참회하겠다”고 해서 좋았다. “괴팍한 나의 성품으로 남긴 상처들은 마지막 여행길에 모두 거두어가려 하니 무심한 강물에 흘려보내 주면 고맙겠다”고 해서 한없이 좋았다.
나는 법정 스님과 같은 시대를 살 수 있어서 고마웠다. 표지가 닳도록 책에서 만날 수 있어서 고마웠고 십 년에 한두 번 절에서 만날 수 있어서 고마웠다. 옷 두어 벌과 신발 한 켤레 오래된 안경 그리고 낡은 의자의 소박한 삶을 남겨줘서 고마웠다. 힘들고 지칠 때 기댈 수 있는 마음의 등을 내줘서 고마웠다. 인간의 삶에서도 맑고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는 걸 알게 해줘서 고마웠다. 거기 오래도록 앉아 있는 길상사를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어서 참 고마웠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시가 아닌 수필이다. 나는 내 맘대로 연을 나누어 ‘시’로 만들었다. 그리고 눈에 닿는 곳에 놓고 수시로 낭송한다. 마음을 정화하고 평화롭게 하는 데는 이만한 시가 없다. 불쑥불쑥 올라오는 용광로 같은 욕망을 진압하는데 좋은 도구다. 마음 밭에 수시로 돋아나는 잡초를 제거하는데도 참 좋은 약이다. 미친년 널뛰듯 지랄 떠는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좋은 진정제다. 무소유란 물질 위주의 생활에서 존재 중심으로 이동하라는 뜻이라고 법정 스님은 말한다.
나는 서울 토박이지만 전라도 스님들과 많은 친분을 갖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라도 절을 먹여 살리는 사람들은 주로 경상도 신자들이다. 그런데 진짜 수행자들은 주로 전라도 스님들이다. 절도 사라지고 스님도 사라지고 있는 시대다. 인간의 문제를 해결해 줄 종교는 타락하고 그 자리를 과학이 차지하고 있다. 인간의 문제란 결국 정신의 문제인데 그 정신의 문제까지 과학이 종교를 넘어섰다. 이젠 젊은 사람들은 종교보다 문화를 더 좋아한다. 늙은 종교에 기대 사는 사람들은 늙은 사람들밖에 없는 셈이다. 스님이 되고자 출가하려는 사람이 없어 출가 문턱을 50세로 확 낮춰도 출가하는 스님들이 없는 세상이다.
이젠 종교보다 문화다. 종교보다 과학이며 종교보다 사람이다. 사람의 문제를 애틋하고 정답게 이해하고 조언해 준 법정 스님의 글은 종교의 범주를 벗어나 보편적인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이다. 얼마나 갖고 싶은 것이 많은 세상인가. 얼마나 살기 좋고 놀기 좋은 세상인가. 집집마다 쌓여 있는 옷이며 그릇이며 가전제품이 넘쳐난다. 욕망이 뛰놀기 좋은 시대다. 물욕에 목욕해도 누가 뭐랄 사람이 없는 세상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허허롭다. 마음 저 구석이 시려온다. 우리는 무엇 때문인지 다 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살아갈 뿐이다.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면 죽는 줄 안다. 자신의 정신적 풍요보다 남들의 시선이 더 무섭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는 자연인이다’를 눈 빠지게 보며 힐링이라고 스스로 위로한다.
법정 스님은 입적하면서 자신의 책은 더 이상 이 세상에 나오지 않게 하라고 했지만 스님의 유언마저 이용하는 사람들은 스님과의 친분을 들어 이런저런 제목으로 자꾸 책을 낸다. 법정 스님을 팔아 밥벌이하는 사람들의 밥그릇을 엎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니 저 우주에서 법정 스님도 이해할 것으로 믿어본다. 세상 사람들이 다 무소유한다면 그건 세상이 돌아가지 않다는 증거일 것이다. 한쪽에선 전쟁이 나고 한쪽에서 굶어 죽고 한쪽에선 살 뺀다고 난리고 또 한쪽에선 무소유를 실천하며 향기로운 자발적 가난에 행복해한다. 어느 쪽에 속하든 기차는 가고 세상은 돌아간다.
해남 우수영에서 태어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은 고뇌에 빠진 법정 스님은 그 유명한 효봉스님이 있는 통영 미래사로 출가했다. 수행에 정진하면서 불교신문 편집국장을 하고 봉은사 다래헌에 살면서 불교경전 번역일을 하면서 씨알의 소리 함석헌과 장준하 등과 함께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결성 유신 철폐 개헌 서명운동에 참여하는 등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시대의 고통을 온몸으로 다 받아낸 법정 스님은 지금의 탬플스테이와 같은 ‘선수련회’를 만들어 수행법을 대중들에게 펼쳤다.
법정 스님은 무소유를 통해 정신적 낙원에서 산 분이다. 책으로 유명해지고 길상사로 유명해졌으며 불임암 수행으로 유명했고 강원도 오두막으로 가 무소유 삶으로 유명했던 법정 스님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정신적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것은 유명해서가 아니라 맑고 향기롭게 무소유를 실천했기 때문이다. 억지로 무소유를 한다고 구질구질해지는 사람들과는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욕을 버리고 나니 낙원이 보였다고 법정 스님은 말했다. 그 말을 이해한다. 아니 경외한다. 스님을 이야기하다 보니 내 옹졸한 삶만 드러난다. 창피하다. 생각해 보니 내게 불필요한 게 너무 많다.
무소유는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
[이순영]
수필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