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내민 손

이동용 (수필가/철학자)



한여름이었습니다. 온 가족이 마루에서 잠을 자려고 했던 때였습니다. 불을 끄자 어둠이 엄습했지만 동시에 서서히 밤하늘이 화려한 별들로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별들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막내 형이 이야기를 시작했는지 아니면 다른 누나들이 이야기를 시작했는지 기억은 선명하지 않습니다. 시선은 별들로 향해 있었지만 귀는 그 이야기에 꽂혀 있었습니다.


상상이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괴물, 귀신, 악마, 유령 등 온갖 무서운 이야기는 그때 다 들은 것 같습니다. 


그러고 나서 모두들 잠이 들었습니다. 아무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긴장된 침묵 속에서 커다란 진동이 느껴졌습니다. 갑자기 별들이 가득한 하늘에서 거대한 손이 내게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겁에 질린 나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밤늦도록 사랑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아버지가 제일 먼저 달려왔습니다. 안으로 향했던 시선은 조금씩 밖으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왜 그러느냐?”고 나의 어깨들 잡고 흔들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 당시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버지는 나를 업고서 동네 의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꺼졌던 불이 켜지고 의사 선생님이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의사는 아버지에게 뭔가를 말하고 약과 엄지를 닮은, 꼭 조그만 풍선처럼 생긴 것을 건네주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나에게 절하는 자세를 취하게 한 뒤 그 풍선의 끝부분을 항문에 꽂아 넣었습니다. 


나는 배가 아프지도 않았고 똥이 마려웠던 것도 아닙니다. 의사는 잘못 진단한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런데 내 생각을 표현해 낼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때 그 당시에 나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품고 평생을 살아야 한다고. 이것은 나만의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언젠가는 이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를 풀어내야 하는 숙제를 떠안고 살아야 한다고. 죽기 전에 꼭 설명을 해놓고 죽고 싶다고.


언제였던가 아버지 방 안에서 이런저런 책들을 구경하다가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라는 그림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손이 어디선가 많이 본 듯했습니다. 처음 보는 것이 아닌 느낌이었습니다. 어릴 적 밤하늘에서 보았던 그 손을 너무도 닮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때는 그 화가의 이름도 그 그림의 제목도 알지 못했습니다. 글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상황도 못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그림은 그때부터 나의 기억 속에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대학생이었던가, 어른이 다 되어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이나 천사가 사람 앞에 등장할 때마다 어김없이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마가복음 5:36) 나는 이 구절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시시때때로 묵상하며 힘과 위로를 얻었습니다. 지금도 이 습관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지금 이 나이가 되었는데도 가끔 하늘에서 손이 불쑥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나는 지혜가 담긴 이 구절로 응수합니다. 이런 말이 입에 담기는 순간, 모든 것은 압도되고 정리되는 느낌입니다.


혼돈과 공허는 사라지고, 별이 빛나는 하늘이 펼쳐집니다. 햇빛이 별빛을 가려 놓았어도 보이지 않는 그 빛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떠지는 그런 느낌입니다. 


또 유학시절 프랑스로 여행을 갔다가 로댕의 대성당이라는 작품을 보면서 느낀 전율은 잊히지 않습니다. 성당, 하면 전통적으로 익숙한 건물, 즉 종교적 의미의 건물을 떠올려야 마땅한데, 로댕은 두 손을 서로 회오리처럼 휘말린 형태의 조각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손이 성당입니다.


‘성당 안에 신이 있다는 논리’는 ‘성당 자체가 인간의 손이라는 이념’과 부딪히며 새로운 반전을 예고했습니다. 


인간의 손이 대성당의 의미라는 사실 앞에서 한참동안 머물러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 밤하늘에서 보았던 손은 이렇게 시간과 기억 속에 담기게 되었습니다.









작성 2025.03.10 10:08 수정 2025.03.1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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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