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이로 칼럼] 식물을 기르는 마음으로

임이로

타향살이가 벌써 3년이 되어간다. 코로나를 빌미로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결국 서울로 독립한 이유는, 어느 순간 너무나 비좁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서였다.

 

한번은 직장에서 식물 기르는 것을 업으로 삼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좋아하던 동료가 있었다. 그는 내가 음악을 들으며 기분을 환기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처럼, 매일매일 그날의 기분을 방에서 키우는 식물의 상태에 빗대곤 했다. 그래서 그는 맑은 날씨를 좋아했다. 채광이 좋은 날이면, 방안의 식물들이 햇살을 쐴 상상을 하며 내 새끼 다루듯 식물 사진을 매번 보여주셨다.

 

나는 그가 한껏 즐거워 식물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게 보기 좋아서, 괜히 이것저것 더 물어봤다. 식물들이 잘 자라는 토양 환경, 습도, 그리고 채광과 어울리는 장소 등에 대해 물어보면, 그는 드물게 활기를 띠며 만물박사처럼 가진 지식을 쏟아냈다. 함께 길을 걷다 만난 들꽃들이 왜 이곳에서 피고 지는지, 저 꽃나무가 지금은 무성한 가지뿐이어도 언제 꽃망울을 터뜨려 나비와 벌들이 찾아오는지에 대해 내게 알려주었다.

 

 한번은 같이 꽃집을 지나다 동료가 말했다. 

 

“저 식물, 뿌리가 화분 밖으로 삐져나온 거 보이죠? 저 애는 저런 작은 화분에 만족할 식물이 아니에요. 그래서 분갈이를 해줘야 하는 건데.”

 

나는 그에게서 때아닌 위로를 받았다. 내가 무작정 고향을 떠나, 근본도 없이 새롭게 시작한 이유를 저 식물이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았기 때문에.

 

어쩐지 요즘같이 여름이 다 가고 능소화가 떨어질 때면, 내게 식물의 마음을 알려주던 그이가 생각이 난다.

 

며칠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조경가 정영선의 전시,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에 다녀왔다. 한국 1세대 조경가 정영선 선생은 한국의 토양에 걸맞은 아름다운 조경을 평생에 걸쳐 해온, 견문이 대단한 인물이었다.

 

그의 가치와 철학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 속 정영선은, 내가 만난 직장 동료처럼 식물이 사람에게 주는 휴식과 안식, 그리고 사랑에 대해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병원 건물을 설계할 때 일화였다. 병원에 조경이 필요한 이유는 환자들이 나와 쉴 수 있고, 그 가족들이 속상한 마음을 달랠 곳이 필요해서라고 한다. 정영선 조경가가 가진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과 경륜을 물씬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는 남다른 식물 사랑에 대해, ‘그냥 식물들이 날 필요로 하는 것 같았다.’고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며 웃었다. 하지만 나는 잘 알고 있다. 가장 단순하게 표현할 수 있을 때라야 가장 깊이 사랑했다는 것을.

 

전시관을 나와서 북촌으로 이어지는 길가에 잘 길러 놓은 잔디를 밟아보며, 식물을 기르는 일은 사람을 기르는 일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과나무가 포도를 길러 낼 수 없듯이, 사람도 타고난 모양새가 있기 마련이니까. 타고난 잎이 활엽인지 침엽인지에 따라서 적절한 물과 햇빛의 양도 달라지는 식물처럼, 사람도 타고난 성정과 환경에 따라 사랑을 줘야 하는 방식이 다르다.

 

또한 식물은 병들어 가도 말이 없다. 그에 비해 사람은 시의적절하지 못한 말과 행동을 해서 큰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해결책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바로 애정과 믿음을 가지고 지켜봐 주는 것. 우리는 이것을 지지(支持)라고 부른다

 

‘지지한다’는 표현이 사뭇 진지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은 ‘함께 버틴다’는 친숙한 뜻이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어려움을 겪는다. 그때마다 고마운 것은, 가까이서든 멀리서든 나를 지지해주던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은 내가 ‘은혜를 갚겠다’했을 때, ‘더 크게 자라서 다른 사람에게 갚아.’라고 말해주었다.

 

내가 고향을 떠나, 새로운 곳에 정착해 이렇게 스스로 분갈이를 한 이유도 다르지 않다.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사람과 만나 서로를, 나아가 이 사회를 지탱하는 일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 존엄을 지키고, 내가 받은 은혜에 보답하는 가장 본질적인 방법이니까.

 

세상이 변하는 속도가 너무나 빠른 지금, 우리는 고효율과 고부가가치를 계산하느라 어려움을 함께 버티는 시간은 마치 ‘비효율적이고 무가치한 일’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하지만 ‘함께 버티는 일’이야말로 장기적으로 보건대 더 많은 건강한 사람을 길러 내는, 그러니까 더 단단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효율적이고 가치 있는 방식이 아닐까?

 

오늘도 우리 주변 식물들은 말이 없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기나긴 장마 속에서도. 그들은 묵묵히 이 지구를 지지하고 있다. 생텍스의 소설, <어린 왕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처럼, 누군가는 말없이 그렇게 당신을 지지하고 있을 테니, 부디 당신도 어여삐 자라주기를.

 

 

[임이로]

시인

칼럼니스트

제5회 코스미안상 수상

시집 <오늘도 꽃은 피어라> 

메일: bkksg.studio@gmail.com

 

작성 2025.03.14 10:59 수정 2025.03.14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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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