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의 외가가 초계변씨라는 사실은 충무공에 관해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한다. 충무공의 가문 덕수이씨의 족보를 살펴보면, 그의 아버지 이정(李貞)과 할아버지 이백록(李百祿) 모두 초계변씨와 혼인하였다. 즉, 두 대에 걸쳐 초계변씨를 배우자로 맞아들인 것이다.
외가가 초계변씨이기 때문인지 충무공의 『난중일기』에는 초계변씨 인물들이 상당수 등장한다. 다음은 그러한 기록 가운데 하나이다.
『난중일기』, 1597년 6월 19일
12시경에 군사 변덕기, 우영리 변덕장, 60세가 넘어 역이 면제된 향리 변경완, 18살 된 변경남이 와서 만나고 진사 이신길의 아들 진사 이일장도 와서 만났다.
[원문] 午 軍士卞德基 右營吏德章 老除吏卞慶琬 年十八卞敬男來見 進士信吉子進士李日章亦來見.
* 원문 ‘老除’는 나이가 예순을 넘어서 역이 면제되었다는 의미이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조선시대 문헌을 검색해보면 쉽게 그 용례를 찾을 수 있다.
위 일기에 나타나는 인물들은 충무공의 외가 초계변씨의 먼 친척들로서, 초계변씨 계파(季派) 파조 변휘(卞輝)의 8대손인 변효량(卞孝良)의 자손들과 그 인척들이다. 군사 변덕기와 우영리 변덕장은 형제이며, 그들과 팔촌 관계인 변회보(卞懷宝)라는 사람의 아들이 변경남이고, 향리 변경완은 변회보의 작은아버지이며, 이신길은 변경완의 둘째 형 변중완 사위이다. 변회보는 『난중일기』의 7월 4일 일기에 그 이름이 나타난다. 다음의 『초계변씨족보』에서 위 『난중일기』에 나타난 인물들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족보의 4개 페이지에 연달아 그들의 이름이 나타난다.
『난중일기』에 변덕장과 변경완이 각각 영리와 향리로 서술된 점으로 보아 위 초계변씨 인물들은 중인 계층으로 생각된다. 비록 이들은 중인 계층이지만 변덕장이 영리인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리는 감영이나 병영 등에 딸려있던 향리로서 상층 향리에 해당하며, 군현 내에서 사회경제적 기반을 갖추었던 자들이다. 『선조실록』의 기사(120권, 선조32년-1599년 12월16일 신묘 4번째 기사)에 영리 출신으로서 거제현령까지 지낸 기록이 나타나는 점으로 보아, 당시 영리는 사회경제적 기반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사회 진출도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향리 변경완의 둘째 형 변중완의 사위인 이신길이 진사(進士)라는 점도 흥미롭다. 우리가 역사 교육이나 TV 드라마 등을 통해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조선시대에 양반과 중인 사이의 혼인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를 자세히 다루는 것은 복잡한 주제이므로, 약 500년에 걸쳐 지속된 조선이라는 나라의 사회와 문화가 세월이 흐르면서 적지 않은 변화가 이루어졌다는 것만 언급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위 『난중일기』에 나타나는 인물들이 『초계변씨족보』를 통해 확인되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우리나라 족보 기록이 경우에 따라 상당한 신빙성을 지닌 기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준다.
[참고자료]
한국족보정보, 『덕수이씨세보(德水李氏世譜)』
한국족보정보, 『초계변씨족보(草溪卞氏族譜)』
권기중, 2010, 『조선시대 향리와 지방사회』, 경인문화사
[윤헌식]
칼럼니스트
이순신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
저서 : 역사 자료로 보는 난중일기
이메일 : thehand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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