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자의 자연 사상은 무위(無爲)·무지(無知)·무치(無治)이다. 무지(無知)는 인륜 도덕의 인간상에 도달하려는 수양으로서 학문을 거부하는 반유가적 담론이다. 무치(無治)는 반성인(反成人)의 이상향(유토피아) 담론이다. 즉, 유가의 성인 정치인 왕도주의에 반하는 담론이다. 무치(無治)라는 노자의 도인 정치는 겉으로 보기에는 원시 공산 사회의 무정부주의적 측면이 농후하다. 노자가 지향한 이상적 무치(無治)는 무정부주의적 원시 공산 사회일 수도 있다.
노자가 정치를 무치(無治), 덕치(德治), 법치(法治), 포학(暴虐)의 네 가지로 구분하여 강조하였다. 이 가운데 최상의 정치가 무치(無治)의 경지라고 하였다. 이 무치(無治)는 백성들이 전혀 알지 못하게 정치를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를 읽어 본다.
최상의 정치는 무치(無治)의 경지로, 백성들이 전혀 알지 못한다. 다음의 정치는 덕치(德治)의 경지로, 백성들이 친근감을 느끼고 좋아한다. 그 다음의 정치는 법치(法治)의 경지로, 백성들이 겁을 내고 좇는다. 끝의 경지는 포학이며, 백성들로부터 미움과 욕을 받는다.
위정자가 성실이 부족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면 백성들로부터 신임을 받지 못할 것이다. 성인은 유한자적(悠閑自適)하고 함부로 호령법령을 내리지 않는다. 그러면서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고 공이 나타나며 백성들은 저마다 자기가 무위자연의 존재라고 생각하게 된다.
『노자』, 「순풍(淳風)」, 장기근 역
노자가 최고로 꼽는 정치, 가장 고수의 정치는 ‘없는 듯 다스리는 정치’이다. 이는 백성이 임금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정치이다. 두 번째 경지의 정치는 ‘덕(德)으로 다스리는 정치’이다. 이는 백성이 임금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정치이다. 세 번째 경지의 정치는 ‘법(法)으로 다스리는 정치’이다. 이는 백성에게 겁을 먹게 하여 따르게 하는 정치이다. 가장 하수인 네 번째 경지의 정치는 ‘포학하게 다스리는 정치’이다. 이는 백성에게 횡포를 자행하여 공포감을 주는 정치이다.
노자 사상은 중국을 비롯한 동양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특히 노자의 정치 경지 네 가지 분류는 조선의 왕도 정치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조선에서 네 가지 중 가장 하수인 포학한 왕의 예는 연산군을 들 수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 중에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들이댄 포학의 정치를 자행한 자들은 계엄령을 선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계엄 그 자체가 포학한 정치 수단이다. 이들은 군인을 하수인으로 앞장세워 무력을 정치 수단으로 삼은 자들이다.
오늘날 법치국가에서 법치는 당연하다. 국민에게 겁을 주려는 행위가 아니다. 모든 통치 행위를 법의 테두리 안에서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통치자의 인격과 성품이 묻어나는 덕치는 매우 소중한 정치이다. 이는 국민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슬픔을 함께할 수 있는 정치이다. 가장 고수인 무치는 현대 사회의 투명한 정치에 비추어 보면,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정치가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알맹이는 없으면서 과대 포장하여 시끄럽게 나대는 정치는 국민을 불안하게 만든다. 법에 의거 주어진 일에 매진하는 조용한 알맹이 정치야말로 국민에게 신뢰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가장 하수인 포악한 정치는 하지 말아야 한다. 포악한 정치는 뒷골목 양아치들이나 하는 짓이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대구과학대학교 겸임조교수, 가야대학교 강사.
저서 : 평론집 9권, 이론서 2권, 연구서 2권, 시집 5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